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24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이후 서울시 공공돌봄에 대한 시민공청회가 열린다. 서울시가 서사원을 해산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서사원은 민간기관이 기피하는 돌봄대상자 등을 주로 맡아 온 서울시의 공공 돌봄 기관이었다. 이에 서울 시민 6000여 명이 서사원을 일방 폐지한 서울시의 책임을 묻고 공공 돌봄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서명을 모아 공청회를 요구했다. 행사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가 네 편의 글을 보내왔다. 지난해 말 열린 '서사원 공공돌봄 사례 수기' 공모전의 수상작들이다. 공공 돌봄 이용자와 노동자의 수기를 통해, 돌봄 서비스 공공성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태양이 나만 따라다니나. 피하고 싶다. 빨리 에어컨으로 쏙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타야 할 버스는 9분을 기다리라고 다정하게 속삭인다, 깜박깜박 윙크까지 하면서. 오전, 완벽한 돌봄서비스를 하느라 반지하의 땀과 샤워한 나는 뜨뜻한 체온을 조금이라도 식혀줄 충전식 손 선풍기에 의지한다. 또 버스 중앙차로를 저격한 햇빛을 피하려고 애를 써본다. 딱히 뾰족하게 피할 재간은 없다.
최소 9분 동안은 햇빛이라는 섬에 갇힌 느낌이리라. 눈은 감기듯 눈꺼풀이 내려만 가는데 신경은 예민해야 한다. 오전 서비스에서 락스를 너무 흡입해서일까?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40도(℃) 가까운 체감온도는 나를 열사병으로 쓰러지기 바로 직전 상황으로 낚아챌 기세다.
배가 불룩한 나의 보물 '돌봄 가방'을 뒤져 양산을 찾았다. 상기된 얼굴 바로 위에 양산을 펴서 가린다. 내 몸 주변이 비대한지 쨍쨍 햇빛은 너울거린다. 완전하게 가려지지도 않는다. 앞을 보았다가 뒤를 보았다가 옆으로 서기도 했다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자. 누군가 내 행동을 관찰한다면 마치 춤이라도 추는 몸짓으로 보았을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시원하고 찬 데를 찾느라 합을 다해 '슬로우 슬로우 고고' 스텝을 밟는 양 말이다.
'아무 버스라도 타고 얼른 햇빛 섬을 숑숑 탈출할까? 아니다. 아니야. 바로 며칠 뒤면 난 공식적인 실업자가 아닌가. 앗, 1,500원 버스비라도 아껴야지.'
2024년 7월의 한여름, 내가 다닌 길과 공간은 돌봄노동을 하기에는 더워도 너무 덥다. 거기다 올해처럼 우기가 길면 눅눅하고 냄새가 나는 서사원(서울시사회서비스원) 전문서비스직 요양보호사로서의 일터는 쾌적지수가 저기 바닥이다. 그간 더워도 추워도 일할 데가 있어 든든했다. 정년 보장 평생직장을 굳게 믿고 누가 뭐래도 오롯이 회사 우선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권리라고는 일도 없는 치들이 나의 일터를 강탈해 간단다. 이런 게 바로 '어이상실'일 것이다.
태양 속 이런저런 우중충한 상상이 불안을 세게 몰고 온다.
'하루이틀, 한 주 두 주는 몰라도 바로 취업해야 하는데…'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요양보호사 하기에 딱 좋은 나인데…'
불안과 '자뻑'이 왔다 갔다 한다. 이제는 나이, 경력, 처우, 역량… 기타 등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전, 도전, 도전! 다시 고군분투하며 앞으로, 앞으로! 그래도 취업의 문은 아득히 철벽처럼 높고 험난할 게 뻔하다.

나는 코로나 시대가 발굴해 주고 국가가 인정한 필수노동자. 어르신의 집으로 방문해서 안성맞춤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르신이 칭찬 겸 닉네임으로 불러준 서사원 에이스 요양보호사. 2~3시간의 돌봄서비스로 어르신의 욕구를 해결해 드리면 동서남북 서울시의 돌봄 현장으로 다시 이동해서 서비스하는 이동노동자. 2019년 9월부터는 "전문서비스직"이라고도 부르는 나는 일터가 하루 두세 곳의 '어르신 댁'인 셈이다.
국가 공인 필수노동자라고는 해도 비자발적 실업 상태나 쉬운 해고 등 고용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 시급제로 일하는 요양보호사가 대부분인 게 대한민국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2008년 노인 장기요양제도가 시작되고 줄곧 요양보호사들은 "좋은 돌봄은 좋은 일자리에서 시작되는 만큼 지자체와 국가가 나서서 최소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월급제 돌봄 제공인력을 직접 고용하라"며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계속해서 에둘러 요구해 왔다.
