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트럼프에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진짜 이유는?

[최재천의 책갈피] <도둑맞은 자부심> 앨리 러셀 혹실드 글, 이종민 번역

미국 위스콘신주에 제인스빌이라는 동네가 있다. GM공장 덕분에 평화로운 중산층의 삶이 가능했다. 그런데 GM공장이 폐쇄됐다. 도시는 신빈곤층 지역으로 쇠락하고 말았다.

2019년 한겨레 이세영 부장이 번역한 에이미 골드스타인의 <제인스빌 이야기>는 일자리의 위기가 어떻게 삶의 위기로 전환되는지를 고통스럽게 증언한다.

켄터키주의 파이크빌이라는 동네가 있다. 미국 하원의원 선거구 중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곳이자 백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한때 이곳은 미국 석탄산업의 중심이었고,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었다. 석탄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일자리는 날아갔고, 도시는 황폐화됐다. 주민의 80%가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다.

정치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백인 민족주의의 바람을 이해할만한 학문적 단서를 찾아 나섰다. 책 이름은 <도둑맞은 자부심>.

두 가지 감정이 지배하고 있었다. 상실감과 수치심이다. 탄광의 폐쇄와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상실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거기에다 백인의 인종적 굴욕이 더해졌다. 이쯤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한다.

첫 번째 순간에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인이 마약을 가져오고, 범죄를 가져온다. 그들은 강간범이다.'라고 선언한다.

두 번째 순간에는 정치평론가들이 트럼프를 맹비난하며 수치심을 강요한다.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평화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나'

세 번째 단계에서 트럼프는 자신을 부당하게 수치심을 떠안은 피해자로 내세운다. '저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보라. 나는 선하고, 저들은 악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하라.'

네 번째 순간에 트럼프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사람들을 말도 안되는 논리로 강하게 되받아친다. 이 순간 지나친 수치심에 시달려온 사람들은 트럼프에게서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동화되고 마는 것이다.

트럼프 현상을 미국 일부 극우의 예외적이고 제한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해야만 하는 단계는 넘어선 것 같다. 미국의 노동자 계층은 실직에 대한 불안, 이민자에 대한 배척,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의 일부 극우세력들이 무작정 트럼프 현상을 찬양하며 그 논리를 직수입하는 태도는 맥락을 거세한 번역의 직역만큼이나 위험하다.

▲<도둑맞은 자부심> 앨리 러셀 혹실드 글, 이종민 번역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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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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