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미 정부 기관들이 조지아주에 위치한 한국 합작 기업을 급습해 한국 국적자 수백명을 구금한 사태 이후 한미 양국이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수차례 개최한 결과, 주한미국대사관 내에 한국 투자기업 전담 창구를 설치하고 실질적인 비자 문제 개선책을 지속 마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5일 외교부는 김진아 2차관이 주한미국대사관에 마련된 '한국 투자기업 전담창구'(KIT Desk : Korean Investment and Travel Desk)를 방문해 케빈 킴 주한미국대사대리와 함께 '한미 상용방문 및 비자 워킹그룹'의 논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당 창구는 주한미국대사관 내 여러 부처 소속 공무원인 국무부, 상무부, 국토안보부 등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외교부는 "전담 창구는 기업들과의 상시 협의 체제를 구축하여 비자 발급 상담뿐만 아니라 미국 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문의에 대응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창구의 역할을 소개했다.
한국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담창구는 지난 9월 4일(이하 현지시간) ICE를 비롯한 미 정부 당국이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을 단속해 한국 국적자 317명을 포함해 450명을 구금한 사건을 계기로 한미 간 비자 문제를 정비할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출범하게 됐다.
당시 구금됐던 다수 인원이 B-1 비자 및 ESTA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B-1 비자는 회의 참석 및 계약 등을 위한 단기 비자이며 ESTA는 전자여행허가로, 미국 이민 당국은 이들이 비자의 목적에 맞지 않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9월 11일 미 매체 <악시오스>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구금된 노동자들이 잘못된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회사는 적절한 비자를 받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대로 이들이 비자 목적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소지는 있다. 하지만 전문 외국인 인력을 위한 'H-1B' 비자의 경우 미국에서 발급 인원을 제한하고 있고 한국인에게 발급하는 비자 수도 많지 않아 이 비자를 가진 인원을 업무에 투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악시오스>도 "러트닉의 말처럼 적절한 비자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전문 외국인 인력을 위한 H-1B 비자는 신청자가 정원보다 수십만 명 더 많아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한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칠레나 싱가포르, 호주, 멕시코, 캐나다처럼 별도의 비자 쿼터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외교부는 2012년 이후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E-4'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PWKA, Partner with Korea Act) 입법을 위해 미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내 이민에 반대하는 정서가 갈수록 심화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반(反)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한 이같은 특별법이 만들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B-1 비자의 목적을 명확히 하거나 미국 내 투자를 위해 입국하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 범주를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배경 하에 정부는 정기홍 재외국민 보호 및 영사담당 정부대표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인원으로 구성한 대표단을 중심으로 '한-미 상용방문 및 비자 워킹그룹'을 출범하고 지난 9월 30일 워싱턴 D.C에서 1차 회의를 가졌다. 미국에서는 현재 주한 대사대리인 케빈 킴 국무부 동아태국 고위관리를 수석대표로 국토안보부, 상무부, 노동부 등의 관료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를 통해 외교부는 "한미 양국은 우리 기업의 활동 수요에 따라 B-1(단기상용) 비자로 가능한 활동을 명확히 하였다"며 "미측은 우리 기업들이 대미 투자 과정에서 수반되는 해외 구매 장비의 설치(install), 점검(service), 보수(repair) 활동을 위해 B-1 비자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ESTA로도 B-1 비자 소지자와 동일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며, 이러한 요지의 자료(팩트시트)를 조만간 관련 대외 창구를 통해 공지하기로 하였다"고 전해 B-1 비자 및 ESTA를 통한 한국인들의 활동 범위를 확대시켰다.
이후 10월 2일 화상회의를 비롯해 여러 계기에 관련 대화를 가지면서 한미 양국은 주요 대미투자를 위한 출장자에 대해 해당 기업이 협력사의 비자까지 일괄적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편의를 높이자는 것에 합의했다.
또 B-1비자를 받는 한국인들의 경우 주석 란에 별도로 체류자격이나 프로젝트 등을 표기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는 다른 국가의 B-1 비자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한국국적자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조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격이나 프로젝트 등을 별도로 명기하면 향후에 이민 단속이 있더라도 체류 자격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LA나 시카고 등 미국 내 한국 공관들과 미국 이민법 집행기관 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서 원활한 입국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도 한미 협의를 통해 도출됐다. 세관 등의 기관이 외국의 기관과 공식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협력 체제 구축 역시 일종의 성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미국은 지난 9월 조지아주에서 구금됐던 인원들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B-1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기존에 ESTA를 소지했던 인원도 즉시 B-1 발급이 가능한 방향으로 협조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주한미국대사관측은 10월-11월 간 비자발급 인력의 일시적 증원을 통해 우리 기업 인력의 신속한 비자 발급을 지원한 바 있다"며 미측도 비자 문제에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전담 창구는 지난 10월부터 시범적으로 운영됐고 이미 구체적인 지원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 투자하는 5대 대기업인 삼성, 현대, LG, SK, 한화 등의 투자기업의 관계자들을 면담했고 컨설팅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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