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당일도착'이 화물노동자에게 일으킨 변화

[경기 물류단지 노동실태 연속기고] ② 물류단지 출입 화물운송노동자 노동실태

코로나19 이후 급속히 성장한 물류산업은 비대면 소비 확산의 이면에서 저임금·고강도·일용직 중심의 불안정 노동을 확대시켰습니다. 특히 경기지역은 국내 물류센터의 70% 이상이 밀집된 곳으로, 다양한 고용 형태와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기 적합한 지역입니다.

공공운수노조는 경기지역 물류단지 노동자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사회공공연구원에 실태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올해 2월부터 9월까지 <경기지역 물류단지 노동실태조사>가 진행됐고, 곧 보고서가 발간됩니다. 연구진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집필한 세 편의 글을 통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물류노동자의 현실을 조명하고 정부·지방자치단체·노동조합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_공공운수노조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새벽배송', '당일도착'을 내건 빠른 배송 서비스가 온라인 쇼핑의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예상배송일은 구매를 결정하는데 참고하는 부가정보가 아니라 구매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상품 사진 아래 적힌 'N시간 이내 주문하면 내일 아침 도착'이라는 문구는 고민을 중단하고 구매 버튼으로 직행하도록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상품 후기에 자주 등장하는 "당일 배송 상품이어서 샀다", "배송이 빨라 만족한다"는 내용은 상품의 실제 기능 못지 않게 배송 속도 그 자체가 상품 구매 결정과 만족도를 좌우하는 지표임을 보여준다.

빠른 배송이 온라인 쇼핑과 물류 산업을 지배하는 규범이 되면서 물류망의 범위뿐 아니라 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물류 기업들은 도시 외곽의 대형 물류단지뿐 아니라 중소규모 및 도심형 물류센터 설립을 늘리는 추세다. 물류센터의 잇따른 설립과 물류망의 확대는 상품 보관을 위한 창고의 확장과 함께, 생산공장과 물류단지 그리고 물류센터 사이를 오가는 화물운송 수요의 증가로 이어졌다. 온라인 쇼핑의 발달로 수송해야 할 물량 자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뿐 아니라 빠른 배송에 대한 압력이 더해지면서, 생활 물류 산업의 성장과 물류 생태계의 변화는 물류망을 연결하는 운송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경기지역 물류단지 노동실태조사>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창고노동자와 함께, 물류단지에 출입하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했다. 연구에서는 분석을 위해 이들의 노동경험을 차종이나 운송품목에 관계없이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문제와 상대적으로 물류단지 출입과 관련한 특징적인 문제로 구분해 설명했으나, 실제 노동과정에서 이 두 가지 층위는 서로 맞물려 나타난다는 점에서 글에서는 이 둘을 연결해 함께 소개한다.

과적·과속·과로, 이른바 3과(過)로 불리는 위험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량 안에서 보내며 장시간 운행을 하는 많은 화물운송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이러한 위험은 화물운송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을 지배하는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공장이나 보관창고에서 물건을 상차한 후 도로를 바삐 달려 하차지인 물류단지에 도착하면 한 건의 운송이 완료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운행시간과 맞먹는 혹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하차를 위해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긴 대기시간은 화물운송시장 일반에 특징적이지만, 물류단지에서는 이것이 주차 문제와 맞물려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면접조사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주차공간 부족이나 공간의 복잡성을 이유로 물류단지 내 화물차 주차가 허용되지 않거나 물류단지 외부에서 대기할 것을 요구받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불법주정차 단속의 위험을 감수하며 물류단지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7~8시간 동안 물품 하차를 위한 기다림을 이어간다. 불법주정차 단속에 걸려 과태료나 벌점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 노동자는 대기시간 내내 공회전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물류단지 내 주차 인프라의 미비가 화물운송노동자들이 겪는 장시간 대기 문제와 결합해 화물운송노동자들에게 이중고를 안기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화물운송노동자들은 본래의 운송 업무 외에 상하차, 물품 검수 등의 작업을 비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요구받는 업무 외 노동은 물건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화물운송노동자 97명 중 40명이 상하차업무를 요구받는다고 답했으며, 매번 요구받는다고 응답한 비중도 15%가량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상하차 작업을 거부할 경우 배차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생각에, 혹은 업무상 계속 마주쳐야 하는 직원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상하차 작업 도중 물품 파손이나 지게차 운전 사고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사고 발생 시 이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작업을 꺼리지만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대가 없는 상하차 작업에 응하고 있었다.

상하차 작업과 함께 화물운송노동자들은 하차지에서 검수 작업을 요구받기도 한다. 주문 내역과 운송 내역을 대조하여 확인하고 바코드를 스캔하는 등의 검수 작업은 본래 운송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화물노동자의 몫이 된다. 한 노동자는 물류단지 화물운송에서 검수 작업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고 토로했다. 물류단지 운송의 경우 다양한 품목을 운송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상품 가짓수가 100여 개를 넘는 경우도 빈번하며, 이로 인해 검수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에도 검수 시간은 운송료에 전혀 반영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시간당 운송료 감소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화물운송노동자들은 장시간의 대기시간 동안 긴 기다림을 이어가는 한편, 도로 위에서는 납품시간과 연계된 시간 압력에 쫓긴다. 물류산업의 빠른 배송 약속은 생산 공장에서 대형 및 소규모 물류센터를 거쳐 최종 고객의 자택에 이르는 물류의 전 단계를 관통하는 시간 압박으로 작동한다. 규범화된 빠른 배송 서비스가 적시 생산-유통의 압력을 극대화하면서 화물운송노동자의 노동강도와 안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쇄적인 시간 압박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도로상황이나 교통체증과 같은 불가항력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납품시간을 준수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한 노동자는 도로상황으로 도착 시간이 지연되어 대체 운송 비용 등 변상 책임을 요구받은 경험을 공유했다.

생활 물류 산업의 성장으로 촘촘해진 물류망을 연결하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역할도 늘어났지만, 배송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강조 속에서 이들은 긴 시간의 대기와 쫓기는 운행을 반복하고 있다. 물류망의 효율과 빠른 배송의 편리함만큼, 이를 떠받치는 노동의 지속가능성이 함께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다.

▲화물차(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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