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뒤 처음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최우선 노동과제는 산업재해 대응이라며 중대재해 예방 5개년 계획 수립, 민관 합동 감독체계 구축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임금체불과 국적·성별·고용형태 등에 따른 차별도 중요한 노동 문제로 언급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산재 감축을 위한 노동자 권리 강화와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해결방안 마련 등을 당부했다.
김 장관은 12일 서울 서대문 민주노총 교육장을 찾아 양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났다. 앞서 김 장관은 취임 하루 뒤인 지난달 25일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던 양 위원장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직접 민주노총을 찾았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 장관은 공개발언에서 "오랜만에 정동 사무실에 와 감회가 새롭다"며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 노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마찬가지"라고 인사를 건넸다.
김 장관은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은 "일하는 사람들이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가장 억울한 일은 살려고 나간 일터에서 죽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9월에 발표할 산업안전·중대재해 범정부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노동부만으로 중대재해 근절이 쉽지 않다.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 양대노총 산업안전 전문가와 같이 경기도형 노동안전지킴이를 전국으로 확산해 현장을 잘 아는 분들과 같이 민관 합동 산업안전 불시점검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께서는 과거 경제성장률로 등으로 나라의 격을 따지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 노조조직률, 산재사망률이 나라의 격이 되는 시대를 열겠다고 하셨다"며 "마찬가지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있었다면, 이제는 중대재해 예방 5개년 계획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김 장관은 자신이 주목하는 노동자의 다른 억울한 일로 "열심히 일하고 돈 못 받는 일", "국적, 성별,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꼽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의 그간 산재 대응에 대해 "기업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 노동자의 산재를 줄이는 데 유의미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평한 뒤 "그러나 그것이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결국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따른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현장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며 "특히 노동현장 전문가인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산재 대책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양 위원장은 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노동조합 회계공시 △근로시간면제제도 기획감사에 대한 시정조치를 당부한 뒤 "폭염 속에서도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 박정혜, 세종호텔 고진수 노동자가 하루빨리 땅을 디딜 수 있도록 조속한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 자리를 함께 제안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노조를 교섭 상대로 인정하고 논의에 나설 때 기업이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불평등, 양극화가 개선될 것"이라며 "노정교섭을 실질화하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개발언 뒤에는 김 장관과 민주노총 지도부 간 비공개 간담회가 이어졌다.

한편 이날 간담회 전 민주노총 건물 입구 앞에는 김 장관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100여 명의 노동자가 찾아왔다.
라이더 중대재해 조사제도 마련과 배달플랫폼사 중대재해법 적용 등을 요구 중인 라이더 노동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30일 넘게 파업 중인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해고 뒤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83일째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의 동료 노동자 등이었다.
입장에 앞서 김 장관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고, 때로 문서로 된 요구안을 전달 받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