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탄압은 팔레스타인 청년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가

[서리풀연구通] 외상적 슬픔이 무너뜨린 정신과 신체

1948년 ‘나크바(대규모 강제이주)'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점령과 탄압을 지속해 왔으며, 특히 2023년 이후 가속된 가자지구 집단학살은 팔레스타인인에게 무수한 외상적 경험을 가져왔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집중적인 학살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 6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15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가자주에 식량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이 발생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 세기 이상 지속된 탄압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실을 일상적으로 경험해 왔다. 피난과 실향, 불안정한 생활 조건, 기근 및 사망으로 인한 공동체 파괴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그리고 깊은 슬픔과 무력감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현실은 식민주의적 폭력이 사람들의 삶과 건강을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침식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특히 현재의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상실을 경험하였으며, 탄압 위에 자리한 이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상과 회복에 대한 면밀한 탐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탄압을 팔레스타인 청년의 건강과 회복에 연결하는 연구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이 공백에는 가자 및 서안지구 인구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연구적 관점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심각한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연구를 둘러싼 다양한 어려움 위에서도 서안지구 안나자, 이탈리아 밀라노-비코카, 남아공 스텔렌보스 대학의 연구진은 온라인 설문을 통해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신체 및 정신 건강 연구를 진행하였다. (☞논문 바로가기: 팔레스타인의 외상적 슬픔, 건강, 그리고 정신건강: 외상 후 성장과 회복탄력성의 매개효과)

이 연구는 장기간 축적된 외상적 슬픔이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건강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회복탄력성과 외상 후 성장이 어떤 매개적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 연구의 필요성은 두 가지로 제시된다. 첫째, 외상적 상실은 단기적 슬픔 이상의 심리적 부담을 가져오며, 지속적인 위협 및 불안정한 생활 조건과 맞물려 건강 저하를 초래한다. 따라서 상실의 경험을 건강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둘째,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에서도 개인이 처한 맥락과 자원에 따라 회복과 적응 방식이 달라지므로, 회복탄력성과 외상 후 성장이 어떻게 외상과 건강을 매개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2023년 10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청년 520명(남성 240명, 여성 280명, 평균 연령 35.3세)을 온라인을 통해 모집하였다. 참가자들은 워릭-에든버러 정신건강 척도, 자기평가 건강척도, 외상적 슬픔 척도, 성인 회복탄력성 척도, 외상 후 성장 척도에 응답하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응답을 바탕으로 외상적 슬픔과 건강 사이의 경로에서 회복탄력성과 외상 후 성장의 매개효과를 검증하였다.

먼저 변수들 간 상관관계를 확인한 결과, 외상적 슬픔이 클수록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신체 건강은 유의하게 더 나빴다. 반대로 회복탄력성과 외상 후 성장 수준이 높을수록 신체 건강과 정신건강은 더 좋아지는 양상이 관찰되었다. 즉, 전쟁으로 인한 외상적 슬픔은 청년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전반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었으며, 그러한 경향 속에서도 회복탄력성과 회복 후 성장은 건강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구조방정식 모형을 활용한 분석 결과에서도 외상적 슬픔이 높아질수록 정신건강과 전체 건강 수준 모두 유의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외상적 슬픔이 커질수록 회복탄력성과 외상 후 성장 역시 낮아졌다. 이는 외상적 슬픔이 정신적·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회복탄력성과 성장 경험 역시 악화시킨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아가 연구는 외상적 슬픔이 회복탄력성과 외상 후 성장을 거쳐 건강에 미치는 간접효과 역시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외상적 슬픔이 커질수록 회복탄력성과 성장이 약화되고, 그 결과 정신건강은 각각 더 악화되었다. 신체 건강 역시 회복탄력성과 성장을 거쳐 각각 낮아졌다. 즉, 외상적 슬픔은 직접적으로 건강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개인이 가진 심리적 자원을 잠식함으로써 간접적으로도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불건강을 단기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결코 축소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구조적으로 경험한 외상은 건강을 직접적으로 무너뜨릴 뿐 아니라, 회복탄력성과 성장 경험을 악화시킴으로써 간접적 경로로도 불건강을 가져온다. 또한 연구진은 개인이 지닌 회복탄력성과 성장 경험이 건강에 보호 효과를 제공할 것이라 해석하면서도, 동시에 현 점령 체제에서 개인적 회복은 제한적이며 외상적 슬픔이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였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과 회복은 식민주의적 탄압이 종식되어야 비로소 보장될 수 있다. 점점 심화되는 민간인 학살을 중단시키고, 의료·식량·주거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며, 봉쇄와 점령을 끝낼 수 있도록 국제 시민사회의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나아가 현 상황의 표면적 종식을 넘어 그 기저의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자본주의적 기반을 비판하고 유사한 역사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과 회복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토대가 될 것이다.

*서지 정보

Veronese, G., Mahamid, F., & Bdier, D. (2025). Traumatic grief, health and mental health in Palestine: the mediating role of posttraumatic growth and resilience. Health Psychology Report, 13(2), 145–155. https://doi.org/10.5114/hpr/199540

▲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가자 시티 해안가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카페테리아. 가자 시민 방위대는 이스라엘군의 이 공격으로 최소 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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