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월드컵 드림' 가로막는 거대한 '트럼프 장벽'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아이티 국민들의 입국을 허하라

한국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을 때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월드컵이 뭔지 몰랐다. 다만 지역 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꺾었다는 사실에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1986년에서야 한국은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월드컵 진출이 큰 국민적 경사였지만 이후 11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나가다 보니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국에서 이제 의미가 없는 뉴스가 된 지 오래다.

내년 6월에 펼쳐지는 북중미 월드컵에는 모두 48개국이 참가한다. 기존의 32개국보다 16개국이나 늘어난 숫자다. 물론 이 같은 변화에는 월드컵 수익 극대화라는 FIFA(국제축구연맹)의 야심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월드컵에서 다른 국가 선수들의 경기만을 지켜봤던 축구 약소국 국민들에게는 희망이 됐다.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가인 카보베르데, 퀴라소가 그랬다.

아비규환의 아이티, 예선 홈 경기 없이 월드컵 본선 진출한 최초 국가

카보베르데, 퀴라소보다 더 크게 화제 된 본선 진출국은 단연 아이티다. 아이티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세계인의 관심을 끈 이유는 명확하다.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 속에서 이룬 기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대지진으로 3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목숨을 잃은 아픔을 겪었던 아이티는 2021년 조베넬 모이스 대통령이 암살된 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부분 지역이 무장 갱단이 통제하는 무법천지가 됐다.

지금까지 1200명이 넘는 국민이 갱단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400여 명의 여성들은 성적으로 유린당했으며 145명은 납치 당했다. 이 때문에 130만 명에 달하는 아이티 국민들은 공포에 떨며 집을 떠나야 했다.

최악의 국내 상황은 아이티 축구 대표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티 축구 대표팀의 세바스티앙 미뉴 감독은 아이티가 아닌 해외에서 팀을 원격으로 지휘해야 했다. 외국인의 아이티 입국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화를 통해 선발 선수를 뽑고 다음 경기에 대한 전술 지시를 했다. 아이티 대표팀의 월드컵 예선전도 자국이 아닌 이웃 국가 퀴라소에서 치러야 했다. 그래서 아이티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단 한 차례의 예선 홈 경기 없이 본선에 진출하는 국가가 됐다.

▲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시민들이 자국 축구대표팀이 52년 만에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자 거리로 나와 기뻐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 감격한 아이티 "우리는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다"

자연 재해와 정치 불안에 시달렸던 아이티 국민들에게 자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 줄기 빛이다.

지난 19일(한국시간) 니카라과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아이티가 2-0 승리를 거둬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짓자 아이티 국민들은 환호했다.

포르토프랭스에 거주하고 있는 한 아이티 시민은 27일 <아이티 타임스>를 통해 "아이티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우리가 저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 일이었다"라며 "(갱단 테러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는 축구와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아이티 스포츠 평론가 파트리스 듀몽은 니카라과와의 경기가 끝난 뒤 갱단 세력에서 비교적 안전한 포르토프랭스의 한 구역에서 아이티의 월드컵 진출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는 지난 20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가난과 폭력으로 버림받은 아이티가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을까"라며 "우리도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다. 축구 선수들이 아이티의 희망을 살려냈다"고 감격했다.

네이선 라게르 아이티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아이티의 본선 진출 소식에 난 할 말을 잃었다. 2~3년 전만 해도 아이티의 월드컵 진출은 상상할 수 없는 판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티 국민들의 월드컵 직관 불가

하지만 지난 1974년 이후 5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아이티 국민들은 안타깝게도 내년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을 직접 관람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아이티를 포함한 19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미국 입국 금지 명령을 내렸고, 미국과 함께 북중미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캐나다와 멕시코도 똑같은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가 모든 아이티 국민들의 입국을 금지한 이유는 과거 미국 입국 비자를 받고 들어온 아이티인들의 불법 체류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2023년에 미국에 관광이나 비즈니스 목적으로 비자를 받고 입국한 아이티인 가운데 31.38%가 정해진 기간보다 오래 미국에 체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빌미로 트럼프 행정부가 입국을 제한하면서, 북중미 월드컵 때에도 입국 자격이 있는 아이티 국민은 오직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와 그들의 가족, 코치와 스태프로 제한된다. 미국 국무부는 아이티 축구팬이 월드컵 입장 티켓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 입국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메가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 대회 역사상 특정 국가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입국을 원천적으로 거절한 개최국은 지금까지 없었다. 2022년 카타르와 2016년 러시아의 경우도 월드컵 입장 티켓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의 입국은 허용했다.

이 때문에 적어도 월드컵 입장 티켓을 보유하고 있는 선량한 아이티 국민들의 미국 입국은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초 흑인 공화국 아이티의 '월드컵 드림'

아이티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것은 1974년 서독 월드컵 때였다. 16개국만 출전할 수 있었던 당시 월드컵 본선에서 아이티는 3전 전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이티는 조별리그 예선전에서 강호 이탈리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반전에 아이티가 선취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수비 조직력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불렸던 이탈리아에는 1142분 동안 무실점 행진을 기록 중이었던 디노 조프 골키퍼가 있었지만 아이티의 골을 막지 못했다. 이 골을 넣은 아이티의 스트라이커 엠마뉘엘 사논이 현지 서독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이유다.

이후 아이티는 월드컵과 거리가 먼 팀으로 전락했다. 가난과 정치적 부패로 축구 거버넌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었다. 심지어 2020년에는 이브 장-바르 아이티 축구협회 회장의 여자 선수에 대한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 FIFA로부터 영구 제명 조치를 받기도 했다.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동원한 커피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펼쳐졌던 아이티는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다. 아이티는 흑인 노예 출신자들이 주도한 혁명을 통해 1804년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이티의 혁명 전통과 최초 흑인 공화국이라는 자부심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인 '레그레나디에(척탄병)'에 그대로 배어 있다. 아이티 축구 선수들과 팬들은 경기장에서 '그레나디에 알라소(공격하라 척탄병)'를 외친다.

가난은 물론 기쁜 소식에 너무나 오랫동안 굶주려 왔던 아이티 국민들의 환호성이 북중미 월드컵에서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아이티의 환호성이야말로 48개국으로 참가 팀 숫자가 대폭 늘어난 북중미 월드컵의 진짜 의미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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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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