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6일, 비수도권 지역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의사제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 법안은 의대 신입생 중 일부를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뽑아서 학비, 기숙사비 등을 국가가 지원하는 대신, 의대 졸업 후 최대 10년 동안 정해진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비수도권, 특히 비도시 지역의 의사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이승만 정권 시기부터 '무의촌(무의면)' 해소가 사회정책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을 정도로 유구한 난제다. 그에 따라 대응도 여러 방면으로 모색 되었다. 1950-60년대에는 정부가 급여와 지원금을 지급하며 공의(公醫)를 모집해 무의면에 배치했고, 군사정권 하에서 의사를 강제로 동원하거나, 의사개업을 허가제로 변경하는 시도도 있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이후에는 공중보건의사제도가 도입되었고, 최근에는 시니어 의사 지원사업이나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강제적으로 동원한 경우든, 인센티브를 통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경우든 지역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이 추진됐지만, 장기적으로 성공했다고 할만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다만 공중보건의사제도는 의사 개인에게 병역 의무라는 동기를 주면서도 강제성을 결합한 제도로, 1980년대 무의촌을 해소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지역의사제 역시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여겨지던 의사가 되는 과정에 국가가 역할을 하는 한편, 일정 수준의 강제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나마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이 제도 하나로 지역 의사 부족 문제가 모두 해결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제도에 반대하는 의사들 뿐만 아니라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졸업 후 10년 의무 복무에 수련 기간이 포함되면, 실제 전문의로서 지역에 기여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교육과 수련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은 채 인력만 배치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이른바 정주 여건 개선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꾸준하다. 제도에서 말하는 '지역'과 길러내고자 하는 '의사'는 정확히 어떤 지역과 어떤 의사인지 명확하지 않고, 그 의사들은 어떻게 선발하고, 교육하며, 수련시킬 것인지가 현재 논의에서 빠져있으며,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의사를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귀 담아 들어야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지역에 의사를 보내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기존의 지역 의사들이 유출되는 구조에도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구조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보건의료체계 전반은 물론이고, 사회경제체제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 의사 유입 축소와 유출 확대를 야기하는 구조적 힘은 단지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제 큰 틀만 마련된 지역의사제도가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실제 제도의 내용을 결정하는 하위 법령을 잘 만들어나갈 뿐만 아니라, 이후 보건의료 정책과 산업, 복지,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후속적 변혁이 함께 요구된다.
지역의사제도로 시작한 이야기가 갑자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어, 오히려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해 보일지도 모른다. 몇 가지 정책을 더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단순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시행착오와 논쟁을 거치며 답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는 짚어볼 수 있다.
의사가 유출되는 구조에 개입하는 출발점은 인식과 관점의 전환이다. 국가(중앙정부), 의료공급자, 지역 주민의 관점과 이해는 때때로 겹치기도 하지만, 적지 않게 어긋나기도 한다. 예컨대 국가가 통치와 행정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실제 지역 주민의 고통이 줄어들었는지와는 무관하게 지역에 보내는 의사 '숫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며 핵심 지표가 되기 쉽다. 훗날 뉴스에서 제도를 통해 몇 명의 의사가 배출되었고, 어느 지역에 몇 명의 의사가 배치되는지를 성과처럼 전하는 보도가 쏟아질지도 모른다.
중앙정부의 결정에 따라 일률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은 각 지역의 고유한 현실을 가리기도 한다. 예컨대 전국적으로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대표적 이슈로 다뤄지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응급 처치 이후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는 과정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오기도 한다. 병원 간 이송에 민간 구급차를 이용하는데, 지역 내 민간 이송 업체가 없어 장시간 대기와 과도한 비용이 주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관련영상 바로가기).
결국 문제를 '지역 의사 수의 부족'으로 환원되도록 놔두지 않고, 지역 의사 증가를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각 지역 주민들의 구체적인 불편과 고통을 얼마나 덜어주었는가에 주목할 때, 지역 주민(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의사가 유출되는 구조에 대한 개입'이라고 해서 곧바로 의사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해서도 안 된다. 물론 의사들이 비도시 지역에서도 적절한 경력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의사의 지역 유출 배경에는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종속된 현재의 사회경제적 구조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더 근본적으로는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에게 더 많은 권한과 자원이 주어지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의사제에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과 그 이후 제도 운영 단계에서, 지역 주민과 지방정부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의사제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특정한 지역에 일정 수의 의사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플 수 있고, 치료받으며,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이는 제도의 중심축을 지역 주민의 관점과 삶으로 과감히 이동시켜야 가능하다. 주민들과 지방정부가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지역 의료의 방향과 내용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때 실질적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사제는 그 자체로 완결된 해법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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