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숙인보다 거리시민이라 불리고 싶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보이는 노숙인과 보이지 않는 노숙인

노숙인도 국민 맞나요?

"저도… 노숙인도… 사람 맞죠? 저도 우리나라 사람… 국민 맞나요…?"


해질 무렵 서울역 부근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문 앞에서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돈이 없고 살 곳도 없어요, 아버지가 재혼했고 저는 생판 모르는 새어머니가 들어 온 그 집에 더 이상 살 수 없어 집을 나왔어요. 아는 형들이 승합버스에 태워줘서 여기저기 일하러 다녔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하라고 해서 싸우고 나왔어요, 갈 곳이 없어요."


40세 전후로 보이는 남성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겨 떠돌다 왔다며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에서 머물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 노숙인복지법)에서 정한 노숙인 등이라 함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2024년 노숙인 등 실태조사에서 조사의 대상인 "노숙인 등"은 거리 노숙인(거리 노숙, 노숙인 이용시설(종합

지원센터·일시보호시설) 이용자), 시설 노숙인(자활·재활·요양시설의 입소 노숙인), 쪽방주민(쪽방상담소에서 상담·관리를 받는 주민)이다.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는 '노숙인 복지법' 제9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3조에 따라 실시되었다. 이번 조사는 2016년, 2021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되었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6월 보도자료를 통하여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는 노숙인 등의 규모, 건강 상태 및 의료이용, 노숙의 원인 및 경제활동, 사회복지서비스 지원 및 이용 등을 조사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결과는 앞으로 다음 실태조사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노숙인 등의 복지정책과 행정 설계의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2024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서 제외된 국민, 혹는 보이지 않는 노숙인 등이 있다면 당사자들의 삶에는 노숙인 정책과 행정이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4년 보건복지부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노숙인은 1만2725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거리 노숙인과 노숙인 시설 거주인, 등록된 쪽방 주민으로서 관리받는 국민의 수다. 2021년 대비 1679명(11.6%) 감소한 수치다. 최근 몇 년간 노숙인 감소 추세라고 보도되지만, 이 숫자가 노숙 현장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인숙, 고시원, 미등록 쪽방,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PC방, 집이 없어서 친구나 지인 혹은 친척 집에 머무는 사람, 교도소나 병원에 머무르고 있거나 입소나 입원 전 주거가 없었기에 퇴원 후 갈 곳이 없는 사람, 심지어 24시간 카페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시민은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통계상 '노숙인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리로 내몰리거나 노숙시설을 찾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 노숙인 법에 근거하여 비적정 주거 환경에 놓여진 '노숙인 등'에 해당한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등을 이용하는 이들이 이 과정을 거쳐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등록된 쪽방 주민들은 매달 부여되는 포인트로 줄서지 않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택할 수 있는 온기창고에서 필요 물품을 고르고 받을 수 있다. 또한 매달 30장의 식권을 받아 인근 식당에서 따뜻한 식사로 교환할 수 있다. 등록된 쪽방에서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면 몇몇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2024년 보건복지부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_노숙인 분포도.

*지역별 분포) 전체 노숙인 등의 52.1%(6,636명)가 수도권*에서 생활 중이며, 특히 거리 노숙인(이용시설 포함)의 경우 수도권 집중도 75.7%(1,022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남

그러나 같은 지역이며 사회경제적 환경이 비슷한 여건임에도 등록되지 않은 쪽방 거주 주민들은 쪽방 주민 복지서비스 제도 밖에 놓여있다. 실제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시설 주변에 등록되지 않은 쪽방 거주 주민들이 수백 명 존재한다. 즉, 노숙인 수가 통계 속에서 줄어든 것은 삶이 개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OECD 국가 중 노숙인 수 낮은 한국, 노숙인 등에게 OECD 국가 중 정말 '좋은 상황'인가

한국의 공식 노숙인 규모는 OECD 국가 중 낮은 편이다. 다만 각 국가들은 각기 다른 조사 기준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북미·유럽은 '비적정 주거'까지 홈리스 개념에 포함한다. 반면 한국은 거리 노숙인, 노숙인 시설, 등록 쪽방 주민의 세 범주만 포함하므로 실제 주거취약계층의 규모와 다른 착시가 발생한다.

미국 뉴욕 맨해턴 지하철역 등을 10여일간 오가며 만난 노숙인들의 흡연은 서울역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합법화되어 있는 마약류의 냄새가 나는 풀 태우는 듯한 향을 쉽게 접하게 된다. 현지 주민은 "일부 마약이 합법이라 쉽게 구할 수 있고 담배보다 더 강한 약물 효과를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노숙인 등 중 일부는 '외로움·중독·질병' 속에서 담배, 술 등과 가까이 하기도 한다. 서울역 부근 노숙인 등이 많은 곳에서는 쉽고 익숙하게 찌든 담배 냄새와 술 냄새를 접한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현장에서 만나는 이용자들 중 외로움, 고립, 삶의 통제력 상실 앞에서 술과 담배 의존이 높아지고, 호흡기·간 질환, 정신건강 문제, 만성 통증이 심해져 병원으로 향하거나 밤사이 질병 등으로 외롭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일단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매일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게 되고 제 때 식사를 하다보면 약물 문제는 많이 완화된다. 그럼에도 실태조사 등에서는 금연·단주 프로그램을 원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확인된다. 그러나 정작 제공할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끊고 싶은데 혼자서는 못 끊겠다"는 고백을 들을 때, 정책과 행정, 현장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미국 뉴욕 후러싱 병원(Flushing Hospital)


