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이던가. 매년 대학을 일렬로 줄 세워 발표하는 <중앙일보>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뒤이어 가요 프로그램 순위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탈북민을 '이등 시민' 취급하는 정권 비판 기사도 썼다. 그랬더니 그 무렵 자주 만나던 지인 하나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참 어지간히 줄 세우기 싫어해."
줄 세우는 게 싫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직도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학교 게시판에 붙은 시험 전체 등수표(라떼는 그런 시절이었다)에서 제 것보다 내 등수를 먼저 찾느라 혈안이던 친구 ○○이가 생각난다. 한때는 친했던 것도 같은데 나를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보는 그 눈이 무서워 더 친해지기를 사양했다.
집에서도 줄 세우기는 기본이었다. 국영수는 물론이고 예체능에서도 오빠들을 앞섰던 적이 거의 없었다. 객관적으로 성적이 안 좋은 편이 결코 아니었건만, 호적에 빨간 줄 긋지 않는 한 이 집에서 나는 언제나 '상대적으로'는 못하는 아이였다. 거기다 뻑하면 아파서 온 가족의 근심거리였다. '누굴 닮아서…'라는 말은 항상 나를 향해 있었다. 주눅이 들었지만 그걸 들키는 게 싫어 괜히 바락바락 대드는 게 일상이었고, 그런 한편으론 부모님이 나를 '공부도 제일 별로인 게 성격도 제일 별로'인 아이로 생각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줄 세우는 게 싫었다. 나만 그랬겠는가. 한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줄 세우기의 상처가 근육 속에 뼛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법 많은 종류의 서열화, 그로 인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기사를 썼다. 오찬호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대학 서열화 문제를 짚는 인터뷰를 하면서였다. 오 작가가 첫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누구나 그런 차별과 소외 속에서 살아왔으니, 기사에 공감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기사 아래 달린 댓글은 '피곤하게 산다', '너 잘났다'라는 비아냥이 대다수였다. "참 어지간히 줄 세우기 싫어해"라는 지인의 말도 결국 그런 맥락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으니 작작 좀 하라'는 애정에서 비롯된 말이었지만, 그 속에서 '너 꼭 사회 부적응자같아'라는 부정적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오 작가는 그런 류의 비아냥과 조소를 받아내면서도 10년 넘게 끈덕지게 이 문제에 천착했고 그간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책들 사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일상에서 찾아보자" 또는 "모든 차별과 혐오라는 열매는 그것에 동조하는 우리들이란 씨앗임을 잊지 말자", 또는 "사회의 어떤 분위기가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지를 늘 의심하고 비판하자"는 것이다.
'납작한 논쟁의 나라'를 만든 일등 공신
신간 <납작한 말들>도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놓인 책이다. 오 작가가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일상에서 찾아보자"며 10년 넘게 열심히 부르짖었지만, 안타깝게도 사회는 자꾸만 거꾸로 갔다. 오 작가는 <납작한 말들>을 통해 윤석열 정권 이후 더욱 극심해진 차별과 혐오 속에서 우리 개개인이 어떻게 더 괴물이 되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오 작가는 강연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에게서 당혹스러운 반응을 맞닥뜨린다. 그나마 예전에는 '네 말이 맞지만 너 참 PC(Political Correctnes; 정치적 올바름)하구나'라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그게 왜 문제야?'라는 식의 반문이 지배적이다.
"능력주의는 건드리는 게 죄다. 능력을 잣대로 차이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걸 비판하는 자리에서도 능력주의가 왜 문제냐는 주장은 흔하다. 당당해도 너무 당당하다. 긍정적인 면만 보자면서 부정적인 면을 짚는 걸 틀어막는다. 여기저기 오직 개인의 무용담만 넘쳐난다. 현상의 사회적 맥락 따위는 누구도 따지지 않는다. 차별이 심하면 차별을 극복하거나 받아들이고 살면 될 뿐이다. 불평등의 문제점을 아무리 말해도 '인류 역사는 언제나 불평등했다'는 게으른 분석만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여기는 납작한 논쟁의 나라니까."(p118)
복잡다단한 현상을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등 공신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압도적 새로움"을 슬로건으로 내건 어느 젊은 정치인이 이 방면에선 최고로 손꼽히는 귀재다. 그는 청년 남성의 역차별이 문제라며 이를 보완한답시고 여성의 군 복무를 주장하고,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힐난한다. 왜 애초에 여성이 군 복무에서 배제됐는지, 왜 장애인 단체가 쇠사슬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지하철역에 나타나는지 맥락은 깔끔하게 제거한 채 "역차별", "부조리" 프레임을 씌운다.
