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고 발언한 이유로 "구체적 사례를 들어 질문했기 때문에 솔직하고 성실하게 답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같은 대답을 계속 반복하면 예산위원회에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6일 의회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입헌민주당 대표를 포함해 야당 대표 4명과 토론회를 가진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본인이 답변한 대만 유사시 관련 답변에 대해 '질문자가 대만 유사로 한정해 해상교통로 봉쇄를 언급하며 질문했다"며 그에 따른 답을 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일본 방송 후지뉴스네트워크가 보도했다.
앞서 7일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의 비상사태가 '존립위기상태'에 해당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존립위기상태'는 지난 2015년 아베 신조 총리 재임 당시 일본 의회가 제정한 안보 관련법에 명시된 개념으로,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본과 밀접한 다른 국가가 공격을 받아 일본의 영토가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 결국 대만 유사시를 '존립위기상태'로 규정하겠다는 것은 곧 대만에 자위대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논란이 일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당시 발언에 대해 "구체적인 사안에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예산위원회인 만큼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답변만 되풀이할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예산위원회가 중단될 가능성도 있었다"며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 질문한 만큼 그 범위 내에서 성실히 답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존립위기사태'의 인정 여부 및 어떤 사태가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하는지는 실제로 발생한 사태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정부가 모든 정보를 종합해 판단한다. 이는 반복해서 답변해온 바와 같다"며 "일본 정부의 통일된 견해는 앞서 답변한 그대로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다 대표가 총리의 발언으로 인해 일중 관계가 악화됐다고 지적한 데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기반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포괄적으로 구축하고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기로 했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양측에 우려 사항이나 문제가 있는 경우 정상 간 소통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각은 현재 이러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며 중국과 정상급의 소통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은 중국과의 대화에 있어 항상 건설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유지해 왔다. 앞으로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더욱 포괄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국익을 극대화해 나갈 것이다. 이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대만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우리는 비정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 따른 모든 권한을 포기했고, 대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이는 이번 발언을 계기로 대만과 관계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경계하는 것으로 읽힌다.
한편 다카이치 내각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3원칙'을 재검토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관련, 실제 의향이 있는 것이냐는 사이토 데쓰오(斉藤鉄夫) 공명당 대표의 질문에 다카이치 총리는 "비핵 3원칙을 정책 지침으로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핵무기 반입 금지 문제에 대해서는 2010년 민주당 정권 시절 오카다 외상이 한 답변을 따르고 있다"며 "핵무기 일시 반입을 허용하지 않고는 일본의 안보를 지킬 수 없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당시 정권은 정권의 운명을 걸고 결정을 내리고 국민에게 그 결정을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3대 전략 문서 검토 작업은 시작될 것이지만, 비핵 3원칙에 대한 재검토를 명시적으로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이토 대표는 "총리는 확장 억지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일본 총리로서 균형 잡힌 자세가 아니다. 비핵 3원칙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전쟁 중 유일하게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일본이 조금이라도 흔들리고 비핵 3원칙을 재고한다면, 핵 폐기는 꿈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사이토 대표는 "평시에 비핵 3원칙 재검토를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며 재검토가 이루어진다면 내각의 결정이 아닌 국회 결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은 전쟁 중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유일한 국가다. 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매우 중시한다. 일본은 NPT 체제 하에서 추가적인 핵확산을 막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단호하고 현실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알고 있듯이 일본은 전쟁 중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유일한 국가로서 국제 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라며 "따라서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향후 3대 전략문서를 작성하는 데 최대한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대 전략문서는 국가안전보장전략(NSS), 국가방위전략(NDS), 방위력정비계획(MTP)을 의미하는 것으로, 2013년 아베 신조 총리 집권 당시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후 2022년 기시다 후미오 내각 때 개정된 바 있다.
여기에는 북한과 중국 등을 위협 및 도전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반격 능력 보유'를 명시했다. 이는 적의 미사일 발사 거점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기존 '전수방위(專守防衛, 방어를 위한 무력 행사만 가능)'에서 크게 벗어나는 내용이라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해당 문서 개정 착수에 돌입했다. 지난달 23일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문>은 전날인 22일 열린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며 "3대 전략문서 재검토 작업을 지시하겠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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