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대만 문제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가 미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우선 중국과 일본이 충돌하고 있다. 발단은 11월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의회 답변에 있었다. "만약 중국이 대만에 대해 전함이나 무력행사 등을 하면,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중국 정부는 자국민의 일본 여행 및 유학 자제 요청, 수산물 수입 중단, 문화교류 축소 등의 보복 조치에 나섰다. 또 유엔 사무총장에 서한을 보내 "일본이 대만 해협 상황에 무력개입을 시도할 경우 이는 침략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자위권을 발동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일본은 유엔에 반박 서한을 보내는 한편, 총리의 발언은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에 따른 것이라며 발언 철회를 거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이다. 다카이치의 발언 직후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는 "더러운 목은 주저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파문이 커지자 미국의 한 기자는 이에 대한 트럼프의 의견을 물었고, 트럼프는 "글쎄, 우리의 많은 동맹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고 답했다.
11월 24일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전화통화 내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대만의 중국 복귀가 전후 국제 질서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강조하면서 "중·미는 과거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웠으며, 현재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를 공동으로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중국은 과거 2차 세계대전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미국 측은 대만 문제가 중국에게 중요함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이는 일본의 입장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 정권 때부터 언급되어온 "대만 유사사태가 곧 일본 유사사태"라는 입장은 일본의 자체적인 판단 못지않게 미국의 요구도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이와 연관된 안보 3법 제정도 '미일동맹의 일체화'의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또 2025년 2월 트럼프와 기시다 당시 일본 총리가 합의한 공동성명에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 촉구 △무력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반대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 지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다카이치는 5500억 달러의 대미 현금 투자 약속을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2027년으로 예정되었던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2%로의 인상 계획을 2025년으로 앞당겼다. 이들 조치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중일 간에 충돌이 일어나자 방관자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10월 말 부산 정상회담을 계기로 "큰 그림"을 향해 미중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트럼프의 셈법이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내년 4월 중국 국빈 방문에 이어 시진핑의 방미를 요청한 상태이다. 트럼프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SNS에 "이제 우리는 큰 그림(big picture)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트럼프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은 미중 무역협상이 최대한 미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는 내년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과거엔 선거 때마다 '중국 때리기'가 유행했다면, 이번에는 미중관계 개선이 '마가(MAGA)'를 실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미중러가 참여하는 핵군축 협상, 북미정상회담의 재개, 중동 평화정착 등도 트럼프가 원하는 바이다. 이는 트럼프가 간절히 바라는 노벨평화상과 연관이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이들 이슈에 대해 중국의 양보와 협력을 받아내기 위해 대만 문제가 양국 관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커 보인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완화는 한국 외교안보에도 함의하는 바가 크다. 11월 14일 공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선 "양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양 정상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독려하였으며,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였다"고 했고, 같은 날 공개된 한미연례안보회의(SCM) 공동성명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겼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우선 두 문서에 대만 문제와 직결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는 이를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재명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었고, 미국도 이를 강하게 관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에 양안 문제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8월 24일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두고 "우리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또 하나는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2025년 2월 미일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겼던 "무력 또는 강압(force or coercion)"이라는 표현이 이번 한미 합의 문서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무력 또는 강압"은 중국을 겨냥한 표현이다. 이에 반해 "일방적 현상 변경"은 중국과 대만 모두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중국이 무력이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만을 중국에 "복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만이 독립을 시도하는 것도 "일방적 현상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 정부가 결자해지의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일본 정부의 설명대로 다카이치의 대만 발언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면, 중일관계 회복은 더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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