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차관급 인사가 장관급 인사와 함께 상임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대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재명 대통령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진술이 나왔다. NSC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 이후 만들어진 제도를 따르고 있다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를 보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대통령이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10일 기자들과 만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현재 NSC에 장관급인사뿐만 아니라 차관급 인사도 함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 것과 관련해 "좀 이상하다. 박근혜 정부 때 손질해서 장관급과 차관급을 다 같이 상임위원으로 만들어 놓고"라며 "행정법 체계상 예외적인 것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기했고 대통령도 충분히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3일 (사)한반도평화포럼이 '정부출범 6개월,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이재명 정부 통일외교안보정책 :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좌담회에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의 NSC 체제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장관은 "NSC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4월 27일 '통일외교안보정책자문회의'로 발족됐다. 당시 차관급 인사는 참여하지 못했고 외교안보수석만 있었는데 지금은 (차장급 인사인) 국가안보실 차장이 참석한다"며 "이들이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장관 등 장관급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발언하고 투표하는 것이 말이 되나. 이건 미국에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당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NSC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걸 이재명 정부가 계승하는 것이 말이 되나? 차장이 안보실 쥐고 흔들기 위해 만든 것 같은데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지난 7일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NSC와 관련해 "지금의 운영 체계는 김대중 정부 이래 운영된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누가 말한 것처럼 김 아무개(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차장)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위 실장의 반박과는 달리 NSC에 국가안보실 1차장이 참석한 것은 국가안보실이 만들어진 박근혜 정부 때부터였다. 노무현 정부 때의 경우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는 NSC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NSC 사무처를 폐지하고 외교안보수석을 중심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조정했기 때문에 외교안보수석이 참석자였다. 문재인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안보실 1차장이 참석했는데, 윤석열 정부 때는 국가안보실 1,2차장이 모두 NSC에 참석하면서 참석 인사의 폭을 넓혔다.
이재명 정부 들어오면서 국가안보실은 3차장 체제로 개편됐는데, 육사 출신인 1차장과 정통 외교관 출신인 2,3차장 모두 NSC 상임위원회의 정식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NSC가 남북관계의 진전보다는 한미동맹 등 안보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 정 전 장관 주장의 핵심이다.
한편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 가졌던 케빈 김 미국 대사대리와 만남 자리에서 미측이 한국 정부에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는 <중앙일보>의 9일 보도와 관련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인권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서 대북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하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며 반박했다.
정 장관은 "지난 20년 북핵 협상의 역사에서 4번의 대화 협상 국면이 있었고, 네 번의 압박 및 제재·고립 전략이 있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모두 체제 압박·고립 국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효성 있는 평화 조치를 위해서 남북 관계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북한이 무엇을 위협으로 느끼는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라며 “1992년과 1994년의 팀 스피릿 훈련 중지는 북핵 협상 진전에 분명한 영향을 미쳤으며 2018년 한미 연합 훈련 연기는 한반도의 봄을 불러왔다"고 말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한미 훈련은 우리의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수단이다. 목적이 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서 NSS, 중국의 군비 통제 백서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았다.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지만 북한을 상대로 대화의 입구로 들어서기 위한 전략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라면서 "비핵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지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해 비핵화보다는 북한의 핵 활동 중단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우선 중단이 시급하다. 영변 원자로, 핵무기 개수 증가, 우라늄 농축 원심 분리기를 중단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라며 "핵 없는 한반도를 장기적 목표로 견지하면서 우선 핵무기 생산을 중단시키기 위해 대화로 국면을 전환하는 것이 실질적 해법"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미 대사대리가 정부 고위 당국자와 만나 '핵 없는 한반도'의 표현에 대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는 <한겨레>의 10일 보도와 관련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북미 대화 분위기 조성과 관련 "내년 4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돼 있다. 지금부터 4개월 평화로 나아가느냐, 그 상태에 머무르느냐 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대화 여건을 조성하고 한반도 정세를 평화로 전환해 낼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저라도 나서서 중국도 가고 역할을 해볼 생각이다.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주변에 영향력 있는 국가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소통해서 분위기를 조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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