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화재 사망자 94명으로…"한국 여행 간 딸 전화 받고 탈출·경보 못 들었다"

수색 작업 마무리 단계·실종자 수 갱신 안 돼…화재경보 안 울렸다는 주민 증언 속출

홍콩 아파트 화재 참사 희생자가 94명으로 늘었다. 수색·구조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여전히 실종자가 많아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탈출 주민들 사이에선 화재 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속출했다.

<로이터>, <AP> 통신 등을 보면 28일(현지시간) 오전 홍콩 당국은 이틀 전 발생한 북부 타이포 구역 고층 아파트 단지 웡푹코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94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소방관 11명을 포함해 76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번 화재는 1948년 창고 화재로 176명이 숨진 뒤 홍콩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화재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당국이 실종자 수를 27일 오전 이후 279명에서 갱신하지 않은 가운데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9시까지 수색 및 구조 작업이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불길은 전날 오후부터 통제 상태로 접어들었다.

26일 오후 2시51분께 약 2000세대가 입주해 4600명 주민이 살고 있는 이 31층 아파트 단지에 불이 나 급속도로 번지며 단지 내 8동 중 7동이 화염에 휩싸였다. 발화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주민들은 지난해 7월부터 진행 중인 보수 공사 작업자들의 흡연이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화재가 다른 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요인으론 강풍 외에도 공사 중 설치된 가연성 대나무 비계 및 스티로폼, 안전망의 화재 안전 기준 충족 미달 등이 지목되고 있다. 관련해 건물 보수 담당 업체 간부 2명과 공학 컨설턴트 1명이 체포됐다. 이 아파트는 1983년 입주를 시작했다.

홍콩 정부는 집을 잃은 주민 지원을 위해 3억 홍콩달러(약 565억 원) 규모 기금을 설립하고 대대적 보수가 진행 중인 모든 주택 단지에 대해 비계 및 건축 자재가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지 즉각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900명이 대피소에 몸을 맡기고 있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의 통곡이 계속됐다. 영국 BBC 방송은 화재 아파트에 살고 있던 주민 청(45)이 27일 이 방송 중국어판과의 통화에서 전날 3시께 겁에 질린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공포에 휩싸인 채 통화를 이어갔지만 아내는 어느 순간 연기가 짙어져 기절할 것 같다고 했고 청의 "버티라"는 한 마디가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였다고 한다. 연락두절 끝에 청은 "아내는 그가 사랑하는 고양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청 가족은 단지에서 화재가 가장 먼저 발생한 동 23층에 거주 중이었다.

이 아파트 거주자의 3분의 1이 고령층으로 신속한 대피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화재 경보기도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BBC는 72살 여성 주민 찬이 화재 당시 한국 여행 중이던 딸의 대피하라는 전화를 받고 비로소 상황을 인지해 탈출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주민 우(82)도 화재 경보음이 아닌 남편의 전화를 받고 불이 난 것을 알았다고 방송에 전했다.

다른 주민 라우 유 흥(78)도 <뉴욕타임스>(NYT)에 우연히 욕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옆 건물에 불이 붙어 있어 아내와 함께 긴급히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았다.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자력으로 탈출했다"고 토로했다.

▲28일(현지시간) 이틀 전 불이 난 홍콩 타이포 구역 고층 아파트 단지 웡푹코트 인근에서 소방관들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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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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