오 작가의 역할은 그와 동료 정치인들이 지워버린 맥락을 찾아 보여주는 것이다. "왜 여성은 군대 안 가냐"는 질문에 "태초에 남녀 누구나 군대 가는 정책이 있었는데 이를 이기적인 여성들이 항의해서 남자만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라며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맥락에 집중하면 애초에 여성의 복무를 상상조차 하지 않은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그 자체가 남성 중심 사고인데 왜 여성이 마치 징집 거부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느냐"고 말하는 식이다.
오 작가는 "왜 장애인들은 지하철 시위를 해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지하철 탑승을 위해 지하로 안전하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짐짝처럼 리프트로 이동하다가 떨어져 사망한 사람이 몇이나 되어서야 그나마 지금 수준으로 설치됐다. (중략) 이동이 제한되면 사람은 위축된다. 나오기가 두렵기에 학습 의지가 사라지고 이는 고스란히 개인의 역량을 결정한다. 이동권이 차이는 그 자체가 기회, 과정,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장애가 있다고 불평등한 게 아니다. 장애인이 '이동을 비장애인처럼 하지 못하는' 차별을 받기에 점점 불평등해지는 거다. 이 결과를 결과 이전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별을 쏙 빼버리고 멋대로 판단하면 나쁜 고정관념이 된다."(p86)
오 작가는 "정치는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만, 무엇이 공정인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엉뚱한 해법이 진지하게 등장하는 꼴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태초의 질서처럼 여겼던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유지된 채 차별이 사라질 리 없다. 과거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건 누구의 자유를 훼손하는 역차별이 아니라, 누구의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시민의식"이라며 "사회는 전반적으로는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다짐이 지나치면…
맥락이 거세된 공정, 능력주의 타령으로 차별과 혐오를 전파하는 건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맥락이 거세된 공정, 능력주의 타령으로 차별과 혐오를 전파하는' 정치인을 비판한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걸 <납작한 말들>을 보며 깨달았다.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다짐을 지나치게 성스럽게 포장하는 사람은 식사 자리에서도 이런 거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추임새를 뱉어내기 바쁜데, 그때 발생하는 적막감을 본인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누가 장염에 걸렸다고 하면 걱정은커녕 무엇을 먹었는지를 캐묻기 바쁘다. 그게 햄버거나 삼각김밥이라면 정말 그런지와 상관없이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데, 또 떳떳하다."(p131)
이 대목, 낯설지 않다. 매주 수요일 점심 팀 회식 때 채소는 일체 건들지 않고 고기만 먹는 후배에게 "건강하게 섭취하라"며 잔소리를 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다짐을 지나치게 성스럽게 포장'하며 식성을 줄 세우기한 것이다. 오 작가에 따르면, '모든 것을 수직화하는 능력주의 정신'이 몸에 깊게 배어 있는 탓이다.
"모든 것을 수직화하는 능력주의 정신이 일상을 지배하는 어디서든 등장한다. 능력주의가 문제인 건, 사람 따라 차이를 둬서가 아니라 그 차이가 사람을 들뜨게 해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p138)
차별과 혐오의 세상에서 피해자로 산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가해자이기도, 방관자이기도 했다. 나조차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틔우고 있었다. 이럴 수가. 상심한 나를 달래듯 오 작가는 이런 말을 남긴다.
"내게 독서는 완성될 줄 알았던 퍼즐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혼란의 순간이고, 그래서 다행인 경험이다."(p205)
사실 누군들 예외겠는가. '모든 것을 수직화하는 능력주의 정신', 여러분에게는 없는지 <납작한 말들> 보며 점검하길 추천한다. '완성될 줄 알았던 퍼즐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혼란의 순간이고, 그래서 다행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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