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첨단 인프라 구축 사업 부지 선정이 전남 나주로 결정되면서, 전북 정치권과 지역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지역 유치 실패가 아니라 '정부 스스로 제시한 공모 기준이 실제 평가에서는 지켜졌는가'라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고문에는 분명히 명시돼 있다.
'소요부지는 지자체에서 무상양여 등의 방식으로 토지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는 문구다.
법조인 출신 박희승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조건을 가장 명확하게 충족한 곳은 새만금 뿐이었다"며 "기준이 명문화돼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기준이 작동하지 않은 전형적인 행정 왜곡 사례"라고 직격했다.
실제 전북도가 제안한 새만금 부지는 대부분 국가·공공이 관리하는 토지로 구성돼 있고, 무상양여 및 소유권 이전이 제도적으로 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다. 전북도는 단순한 장밋빛 계획이 아닌, 50년 무상임대 이후 소유권 이전, 출연금 방식의 즉시 이전 모델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나주 선정부지는 국가산단 토지가 14%에 불과하고 나머지 86%는 절대농지와 준보전산지·묘지 등의 지장물로 이루어진 개인소유 토지여서 지자체가 무상양여 등의 방식으로 토지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전북 정치권의 주장이다.
이 문제는 국제적인 대형 과학 인프라 입지 선정 원칙과 비교할 때 더 뚜렷해진다. 대형 과학 인프라는 단기적 산업 인프라보다, 장기적 법적 안정성과 사업 지연 리스크 최소화가 핵심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경험이다.
실제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은 모두 ‘국가가 통제 가능한 부지’와 ‘토지 소유권 안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번 결정은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북 지역의 문제 제기다. 과기부 공고문이 요구한 핵심 조건을 가장 명확히 충족한 지역이 탈락하고, 법적·행정적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부지가 선정됐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등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산업 인프라보다 ‘토지 소유권의 안정성’과 ‘법적 리스크 최소화’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왔다"면서 "대형 과학 시설은 속도가 아니라 안정성이 핵심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이번 한국의 결정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토지 확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행정·법률 리스크를 정부 스스로 키운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책 신뢰의 붕괴다. 전북은 핵융합 연구 기반 유치를 위해 10여 년 이상 준비해왔고, 새만금은 국가 차원에서 여러 차례 전략 부지로 거론돼 왔다. 그럼에도 마지막 단계에서 기준이 모호해지고, 평가 과정이 비공개로 남겨지면서"처음부터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기획 공모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북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평가 기준, 배점 방식, 탈락 사유에 대한 전면 공개다. 결과만 통보하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분노도, 행정의 신뢰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태양'은 미래 에너지 기술의 상징이지만, 그 유치 과정은 여전히 과거식 불투명 행정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준은 있었지만, 기준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이번 논란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국가 R&D 정책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지는 이제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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