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원이 백혈병 걸렸는데…재해예방계획 한줄 쓴 니토옵티칼"

재해예방원인도 한 줄…김주영 의원 "산재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 드러나"

한국니토옵티칼이 백혈병에 걸려 산재를 인정받은 직원 A씨에 대한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하며 한 줄에 불과한 재해발생원인과 재해방지계획을 써서 낸 사실이 확인됐다. A씨는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며 일했지만 관련 언급이나 대책은 없었다. 사측에 산재예방 의지가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아 29일 발표한 니토옵티칼 백혈병 산재 피해자 A씨 산재조사표를 보면, 재해예방원인은 "근로복지공단 인정에 따라", 재해예방계획은 "공정 전반에 대해 점검 중"이라고만 적혀 있다.

산재조사표는 사업장에서 사망자 혹은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 경우 사업주가 한 달 내에 작성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제출해야 하는 문서다. 지난 8월 21일 작성된 A씨 산재조사표에도 이배원 니토옵티칼 대표이사의 직인이 찍혀 있다.

산재조사표에는 사업장 정보, 재해 정보는 물론 재해발생 개요 및 원인, 재발방지계획을 적도록 돼 있다. 향후 안전대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니토옵티칼은 이를 형식적으로 작성했다.

김주영 의원실이 입수한 A씨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청인이 약 22년 이상 편광필름 제조업체(니토옵티칼)에서 절단·도공·용해공정 업무를 수행한 사실이 확인되고 제출된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포름알데히드가 반복적으로 검출"됐다며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적혀있다.

A씨가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되며 일했다는 점은 지난 6월 노동안전단체 반올림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니토옵티칼에서 A씨를 포함 최소 3명의 직원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처음 알릴 때부터 공론화됐다. 산재 승인의 주요 근거인 포름알데히드 노출이 작업제출환경 결과로 확인됐다는 점에 비춰보면, 사측도 유해물질 노출 문제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니토옵티칼이 작성한 산재조사표에 관련 내용은 없었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니토옵티칼 산재조사표에 대해 "진정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그것보다는 자세하게 작성한다"며 "노동부 실태조사에서 발암물질을 다루는 공정에 국소배기장치도 설치가 안 됐다고 지적됐는데, 이런 태도 때문에 그런 식으로 관리했나 생각도 든다"고 비판했다.

사건의 배경에는 법·제도적 문제도 있다. 현재 노사는 산재 승인이 났을 때 근로복지공단에서 승인·불승인 사실 정도가 담긴 간략한 결과만 통보받는다. 구체적인 승인 이유가 담긴 산재판정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아봐야 하고, 청구한 날로부터 최장 20일을 기다려야 한다.

질병 등 산재 여부가 불투명한 경우 산재조사표는 산재 승인을 통보받은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제출하게 돼 있다. 사측이 불성실한 산재조사표 작성에 대해 '산재 판정서를 받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제출기한 때문에 구체적인 재해예방원인·대책을 담을 수 없었다'며 빠져나갈 구석이 있는 것이다.

니토옵티칼 건에 대해서도 노동부 관계자는 "접수 당시 감독관이 더 구체적으로 작성하라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사업장에서 산재 승인 이유가 담긴 자료를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며 점검 중이라고 썼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산재조사표가 작성된 8월 21일은 노동부가 유해물질 확산·흡입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국소배기자치 미설치·성능 부실, 부적절한 유해물질 보관·운반 등을 담은 니토옵티칼 실태조사 결과를 노사에 설명한 날이었다. 산재조사표 제출기한은 그로부터 10일 여 뒤인 9월 3일이었다. 사측에 의지가 있었다면, 정부 실태조사를 토대로 더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해 산재조사표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는 있었던 셈이다.

한편 일본기업 니토덴코의 자회사인 니토옵티칼은 지난 2022년 10월 경북 구미 공장 화재로 일자리를 잃은 또 다른 니토덴코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 7명의 고용승계를 거부 중이다. 이 때문에 옵티칼하이테크 노조 간부들이 구미 공장 옥상에서 세계 최장인 600일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김주영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입수해 지난 4월 공개한 고용보험 취득자 현황을 보면, 니토옵티칼은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만 87명의 노동자를 새로 고용했다. 고용 여력이 있다는 지적에도 이배원 대표는 지난 16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용승계 의무는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김주영 의원은 니토옵티칼 산재조사표에 대해 "재해 원인을 파악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노동부에 예방 계획을 단 한 줄 써서 보고했다"며 "산재에 대한 이배원 대표의 안일한 인식과 불성실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사업주가 제도 취지대로 산재조사표에 제대로 된 재해예방원인과 대책을 담을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승인 시 승인 여부 정도만 전달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내일 고용노동부 종합감사에서 니토옵티칼 백혈병 산재 은폐 의혹에 대해 철저히 따져 묻고, 한국옵티칼 고용승계 사태 해결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세호 SPC 대표(오른쪽 첫번째), 이배원 니토옵티칼 대표이사(오른쪽 두번째),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왼쪽 첫번째)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에 대한 기후에너지환경고용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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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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