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좀…"에 돌아온 "안 돼, 이직해"…새백배송 사망 쿠팡기사, 하루 11.5시간 일했다

유족 "쿠팡의 책임있는 태도 나올 때까지 노력할 것"

지난 10일 새벽 업무 중 전신주 충돌 사고로 사망한 쿠팡 새벽배송 기사 오승용 씨가 하루 11시간 30분, 주 평균 69시간 배송 일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인은 주6일 연속에다 고정으로 야간배송 업무를 맡았다. 더구나 휴가도 고인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 택배회사인 쿠팡CLS가 2024년 8월에 내놓은 과로사 대책인 '야간 택배노동자 격주 주5일제'가 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셈이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는 14일 제주도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새벽배송 기사 유가족의 공식 입장과 2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5일 앞둔 휴가 신청도 거절당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고인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하루 쉬고 저녁에 출근해 배송업무를 하다가 그 다음 날 새벽 2시께 배송 중 전신주와 충돌해 사망했다.

고인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전, 5일 연속으로 새벽 배송 업무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주 6일 연속 고정 야간배송 업무를 해왔다는 이야기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장례 이후 이틀간 휴무를 회사에 요청했으나 대리점에서는 이틀은 쉴 수 없다고 불가 통보했다. 결국 고인은 하루만 휴식을 취하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르렀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는 "연속적 야간 노동, 장시간 노동에 이어 곧바로 아버님을 잃은 슬픔 속에 장례를 치러내면서 고인은 매우 큰 신체적 무리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다"며 "하지만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채 또다시 야간배송업무에 투입되었다. 이것이 고인을 안타까운 사고로 몰고 간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평소에도 휴가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 유족은 이날 쿠팡 대리점 관리자와 고인 간 나눈 카톡을 공개했다.

이 내용을 보면 4월 12일 저녁 6시께 고인은 "팀장님, 27일 휴무 될까요~?"라고 물었고 팀장은 다음 날 아침 8시께 "안 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실려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셔야 될 것 같네요"라고 15일 뒤에나 쓰는 휴가를 거절했다.

그러자 고인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휴가 신청을 철회했다.

▲ 고인과 쿠팡 대리점 관리인이 나눈 카톡. ⓒ유족

연속 7일 이상 초장기 업무도 수행해

고인이 속한 대리점에서는 주6일 연속 근무가 만연했고, 심지어 연속 7일 이상 초장기 업무를 수행한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의 업무카톡방에서 대리점 관리자가 매일 올리는 근무표를 보면 대리점 내 충분한 백업기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택배노조 제주지부 측은 "이것은 매우 부족한 인력운용 현황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이로 인해 고인도 주 6일의 장시간 노동 속에서 맞게 된 아버님 장례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만 쉴 수밖에 없었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조사(弔事)나 산업재해 등 노동자가 불가피하게 수일을 일하지 못하게 됐을 경우에도 (쿠팡에는) 대체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업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며 "충분한 휴식과 재정비로 노동자 스스로가 정상적으로 일터에 복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확인된 업무표를 보면 연속 7일을 초과해 근무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그간 쿠팡CLS는 연속 7일 이상은 동일 아이디로 쿠팡CLS 어플리케이션의 로그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밝혀왔다.

관련해서 택배노조 제주지부는 "연속 7일 이상의 초장시간 노동이 이뤄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기사 본인의 아이디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업무를 하는 꼼수가 고인의 대리점에서도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쿠팡CLS가 직접 조사하여 신뢰성 있게 발표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유족 "쿠팡의 책임있는 태도 나올 때까지 노력할 것"

고인의 유족은 이날 입장문에서 "고되고 힘든 택배노동에 내몰렸다가 희생된 우리 가족 고 오승용의 갑작스러운 희생으로 인해 저희 유가족은 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으며, 우리 가정은 가장을 잃고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며 "이번 사고는 최악의 과로 노동에 내몰아 왔던 쿠팡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일주일에 6일을 계속 밤마다 12시간씩 일해야 했고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장례를 책임져야만 했다"며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일하러 나갔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지금이라도 쿠팡 대표는 과로로 숨진 승용이의 영정과 유가족 앞에 직접 와서 사죄하고 맺힌 한을 풀어달라"면서 "저희 유가족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산재 신청을 진행할 것이고, 쿠팡의 책임 있는 태도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노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