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불평등이 초래한 초양극화 사회
반도체 산업에서 압도적 기술우위를 말할 때 쓰였던 '초격차'라는 용어가 '초양극화'라는 사회 격차 표현으로 탈바꿈해 유행하고 있다.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일부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이 다시 폭등했던 최근 시장 상황이 배경이 되었다. 30평 수준의 아파트가 강남에서는 30억 대를 넘지만, 서울 경계를 벗어나기만 해도 바로 3억 대로 떨어진 곳이 수두룩하니 '초양극화' 현상이라는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다.
사실 소득분배는 문재인 정부 시절 다소 개선되었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정체되었지만, 자산분배는 최근 7~8년 동안 지속적으로 나빠져, 지난해 기준으로 자산 지니계수가 무려 0.612까지 벌어졌다. 부동산 자산과 주식 등 금융 자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랐기 때문인데 그 결과 자산 초양극화 사회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과거 정부에 이어 현재의 이재명 정부도 노동 소득보다 자산소득에 편향적인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초양극화 사회를 촉진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부동산 가격이 이미 충분히 높게 형성된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시작되자, 정부는 이를 투기 현상이라기보다 수요부족이라고 간주하고 공급대책을 서두르는 조짐도 보인다. 정말 서민의 주택수요가 늘어나면 감당 불가능한 고가 주택 지역의 수요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일반 내구재와 달리 주택이라는 자산은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 하락이 아니라 상승으로 귀결되기 일쑤다. 그게 자산 가격이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자산만이 아니다. 주식이나 가상코인 등 금융 자산은 정부가 아예 공공연히 가격 상승을 자축하면서 부추길 정도다. 어느새 실물경제 지표 대신 주가가 경제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가 되었고, 1400만 주식 보유자와 1000만 코인 보유자는 이제 집권당의 유력한 지지기반이 되었다. 금융 과세가 증세가 아니라 감세 대상이 된 건 당연했다. 일반의 통념과 달리 금융 자산분배는 부동산보다 압도적으로 소유의 불평등이 크므로 금융 자산에 대한 세제 혜택은 초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AI도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
자산 가격의 이례적 상승은 대체로 거품의 조짐일 가능성이 크다. 투기가 개입된다는 말이다. 실물경제가 여전히 바닥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주가만 나 홀로 천정 뚫고 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최근의 주가와 코인 가격 동요는 대표적으로 불안정한 거품 현상의 하나다. 하지만 거품은 반드시 꺼지며 그래서 거품이다.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주가 거품이 꺼지거나 장기하락세로 바뀌면 여기에 의존해 온 정부는 신뢰에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주가 거품과 불안정은 지금까지 주가를 떠받쳐온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 거품론과 맞물려 있다. AI 거품이 주가 거품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미국을 기준으로 앞으로 매년 1조 달러 이상이 AI 업계에 투입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간 약 6500억 달러 규모의 AI 수익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AI 기업이 고작 연간 약 500억 달러 이상을 넘지 않는 수익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챗GPT로 AI 시장의 80%를 장악한 오픈AI조차도 지금까지 연간 5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보는 중이다.
사실 AI는 기대보다 수익 창출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테이터센터에 투자되는 효과를 제외하고는 AI를 적용하는 기업들에서 생산성 효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고 있다.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효과도 두고 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정부에서 복지삭감과 저성장으로 고통받아온 시민의 삶에 희망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주가뿐 아니라 AI라는 기술에도 과도하게 의존해온 이재명 정부는 복지를 상징하는 '기본사회 실현'도 상당 부분 AI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AI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우려는 꽤 교차하고 있다. 책임 있는 AI를 연구하는 사이즈믹재단(seismic.org)이 미국과 영국 등 1만 명의 시민들을 상대로 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의료분야 등에서 AI의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하지만, 전쟁이나 테러 그리고 불평등에서 AI가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전망했다. 더 유의할 사항은 남성보다 여성들이, 고소득자보다 저소득 계층이 AI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시민들은 AI의 출현과 확산이 자신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걸 걱정한다는 말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복지를 꿈꾸며
자산 가격에 의존해 시민의 물질적 개선을 전망하고, AI라는 기술에 의존해서 경제와 복지의 진전을 바라는 이재명 정부의 기대는 거품이 꺼지는 순간 문자 그대로 물거품이 될 위험성이 크다. 지금은 시민복지 증진과 사회권 강화를 위해 오히려 자산 격차를 과감히 줄이고, 더 탄탄한 복지 재정으로 AI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기술 변동이 초래할 부정적 충격에 대비해야 할 때다.
특히 갈수록 강도와 빈도가 커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과 녹색전환을 시도하면서, 기후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복지국가 정책 역시 새로운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더 나은 시민들의 삶을 위해 탄탄한 사회 안전망을 깔아주는 정책에 더해서, 기후 재난으로부터도 안전하도록 '지붕을 씌워주는 기후정책'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주요 도시 중심에서 이런 진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후와 환경 재난으로부터 안전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정의로운' 공간에 살아갈 비전을 제시해주는 '도넛 도시' 모델이 그것이다. 코로나19 직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기후와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도넛 비전을 공개적으로 선포했고, 이후 미국의 포틀랜드,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의 콘월 등 전 세계의 약 80여 개 지방정부와 도시로 확산되는 중이다.
내년 6월에는 '제9회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무분별한 개발 남용보다 시민에게 밀착된 복지공약이 얼마나 제안될지 벌써 관심이 가지만, 못지않게 기후공약이 여기에 잘 결합되어야 한다. 희망은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지난 7개월 동안 전국 곳곳을 방문하면서 조사한 결과, 적어도 49개 이상의 사례에서 기후 대응과 복지가 어울린 정책들이 이미 지역에서 실험되거나 실천되고 있었다('기후위기 너머, 지역에서 찾은 녹색전환의 해법'이라는 녹색전환연구소의 보고서가 곧 공개될 예정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기후와 복지가 결합된 새로운 미래 복지사회 전망이 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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