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펙에 한국오는 트럼프, 김정은과 6년 만에 다시 '번개팅'?

[정욱식 칼럼] 2027년 이내 한반도 평화협정, 불가능하지 않아

나는 앞선 글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2027년 이내'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7년 이내로 주장한 까닭은 2028년 11월에 실시될 미국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에 협정 체결을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 정상이 주도하는 힌미공조를 바탕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실현해보자는 취지를 품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래 평화협정 논의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는 2018∽2019년이었다. 당시 남북미 정상은 남북·한미·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공감을 이룬 바 있다. 또 중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 해소" 차원에서 평화협정 체결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평화협정의 네 주체가 남북미중이라고 할 때, 4개국 정상이 이에 뜻을 같이 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평화협정 협상 개시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비핵화 협상이 좌초된 것이 큰 원인이었다. 또 미국 내 대북 강경파가 사사건건 제동을 걸기도 했었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종전선언의 의도하지 않은 영향도 있었다.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 완료 시기에 하고 종전선언부터 하자는 입장이 여러 혼선을 낳으면서 평화협정 논의를 뒤로 밀어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종전선언에 집착하지 말고 평화협정 협상의 문을 여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2027년 이내에 협정 체결을 목표로 삼고선 말이다.

미국인 과반수도 찬성

그럼 이게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빛의 혁명'에 힘입어 등장한 이재명 정부가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적이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론이 평화협정에 비교적 호의적이며, 평화협정과 긴밀히 연결된 조선 핵문제와 관련해 군비통제론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두루 고려해서 내놓은 진단이다.

평화협정 당사자는 남북미중이다. 이들 가운데 조선과 중국은 평화협정을 줄곧 주장해왔고, 이재명 정부도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적인 의향을 보이고 있다. 관건은 미국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평화협정에 무관심하거나 미온적이었다.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비핵화 완료 즈음이나 그 이후에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트럼프는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라며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2기 들어서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지만, 세계 여러 지역의 분쟁을 종식했다거나 끝내겠다는 발언은 줄곧 해왔다. 북미회담의 물꼬가 트이면, 트럼프가 다시 한반도 평화협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여론이 전반적으로 평화협정에 긍정적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10월에 미국의 싱크탱크인 '진보를 위한 데이터(Data for Progress)'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조선과의 평화협정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 북미관계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온 '해리스 폴(The Harris Poll)'의 여론 조사 결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는 평화협정 지지 비율이 41%였는데, 이는 북미정상회담의 좌초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다시 상승 추세에 있다. 2023년 52%, 2024년 48%, 그리고 올해엔 50%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미국인들은 미군 유해 송환 및 한국계 미국인의 이산가족 상봉에 70% 안팎의 높은 지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이 재개되어 평화협정 논의가 가시화되고 이 논의 과정 및 협정문에 미군 유해 송환 및 이산가족상봉이 포함되면,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것임을 말해준다. 국내에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를 통해 미국의 동향을 파악하곤 하지만, 이와는 결이 다른 미국 여론도 주목해야 할 까닭이다.

미국 내 흐름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트럼프 행정부 내의 기류 변화이다. 1기 때에는 이른바 "어른들의 축(Axix of Adults)"이라고 불린 저항세력의 반대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2기에선 '충성파'로 채워져 있다. 트럼프가 결심하면 내부의 반대가 그리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APEC 계기로 평화협정 공론화해야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핵문제에 있다. 기존의 한미 입장은 사실상 '선 비핵화'에 있었다. 그런데 조선 핵문제에 대해서 유연하고 현실적인 입장이 부상하고 있다. 한미 양국 내에서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해법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핵문제 해결과 평화협정 체결 프로세스를 상호 조율된 방식으로 짤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1단계는 북핵 동결 합의 즈음에 평화협정 협상을 개시하는 것이다. 2단계는 동결 조치 이행과 더불어 감축 합의 즈음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때 평화협정문에 핵문제 해결의 최종 방안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3단계는 핵문제 해결을 포함한 평화협정 이행을 통해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때 평화협정을 한미가 조선에 주는 선물이라는 일방적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실 평화협정은 전쟁 재발 위험으로 대표되는 공통의 우려를 해소하면서 평화공존과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의 과제에 해당한다.

다가오는 APEC 정상회의는 평화협정을 공론화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평화협정 당사자 가운데 한미중 정상이 참여할 예정이고, 이를 전후해 김정은-트럼프의 '번개팅'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이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면서 대화와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 지난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1시간 여의 면담을 가졌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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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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