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학년 2학기', 모든 이익은 위로 향하고 고통은 아래로 내린다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우선 미숙련 노동 착취를 소재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준 이란희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나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빠져드는 이유는 마치 영국의 사회파 감독인 켄 로치( Ken Loach)의 작품처럼 '그 안'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디테일이 온전히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엿볼 기회가 있을까? 영화는 한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노동을 둘러싼 환경을 상세히 들여다보며 구조적으로 접근하다.

주인공 창우는 실습 나간 회사에 취업하기 싫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가계를 꾸려가는 상황이라서, 실습 도중에 심하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일터에 나갈 수밖에 없다. 반면에 같은 실습생인 우재는 아버지가 편의점 사장인 덕에 제 발로 때려치우고 나오고, 성민처럼 용기 있는 친구는 위험한 작업환경을 당국에 고발하기도 하지만, 치러야 하는 대가는 혹독하다(결국 쫓겨난다!).

이란희 감독은 시종일관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 완급을 성공적으로 조절한다. 작품에서 유일하게 반복되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마저 소리 내지 못하고 삼키는 듯하다. 이렇게 '절제된 감정 쌓기'는 성민의 선배가 산업재해로 일터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자, 허무하게 무너진다. "일하다가 죽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동갑내기 실습생인 창우, 성민 그리고 다혜는 평소 롤모델이였던 선배의 죽음 앞에 비로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영화는 충분히 훌륭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여기서 끝을 냈으면 좋았겠다 싶다. 이후에 창우는 직장에 잘 적응해서 전문대도 가고, 가족은 소원하던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창우는 새로운 실습생들이 보는 가운데, 능숙하게 지게차를 다룬다. 필자도 창우와 그 가족이 고통의 거미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지만, 이러한 해피엔딩은 아직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2025년 대한민국 사회와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의 삶을 고려하면, 창우보다는 성민의 행로가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내부고발자로 찍혀서 유망신입사원 후보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와 전문대 진학의 기회는 사라지고, 위태로운 오토바이 질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라이더-플랫폼 노동자가 된다. 모든 이익은 위로 향하고 고통은 아래로 내리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먹이사슬의 맨 밑에 있는 특성화고 실습생들에겐 탈출구가 없다.

얼마 전에 플랫폼 배달노동자로 일하는 옛날 대학 동아리 동기를 만나 소주 한잔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동아리에서 소위 뛰어난 '인재'였던 만큼 평소 근황이 궁금했던 친구였는데, 지나치게 순수한 탓인지, 조직에 잘 적응 못하고 여러 단체를 떠돌며 세월을 허비했다고 했다. 결국 남들이 하는 것처럼 생계를 위하여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열었다가 망하고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달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얼큰하게 취한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자리 서열의 맨 마지막은 자영업자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이들이 정규직을 희망하다가 여의찮으면 비정규직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이리저리 끌어모아 장사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장사 경험이 없는 이유로 프렌차이즈를 선택하게 되는데, 결국 대부분 대기업 본사에 돈만 갖다 바치고는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정점에 이르러 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이윤이 낮아졌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자영업자들의 희생을 윤활유 삼아서 겨우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그의 배달-라이더 일만 하더라도 피사용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띄워주지만, 결국 이익의 상당 부분을 로얄티와 중계료로 떼어가면, 정작 그들한테 남는 것은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계약을 맺고 거래하는 사장님인 만큼 상해보험과 정기휴일 등 최소한의 안전과 복지마저도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가 나를 보며 냉소적으로 웃더니, "우리 라이더들이 자기 돈으로 보험과 휴일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묻는다. 보험료가 아이들 학원비이고, 몸이 아프다고 하루 쉬면 바로 회사로부터 콜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니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교통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위태로운 질주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이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인적용역 사업소득자로 불리는 대한민국 1천만 노동자의 삶이며, 앞으로 성민과 같은 미래-청년세대가 살아야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4일 통과한 노조법 2.3조는 손배폭탄제한과 비정규직-특수노동자들의 원청사용자와의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 있다.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마저도 국회 문턱을 넘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을 치른 후에도 20여 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 사회 가장 아래에서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이들은 제외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웃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사회를 살 것인가?

ⓒ작업장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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