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되는 가난한 시민, '공공돌봄 서사원'은 외면하지 않았지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공공돌봄 사례 수기' 수상작 연속기고 ①] 대상작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지난 4년>

오는 10월 24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이후 서울시 공공돌봄에 대한 시민공청회가 열린다. 서울시가 서사원을 해산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서사원은 민간기관이 기피하는 돌봄대상자 등을 주로 맡아 온 서울시의 공공 돌봄 기관이었다. 이에 서울 시민 6000여 명이 서사원을 일방 폐지한 서울시의 책임을 묻고 공공 돌봄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서명을 모아 공청회를 요구했다. 행사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가 네 편의 글을 보내왔다. 지난해 말 열린 '서사원 공공돌봄 사례 수기' 공모전의 수상작들이다. 공공 돌봄 이용자와 노동자의 수기를 통해, 돌봄 서비스 공공성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저, 저어… 어르신, 어르시인…. 저어, 이제 제가…."

지난 6월 중순께, 평소 당차고 분명하면서 거침없는 어투의 성○○ 선생님(요양보호사)이 유난히 말끝을 흐리며 할 이야기가 있는데도 주저주저했다. 나는 '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예감에 조용하고도 의미 있게 헤어질 준비를 생각해야 했다. 우선은 이별하는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미소로 응대했다.

"선생님, 며칠까지 서비스하세요?"

"이달 말일까지래요."

성 선생님의 정해진 대답에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앉아 있는 데도 다리가 풀린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했건만, 꼭 싸매 놓았던 이별의 슬픔을 흩어 놓는다. 때마침 뜨거운 더위가 마음 약해진 나를 확 덮치고 가버린다. 바람이라도 살랑거리면 눈물이라도 말려서 좋으련만 작은 창틈으로는 미동도 없다.

지난 4년여, 나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행운으로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이었다. 10년 전 당한 교통사고와 5년 전 새벽 운동길에 당한 낙상사고, 또 혼자라는 우울감에 뇌경색이 더해진 뒤에 찾아온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천사였다. 내게 행운을 가져다준 한분 한분 다 고마운 분이시다.

선생님들은 경제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나에게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주민센터 등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알아봐 줬다. 시설에 가지 않고 3시간의 재가 서비스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 일상 가사 지원 서비스도 다 해 주셨다. 명분상으로는 서비스 대상자와 서비스 제공자였지만,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반갑게 만났다가 12시가 넘으면 아쉬워도 헤어져야 하는 주 5일 서비스였지만, 다음 날이 기다려지는 즐거운 생활을 4년 동안 지속했다. 이런 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가 싶었다.

▲요양보호사 자료사진. ⓒ연합뉴스

변함없이 한결같이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는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공공돌봄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지금의 호전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사회생활을 하라고 자꾸 말 걸어주고 신체운동을 같이 하자며 나를 괴롭혔다. 입에 단 음식이 아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잔소리하기도 했다. 그 고마운 괴롭힘과 잔소리 덕분에, 편마비로 움직임이 느려도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긍정적인 사고로 우울감도 해결됐다. 몸은 비록 자유롭지 않아도 마음은 매일매일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 생이 다 할 때까지 그렇게 나이 들어가겠거니' 했다. '약자와의 동행'을 떠드는 서울시에서 하는 공공돌봄을 받고 있으니 죽을 때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행복하려니 ‘기대만땅’이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서울시가 공인해 준 진짜 '약자' 아니겠는가? 나는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최상의 공공돌봄을 받으며 최고의 선생님들께 감사해하며 살고 싶었다. 호박 넝쿨째 굴러들어 온 행운에 항상 감사해하며, 나보다 처지가 안 좋은 이들에게는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함께 나누며 나이 들고 싶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막 떠들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왜냐하면 나 같은 처지의 대상자를 민간기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선호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급여를 받으면서 남자이고 한쪽 마비, 반지하 주거환경을 좋아할 사람이 없음을 잘 안다. 서사원 같은 '2인 매칭제(2인 1조 돌봄 제공)'가 있는 공공돌봄이 아니면 나는 환영받지 못함을 잘 안다. 정든 선생님과 헤어지는 아쉬움도 미뤄둔 채, 앞으로 나에게 닥칠 예측 불가의 불안한 상황에 걱정이 컸다. 언제 무슨 이유로 돌봄에 배척당할지 모르니 지금도 불안하다.

나는 이미 우리나라의 장기요양 서비스를 체험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어머니를 모시며 경험했던 민간기관의 돌봄서비스는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나 같은 대상자는 민간기관에서는 언제든 서비스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요양보호사가 언제든지 돌봄을 중단해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런 민간기관과의 돌봄공백 상황에 내가 놓인다고 해도 낮은 처우에 힘든 돌봄노동을 하는 그들에게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직업의식이나 책임감이 전혀 없는 요양보호사들의 인성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비난 대신 지자체가 나서서 공공돌봄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이익이 나 같은 약자에게 '좋은 돌봄'이라는 선한 영향으로 돌아온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쓰면서 보고 싶은 서사원 선생님들을 생각하게 되어 기분이 정말 좋다. 또 그동안 몸이 자유롭지 않아 지구에서 아니 우주에서 최고로 부당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해산'에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풀리고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표현할 기회가 된 것 같아 고마울 뿐이다.

4년을 한결같이 보태지도 더하지도 않는 적당함으로 서비스해주신,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인정 많고 돌봄은 최상급인 선생님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웬 주책이냐고 하시려나? 어눌한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또 비록 의미가 안 통해도 마음으로 들어준 고마운 선생님들이 언제나 그리울 것이다.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심사평>

위 공모작은 공공 돌봄의 의미가 어떠한지, 글쓴이의 4년여 간의 공공 돌봄 이용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바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에는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위 공모작은 저자의 공공 돌봄 이용 경험에 대한 자기 개방을 통해 공공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돌봄의 공공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민간 중심의 돌봄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공공 돌봄 체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완해 내며 그 역할을 다했는지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서사원 폐지는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돌봄의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증폭시킨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에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이들이 스스로 목소리 내고, 이에 귀 기울이는 시도가 이어질 때 사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위 공모작은 이러한 의미를 한데 담아내고 있기에 대상으로 선정합니다. - 김희라 심사위원(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정책국장)

▲공공운수노조가 2024년 6월 10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중단 촉구 릴레이 동조단식을 선언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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