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공제회'의 결성과 '연구자의 집'의 과제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연구가공제회의 결성과 연구자란 누구인가라는 물음

공제회는 정부가 특정집단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를 직접 수행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는 경우 이를 민간이 위임받아 금융기능 또는 복지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공제회의 정의에 대해서는 장진희, '플랫폼이동노동자의 공제회 가입의향에 관한 실증분석', <노동정책연구>22(2), 2022, 7 참조) 연구자공제회는 재생산의 위기에 처한 연구자들이 이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연구자공제회 이전에도 이러한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연구자들이 결집했던 일은 분명 있었다. 예컨대 비정규교수노조는 삶의 불안정성에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대학에서 강의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중심으로 결집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비정규교수노조의 활동은 위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집단적 실천으로서, 연구자들이 놓여 있는 현실의 변화를 위한 중요한 운동이었다.

7월 9일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치른 연구자공제회는 연구자들이 이제부터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막 결성을 위한 첫 걸음을 떼었다고 할 수 있을 연구자공제회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공제회를 구성하는 연구자가 과연 누구냐일 것이다. 연구자란 누구인가. 이는 연구자공제회 결성까지 이어지는 연구자 운동의 중요한 기점인 '연구자 권리선언'에서 가장 첨예한 논점이었다. '사단법인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이하 연집)에서 1,600명 이상의 연구자가 서명하고 2021년 11월 16일 발표된 권리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후 연집은 초안을 바탕으로 수차례 토론회를 진행했는데 권리선언의 주체인 연구자가 누구인가는 매번의 토론회마다 첨예하게 논의된 논점이었다.

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연구자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오늘날 대학에서 강의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규정하기 힘든, 대단히 다양한 불안정 연구자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사 이외에도 겸임교수, 초빙교수, 객원교수, 외래교수 등 다양한 비정규직 교수가 존재할 뿐 아니라 대학 밖의 연구소에서 부정기적 연구용역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연구자들, 대학 밖 학술단체 등에서 강의를 하거나 혹은 번역을 하면서 살아가는 연구자들, 아울러 대학 내에도 소위 학문후속세대라 불리는 대학원생 같은 연구자들 등 매우 다양한 불안정 연구자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 연구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이 연구자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연구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연구자들의 공동의 것인 연구자공제회와 연구자 주체를 만드는 과제

분명한 것은 전체 연구자 중 정규직 교수 같은 일부 연구자를 제외한 많은 연구자들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 재생산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이 분명한 현실이 위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연구자공제회를 추진하게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자공제회가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의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연구자공제회가 연구자들로 하여금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동의 것'(the common)인 이유, 이러한 공동의 것을 일컫는 용어인 커먼즈(commons)인 이유, 연구자들의 커먼즈(scholars' commons)인 이유다.

그렇다면 연구자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연구자는 누구인가. 예컨대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던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든가 근 몇 년 간 몇 편의 논문을 어디에 썼다든가 같은 소위 '객관적' 기준에 따라서 연구자로서의 '자격'을 갖는 연구자가 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연구자 각자가 겪는 불안정한 삶, 재생산의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연구자공제회에 결속한다는 점으로부터 그/녀는 연구자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제회는 역으로 이러한 연구자들을 묶어주고,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을 지원하며, 나아가 이러한 연구자 주체를 만들어내는 토대로서의 역할을 한다.

사실 연구자공제회를 성공적으로 결성하는 것 못지않게 연구자들의 공통의 문제를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풀어내기 위하여 결집하고 노력하는 연구자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공제회의 성공적 운영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자 주체가 연구자공제회의 구성원, 주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주체, 공제회에 가입하여 연구자들의 공통의 문제를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결집하고 노력하는 연구자 주체가 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연구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답일 것이다.

촉진자로서 연구자의집

물론 연구자들이 연구자공제회에 가입하고 연구자들의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기 위한 주체가 되어 공제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안정연구자일수록 삶의 재생산을 위한 강의, 연구, 번역 등의 여러 활동으로 너무 바쁠 뿐만 아니라 이렇게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어 공제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불안정연구자들이 연구자들의 공통의 문제이자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기 위한 공제회 활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선언'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연구자들이 이 활동을 함께 하기 위한 일종의 '촉진자'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공제회의 일원으로서 연구자들의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기 위해 결집하고 노력하는 연구자 주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주체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는, 촉진자의 역할을 하는 조직이 없다면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촉진자의 역할을 하는 조직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을 공제회의 일원으로 결집시키는 조직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마치 2010년대 주민협동회의 조직화가 주민 조직가 등이 촉진자가 되어 빈곤층을 협동회의 주체로 세우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주민협동회의 조직화에서 촉진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김정원,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는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주민협동회 사례 분석', <동향과전망> 112, 2021, 254 참조) 연구자공제회의 경우에도 저 연구자 주체를 만들기 위한 촉진자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런데 주민 조직가는 일종의 파견된 조직가로서 빈곤층을 주민협동회의 주체로 세우면서 이들의 역할을 확대하는 대신 자신들의 역할은 차츰 축소시켜갔다. 이와 달리 연구자공제회에서는 촉진자 역시 공제회의 주체가 되는 다른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공제회의 일원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주민협동회와 연구자공제회는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 그렇다면 연구자공제회의 일원으로서 연구자 주체를 만드는 촉진자의 역할을 하는 조직은 무엇일까.

연구자 권리선언 이후 일련의 연구자 복지법 토론회를 통해 연구자공제회 결성의 토대를 놓은 연집 이외에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이 역할은, 오늘날 재생산의 위기에 처한 연구자들의 공통의 문제를 연구자 스스로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 자신의 문제로 제기하고 또 이에 대응하고자 위와 같은 일련의 활동들을 전개해온 연집이 담당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물론 이 과제는 조직으로서의 연집의 과제임과 동시에 연집을 구성하는 연구자들 각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제기되는 과제, 즉 우리 스스로 저와 같은 연구자 주체가 된다는, 우리 자신에게 제기되는 우리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공동 연구의 필요

이 과제는 연구자들이 그들의 공통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함께 생산하는 공유하며 발전시키는 과정 즉 공동 연구의 과정 없이는 결코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공동 연구 역시 다름 아닌 연구자들의 공동의 것인 '지식커먼즈'(knowledge commons)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공동의 지식, 지식커먼즈의 생산이,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의 공동의 것, 연구자들의 커먼즈인 연구자공제회의 결성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공동의 지식 생산과 연구자공제회의 결성은 바람직하게는 공동 연구의 주체이자 공제회의 주체인 연구자 주체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분명한 것은 연집 이외에 이러한 과정을 촉진할 수 있는 어떤 조직이 있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과 함께 공동의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연집을 구성하는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연구자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바람직하게는 연구자도 이 사회의 엄연한 일부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생산한 지식이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재생산의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의 많은 성원들의 공통의 문제를 연구자로서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것 역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일부로서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많은 이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이 지식을 토대로 이들과 교류하고 연대할 때, 연구자들이 생산하는 지식은 확장성을 갖는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연구자들이 이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일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공제회의 결성과 공동의 지식의 생산 그리고 이러한 결성과 생산의 토대가 되는 연구자 주체를 만드는 연집의 활동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필자 박서현 연구자의집 운영위원은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입니다.

▲연구자의 집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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