Flushing Hospital은 1884년 설립되었으며 1999년 이후 MediSys Health Network과 제휴 퀸즈지역의 가장 오래된 병원 중의 하나이며, 300여개의 병상을 갖춘 비영리병원이다.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40개의 일반 및 전문서비스 제공하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정신건강 및 중독치료 서비스 팀을 구성하여 운영 중이다. 급성 중독문제와 응급환자들을 대상으로 디톡스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노숙인 집 찾아주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독으로 인한 신체,정서,정신적 어려움 진단하고 확인 후 개인 혹은 집단상담 서비스를 진행힌다. 퇴원 후에도 사후관리를 하는데 상담과 동료 서비스 등을 활용한다.


* 2024년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해외연수 약물오남용연수팀, 플러싱 병원, 정신과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학자 예술치료사가 팀을 이루어 협업하며, 한국계 이민자 윤인숙선생님(간호사)의 주체적인 활동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 방문(왼쪽 사진: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필자)(필자 제공)

캐나다의 '매니지드 알코올 프로그램(MAP)'이 주는 시사점


토론토 Seaton House의 MAP(Managed Alcohol Program)은 만성 알코올 의존 노숙인에게 '정해진 시간·정해진 양'의 알코올을 제공함으로써 금단 위험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음주량을 줄이는 위해저감(Harm Reduction) 프로그램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 혹은 윤리, 건강 등의 이유로 "하지 마시라, 끊으시라, 그만하라"라는 강압적 접근보다, 위험을 관리하며 점진적인 회복을 돕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공감하며 동행하는 마음이다.

헌법은 말한다…"모든 국민은 쾌적한 주거를 누릴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 ③항은 명확하다. "국가는 주택 개발 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의 노숙인 정책에서 '주거권'은 부차적 요소였다. '일시보호 → 자활 → 자립'이라는 단계 모델 속에 주거권은 제도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노숙은 선택이 아니라 노숙인 인권의 부재로 인한 결과다. 헌법에 명시된 주거권이 노숙인 정책에 보장되지 않는 한, 노숙 문제는 종식되거나 해결될 수 없다.

"우리는 노숙인보다 거리시민이라 불리고 싶습니다"

2025년 8월, 사회복지법인 인정복지재단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만나샘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미션·비전 재수립 워크숍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하였습니다. 가장 오래 논의된 주제 중 하나는 '호칭'이었다.

"노숙인이라는 말 들을 때… 좀 불편해요."

"우린 사정상 거리에서 사는 시민일 뿐이고, 노숙자라는 말로 낙인 받고 싶지 않아요."


논의 끝에 우리는 당일 시설을 이용하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미리 공지하고, 당사자들은 '노숙인'과 '거리시민' 중 불리기를 원하는 호칭을 투표하였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우리는 노숙인이라고 불리기보다 거리시민이라고 불리고 싶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불리고 싶은 이름에 대한 바람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고 싶다는 선언이었다.

▲ 지난 8월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운영 20주년' 당사자 불리고 싶은 호칭 투표 결과(필자 제공)

소리를 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국민이 많다

노숙인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삶의 궤적이 다양하고 인생 여정에서 거대한 회오리를 만난 경험들이 있다. 고시원·쪽방·비닐하우스 등에서 한달한달 버티거나, 그조차 쫓겨나 찜질방과 PC방 등에서 하루하루 견디기, 거리에서 노숙시설에서 매순간 밀려오는 회환과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연장선상에 있다. '주거 취약계층'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모두 홈리스에 포함되지만, 한국의 법과 통계는 아직 이 다양성을 연계하여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극단적 주거취약계층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토론이 있었고, 필자도 현장에 함께 했다. 이제는 연구에 이어, 정책·행정·학계·정부가 함께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주거권에 근거하여 "선 주거, 후 자립", "주거권 우선 노숙인 정책 체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자립 지원을 필요로 하는 국민입니다

40세 노숙인이 일시보호시설 문 앞에 서서 던졌던 그 질문, "저도 국민 맞죠?" 이제야 담백하게 답한다.

"그럼요. 선생님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노숙으로 지쳐있는 선생님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정기간 푹 쉬시고 다시 일어서기로 해요."

적절한 주거지 없이 살아가는 국민에게 국가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으로서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보이는 노숙인 뿐 아니라 비가시적 주거 취약계층, 가려져 보이지 않는 통계 밖에서 잊혀진 듯 존재하는 마땅히 국가의 복지 영역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할 노숙인 당사자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웃들이 있다.

우리 사회 인권의 지평 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복지현장에서 매일 새롭게 경험하며, 또 고군분투하는 존재 이유일 거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헌법에 보장된 주거권이 있다. 그리고 적절하지 않은 주거 환경 속에 가려진 존엄한 시민이 있다. 그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품격 있는 국가 정책과 행정을 응원한다. 복지한국 공공영역·민간 복지현장·사회구성원으로서 함께 만들어가야 할 다음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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