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트라우마'로 생긴 우울증, 한국으로 이주해 회복됐습니다

[한국 입양인 2세 이야기] 사랑과 상실

제 이름은 멜라니이고,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났습니다. 미네소타는 약 2만 명의 한국 해외 입양인이 자리 잡은 곳으로, 전 세계 한국 입양인의 약 10%가 이곳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제 친어머니는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무렵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22 살에 저를 낳아 미네소타에서 국내 공개 입양(open adoption)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친어머니가 직접 고른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입양기관에서 친어머니는 여러 후보자들의 신청서가 담긴 서류를 받았고, 그중 지금의 부모님의 지원서를 골라 직접 인터뷰까지 한 뒤 최종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자신이 자라면서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했던 돌봄과 공감을 제 양어머니에게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사랑을 저에게 줄 수 없을 것 같아, 저를 따뜻하고 친절한 새로운 엄마 품에 맡기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평생 친어머니와 연락을 이어왔고, 어릴 적에도 한 해에 몇 번씩 만나곤 했습니다. 제 친아버지는 백인이어서 저는 혼혈이지만, 아버지를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제 입양 가족은 모두 백인이어서, 저는 늘 눈에 띄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양부모님은 저를 친자식처럼 사랑했고, 저와 또래인 사촌들도 많아 가족들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백인 양부모에게 입양될 당시의 모습. ⓒ필자 제공

2021년 한국으로 이사 간다고 처음 사촌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왜 한국이야?”라며 혼란스러워하고 궁금해했습니다. 제 혈통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정말 ‘그들 중 한 명’으로 자랐기 때문에, 중학교 무렵까지는 저 자신이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왜 우울증을 겪는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입양 트라우마, 그리고 인종과 뿌리에 대한 혼란으로 인해 강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결과였음을 압니다. 부모님은 ‘넌 그냥 우리 딸’이라고 말하며 저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학교와 사회에서 마주한 인종차별은 저를 더 고립되고 불안하게 만들었고, 가족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결국 한국으로 이주한 것이 저를 우울증에서 회복시키고, 가족과 다시 연결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양가족이 분명 제 ‘진짜 가족’이지만 동시에 제 혈통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두려웠습니다. 그들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한국 문화를 저와 함께 포용하며, “우리 딸이 한국인이니까 우리도 한국인이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제 가족이 언제나 제 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한편, 친어머니와도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처음 양부모님을 만났을 때 친어머니는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 오직 미국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 살 무렵, 그녀는 조금씩 한국과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이 한국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때 저는 인종차별이나 한국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그녀께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도 깊은 상처로 힘들어하며 “넌 주변이 대부분 백인들이니까 나와 다르다. 넌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국 이야기는 사적인 문제라며 저에게 꺼내지 말라고 했죠. 제가 한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탐탁지 않아 하셨고, 친조부모에 대해 묻자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그 후 1년 넘게 연락을 끊었지만, 시간이 지나 그녀는 저를 다시 받아들이셨고, 작년에 서울까지 방문하셨습니다. 당시 그녀는 여전히 저를 향해 화가 가득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그녀가 외면해온 친부모와 고국과의 관계를 다시 마주하도록 강요했으니까요. 다행히 그녀는 결국 자신의 상처를 넘어서셨고, 우리의 관계는 강해졌습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저의 F4 비자(재외동포가 한국에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함께 준비해주셨고, 덕분에 저는 더 이상 비자 문제로 불안해하지 않고 한국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양인의 자녀들이 누려야 할 법적 권리에 관해서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만 해도 3년간 여러 종류의 비자를 전전하며 서류비로 1천 달러 이상을 썼습니다. 친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F4 비자를 받을 길이 전혀 없었을 겁니다. 입양기관에 직접 찾아가 서류를 준비하고, 시청에 가서 고아 가족 증명서를 떼어준 친어머니께 영원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입양인들에게 이런 절차는 정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에, 많은 분들이 결국 하지 못하고, 그 자녀들 역시 한인 동포(F4) 비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입양인의 자녀들이 스스로 서류를 준비해 비자를 얻는 방법은 없습니다. 듣자 하니 교포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부모나 조부모가 직접 서류를 준비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입양인과 이민자의 자녀들을 위한 절차가 앞으로 더 쉬워질 거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 친어머니와 필자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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