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직장인의 모성보호 제도 활용을 돕는 서북권직장맘지원센터 운영을 종료한다. "민간처럼 AI 챗봇을 도입하면 되지 않느냐"는 서울시의회 지적과 타 기관과의 기능 중복 등을 이유로 다른 권역 직장맘지원센터와의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직장맘지원센터 종사자들은 "저출생 현상이 심각하고 모성보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여전히 많은 와중에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 나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노무사 사이에서도 "노무사들이 복잡한 모성보호 제도를 배우러 찾아갈 정도로 전문성 높은 기관의 상담을 AI 챗봇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다음달 30일 서북권직장맘지원센터(이하 서북권센터) 운영을 종료한다. 위탁운영기관인 (사)노동희망과의 협약기간 만료를 기점으로 서북권센터 문을 완전히 닫기로 한 것이다.
2017년 개소한 서북권센터는 8년간 은평·마포·서대문구 등 서울 서북권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모·부성보호 제도 및 노동권 전반을 상담해 왔다. 센터 소속 공인노무사들이 무료로 진행하는 상담은 매해 4000건을 넘기고 있다. 모성보호 제도 안내 및 서북권 직장맘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2019년 설립한 네이버 카페 '직장맘든든맵'도 매해 수백 명씩 가입해 26일 기준 3400여명이 모였다.
노무상담은 물론 직장인 양육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서북권센터는 직장부모 심리검사 및 역량강화 프로그램, 사업자 인식개선 교육, 임산부 배려 인식개선 캠페인, 직장맘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연구 등과 더불어 성교육이나 학습지원처럼 자녀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해 왔다. 개소 이래 서북권센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직장인 양육자 수는 2만 명 이상이다.
비용 부담 없이 질 좋은 상담과 프로그램을 제공해 이용자는 물론 고용정책기관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서북권센터로부터 모성권 보호 상담 지원을 받은 이용자들이 매긴 만족도 점수는 지난해 기준 5점 만점에 평균 4.59점으로 매해 상승곡선을 그렸다. 서북권센터 종사자 2명은 지난해 서부고용센터로부터 고용정책 협업 우수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호평이 이어졌지만 서울시는 서북권센터를 폐쇄하고 다른 권역 직장맘센터(서남권, 동부권)에 상담 업무를 분담하기로 했다. 남은 직장맘센터들도 위탁협약 기간이 종료되는 2027년을 끝으로 모두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한 기관이 서울 전역의 모·부성보호 제도 상담을 맡도록 시내 직장맘센터를 모두 통폐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직장맘센터 통폐합을 추진하는 주요 이유는 "운영 내실화"다. 서울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서울시의회가 직장맘센터를 두고 '단순 상담 업무에 이렇게 여러 개 센터가 난립할 이유가 있느냐', '민간처럼 AI 챗봇 시스템을 도입하면 되지 않느냐' 등 효율성을 강구하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했고, 시에서 진행하는 재정평가에서 모든 기관이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며 "이런 사안으로 인해 통폐합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서북권 상담은 서남권과 동부권이 분담하기로 해서 지원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및 서울시의회 주장과 달리 직장맘센터의 상담은 '단순 상담'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직장맘센터가 다루는 모·부성보호 제도는 노무사는 물론 근로감독관까지 혼동을 겪을 정도로 개정이 잦은 분야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AI 챗봇 등에서 정보를 구할 때에도 사실과 다르거나 개정 전 자료가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직장맘센터는 모·부성보호 제도를 전문으로 다루는 공인노무사들이 상담을 맡기에 오류 없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김세정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돌꽃)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모·부성보호 제도와 관련해 실무적 지원이 필요한 상담자에게는 직장맘센터를 안내하고 있으며, 올해 새로 시행되는 제도와 관련해 직접 직장맘센터에 찾아가 배우기도 했다"라며 "노무사들이 도움을 얻을 정도로 전문성을 구축하는 곳인데 폐쇄한다고 하니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시가 언급한 재정평가 점수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직장맘센터 종사자들의 입장이다. 서울시는 직장맘센터가 노무상담과 일·생활 균형 지원 프로그램 등이 타 기관(노동복지센터·일생활균형지원센터)과 중복된다는 점을 근거로 재정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매겼다. 그러나 김지희 동부권센터장은 <프레시안>에 "서울시가 언급한 기관들은 일반 노무상담을 제공하거나 사업주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반면, 우리는 임신·육아·출산 관련 상담 비율이 압도적으로 크고 일·생활 병행 프로그램도 양육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사업명이 비슷해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서북권센터는 서울시가 협약기간 만료를 석 달 앞둔 지난 6월 말 기관 폐쇄를 갑작스럽게 통보해 이용자는 물론 종사자들까지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한다. 지난 4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다음달 복귀할 예정인 서북권센터 종사자 A 씨의 경우 돌아오자마자 일자리를 잃게 됐다. A 씨를 포함한 서북권센터 종사자들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고용승계는 예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종사자들은 저출생 현상이 심각하고 양육자들이 육아휴직조차 마음 편히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관을 폐쇄하는 결정은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북권센터 소속 B 노무사는 <프레시안>에 "서북권 직장인들이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부담 없이 찾는 상담기관이자 양육자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기반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번 운영 종료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지희 동부권센터장도 "직장맘들의 모성보호와 일생활 균형 지원, 이를 위한 지역밀착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 도리어 기관을 통폐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조헌임 서북권센터장은 "여전히 육아휴직을 이유로 직장맘을 해고하거나 부당전보하는 일이 많은 상황에서 모성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직장맘'을 호명하는 기관이 있다는 점은 당사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지금은 통폐합이 아니라 직장맘을 지원하는 더 많은 기관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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