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3500억 달러(한화 약 490조 원) 현금 투자 압박이 비이성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미국과 합의문까지 작성한 일본에서도 5500억 달러 중 실제 투자는 1~2%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미국과 무역 협상을 두고 관련국들의 견해 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1일 미일 간 무역 협상을 주도했던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외국 특파원 협회(FCCJ) 강연에서 5500억 달러(한화 약 772조 원) 투자 약속과 관련해 실제 투자 금액은 1~2%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대출 및 대출 보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이날 "(미국은) 투자, 대출, 대출 보증 간의 구분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일 양측은 7월 22일(현지시간) 무역 협상을 타결해 자동차 관세를 낮추기로 했으나 이후 세부 내용을 두고 해석 차이를 보였다. 그러던 중 지난 4일 일본이 미국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워싱턴에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함에 따라 양측의 무역 협상은 문서화가 이뤄졌다.
문서화된 미일 간 무역 협정은 일본에 상당히 불리한 내용이 많았다. 미 허드슨 연구소가 공개한 양해각서의 세부 내용에 따르면 일본은 트럼프 정부 임기 내에 5500억 달러(한화 약 760조 원)를 배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는) 우리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잘하고 있다"면서 유럽연합과 일본, 한국 등에서 받는 투자금액에 대해 "그것은 선불"이라고 말하며 논란을 키웠다.
통신은 이에 대해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이 "(미일 간에) 어떠한 불일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면서, 실제 미일 양측이 체결한 양해각서에도 선불이라는 표현은 없었고 '수시로' 금액을 지불한다고 명시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양국이 체결한 양해각서를 두고 "조약도 아니고 법적 구속력도 없다. 이는 양측이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를 명시한 행정적인 문서이며, 우리는 양측이 모두 이러한 공통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처럼 미측이 동맹국과 진행하고 있는 관세 협상을 두고 지속적인 파열음이 발생하는 가운데, 한국 시민사회를 비롯한 민간 차원에서도 미국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외교전문 씽크탱크인 사단법인 외교광장은 1일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에 35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선불로 투자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이게 과연 투자인가, 공갈인가?"라며 "동맹의 이름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이것은 약탈이고, 강도적 요구이며, 주권국가에 대한 모욕"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외환보유액 4113억 달러 중 3500억 달러를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은 자국 금융 안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라는 것과 같다. 외환위기의 문턱에 스스로 서라는 요구에 불과하다"라며 "설상가상으로 이를 완화하기 위한 통화스와프 협정 요청조차 미국은 일방적으로 거절했다. 동맹국이 맞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미국에 "무리하고 비합리적인 현금 납부 요구를 철회하라. 이미 미국 내에 투자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 기업의 원활한 활동을 보장하라"라며 "그것이 진정으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동맹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은 당신들 뒤에 있다. 굴욕적인 협상에 매달리지 말고, 당당하게 외교에 나서서 비겁한 침묵이 아닌 용기 있는 발언으로, '중견국 외교'의 길을 열어라"라며 "미국과의 협상은 정의로운 국제연대, 강력한 국내 여론, 정확한 외교적 계산 위에서만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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