그 덕분에 드디어 2019년 6월, 엄격한 시험을 치르고 나서 나는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생활임금에 월급제 전문서비스직이 되었다. 그 후, 나의 서사원 전문서비스직 생활은 좌충우돌할 때도 있었지만 고용불안이 없는 가운데 항상 어르신께 만족도 높은 '진짜배기' 서비스를 했다. '이보다 완벽한 돌봄은 없다'라는 자신감의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2인 1조의 방문목욕서비스, 돌봄SOS 서비스, 코로나 긴급돌봄 서비스, 병원동행 서비스, 방문요양서비스, 돌봄+서비스, 돌봄지원 서비스 등 명칭이 다 말해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과 숨겨진 노동도 저마다 마다하지 않았다. 또 체력적·심리적 소진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월급제인 우리가 잘해야 그 선한 영향력이 우리나라 돌봄 노동자 전체로 확산이 된다는 자부심과 소명 의식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서비스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상자에게 3교대 24시간 밀착 서비스하며 공공돌봄 필수인력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어리석게도 노동자들이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위상을 높이려 자신들은 돌보지 않고 과하게 무진장 애를 썼다. 그 결과 공공돌봄의 절대적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2019년 7월, 첫 임용부터 입사 후 내내 나와 동료들은 1인 혹은 2인 이상 동반 매칭되어 서사원의 전문서비스직 돌봄 노동자로서 어르신께 안전한 돌봄을 제공했다. 또한 '전문적인 맞춤 서비스'란 무기를 갖고 공공돌봄에 임했다. 돌봄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편견 없이 무엇보다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2024년 7월, 전문서비스 직군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런 잘못이 없이 귀책 사유도 모른 채 해고될 운명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우직하게 일만 하면서 말이다.
경영혁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사원의 해산이 결정될 때까지 그 어디에서도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은 조직, 서사원. '돌봄이나 하는 직군이 뭘 할 줄 알겠어'라고 노동자를 비하하는가 하면, 경영혁신이라는 그럴싸한 겉치레로 위장한 채 돌봄노동의 가치를 조직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자기모순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 경영과정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안된 게 당연하다. 그때마다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논의만 하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종친 격이다. 꼭 필요한 때 돌봄 노동자가 열외 되고 존중받지 못함을 해결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억울하고 분하다.
노동의 가치가 고평가되고, 노동자가 존중받는 '노동 친화 사회'를 바라는 건 노동자만의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일까? 꿈은 원래 잘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정할 때라야 실망이 덜한 법인가?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사원 전문서비스직이기에 겪어내야 했던 많은 일화가 떠오른다. 전문서비스 직군이 있어야만 서사원은 존재의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맨몸으로 치열하게 부딪혀 성과를 낸 5년여 사회서비스원의 성과는 시민들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공돌봄의 필요성을 화두로 던졌다.
이제 서사원이 없어짐에 대해 아쉬워는 하되 집착은 내놓아야 하나 보다. 서사원 정규직 노동자로서의 값진 경험은 내 인생에서 추억 한 장, 흔적 두 발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보다.
그래도 일상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만들기를 갈망했던 돌봄 노동자로서의 외침과 행동은 필요한 곳에서 계속하고 싶다. 돌봄 노동자가 된 순간부터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나의 슬로건을 서사원이 없어졌다고 헌신짝처럼 버리고 싶지는 않다. 나의 건강한 분노가 아주 오래된 화석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남겨지는 건 정말 싫다. 불의에 투쟁할 줄 아는 소신 있고 정의로운 돌봄 전문가로 현장에서 '아직 살아있네'라고 말해지기를 소망한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부활과 비상을 꿈꾸어 본다. 그래서 선배 노동자로서 전문서비스직의 살아있는 현장경험 '썰'을 자랑삼아 풀어놓을 때가 오면 오죽이나 좋겠다. 분명 사회서비스원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비타민과 같은 역할로 다시 서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래서 돈 없고 빽 없는 선량한 시민들 앞에 어느 기관보다도 탄탄하게 자리매김할 것임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복지국가로의 지표는 사회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좌우함을 믿기 때문이다.
서사원은 아직은 내 가슴안에 있다. 내가 서사원의 해고 노동자로 남아 있는 한 서사원을 떠나보낼 수가 없다. 서사원 폐지 조례 시행일이 훌쩍 지나버리면 저절로 잊힐지 몰라도, 내 기억 속 서사원은 여전히 아프고 아릿하다.
<심사평>
<서사원 전문서비스직 분투기> 작품은 요양보호사의 노동 현실 특히 코로나를 통과해 온 돌봄 노동자의 우여곡절에 담긴 갈등과 고뇌 자부심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과정에서 자행된 억압과 폭력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겪었을 좌절과 패배에 주저앉지 않고 공공돌봄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우리 사회에 필수인력이지만 현장에서 자행된 홀대와 멸시에 굴하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화자의 자기주체적 확신을 건강한 분노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화자의 내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투하는 자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유를 명료하게 표현하려는 필력이 돋보여 상기 작품을 최우수로 선정하였다. - 여미애 심사위원장(YM고전읽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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