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목적국' 된 한국, 공존해야 성장할 수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이주민들, 노동력으로 인식해선 안 돼"

우리 역사에서 근대적 이민의 첫 시작인 하와이로의 이주는 1902년 12월 22일 인천항에서 121명이 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주목받는 하와이지만 100여년 전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한 이들의 삶은 노예에 비유될 정도로 비참했다.

조정래의 <아리랑>에는 하와이로 이민 간 조선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서면 말을 탄 감독들이 '갓 댐'이라는 욕설을 내뱉고, 내려치는 가죽 채찍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일을 했다. 때릴 때마다 외치는 그 말이 욕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멸시와 조롱의 감정들이 느껴졌다고 한다. 오죽하면 하와이로 이민 간 조선 사람들이 최초로 배운 영어가 '갓 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2022년 말 기준 전 세계 국제 이민자 수는 2억 81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5% 수준이다.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이주 목적국'이 되었다. 2021년 약 3.8%에서 2024년 5.2%로 증가한 결과를 보인다. 2023년 기준(행정안전부 발표) 국내에서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의 숫자는 약 246만 명이며 장기체류자는 5% 내외로 증가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한국이 이주 목적국이 된 것은 국가 위상 향상과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 삶의 질적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으로의 이주가 촉진된 것은 다른 선진국과 유사하게 겪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 때문이다.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전반의 변화뿐만 아니라 돌봄의 위기, 지역 소멸이라는 위기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위기는 폐쇄적이던 한국 사회를 다문화 사회로 자연스럽게 이행시켰으며 전 세계의 개방적인 흐름에 함께 하도록 했다.

민족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 공동체가 이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러한 경계성의 접촉과 확대·융합에 대해서 의심과 공포, 두려움과 불편함의 감정이 공존하는 것도 현실이다. 때로 무시와 차별로 나타나기도 하며 혐오로 표현되기도 한다. 100년 전 한반도에서 이주했던 조상들이 이국땅에서 겪었던 상황을 한국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그대로 겪기도 한다. 이주민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인권과 사회권을 지닌 동일한 인간으로서 볼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시장 자본주의 체제가 발달하면서 이주민과 민족적 소수 그룹은 값싼 노동력의 공급원이 되었다. 이주민에 대해 저렴한 노동력 제공자라는 정체성이 유지되도록 사회의 노력이 관행적 제도화로 굳혀진다. 경제구조의 하위 계층에 종속되도록 정치적 권위가 작동한다. 이주민은 그 사회의 시민권과 정치권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도록 강요된다.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계급으로 고착된다. 타민족, 타국가로부터의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은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가 당연한 집단으로 규정되고 이들의 문화나 생활양식은 낮은 계급의 속성과 문화로 규정된다. 결과적으로 편견과 고정관념이 일반적 인식으로 고착화된다.

이주와 이민은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기제로서 작동한다. 이러한 가치가 시민적 공감대로 형성된 국가와 지역사회에서는 사회통합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다문화 개념은 사회정책의 핵심 이슈가 된다. 그렇지 못한 국가와 지역사회에서는 선주민과 이주민의 차별성을 부각한다. 불평등과 배제를 강조하는 경계의 의미를 강화시킨다. 다문화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이 합쳐지게 된다. 국가와 지역사회, 가족과 개인 모두에게 결코 이로운 모습으로서의 공동체성이 아니다.

하와이나 LA로 이민갔던 우리 선조들, 그리고 그 후손들이 그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사회경제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공동체 운영의 주체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이주민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역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크기이다. 단순히 이주민들을 인적 생산 요소인 노동력만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지역공동체, 동일한 물리적 시공간에서 경제·사회·문화 등의 전반적 활동을 공유하는 동등한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 한다. 시민권과 사회권, 정치권의 주체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하고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 운영에 주체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민자 개인은 물론 그 가족의 사회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의 문화가 동등하게 인정받고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의 공동체로서 한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8월 24일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 평등연대·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2025년 온열·산재·괴롭힘 사망 이주노동자 추모와 베트남 청년노동자 응오뚜이롱 49재에 희생자들이 영정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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