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들로 인해서 차별 또는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입체적으로 경도되지 않은 시선으로 살피겠습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26일 인사청문회 준비 첫 출근에서 지명 소감을 밝혔다. 무려 16개월간 공석이던 여가부 장관의 후보자가 '역차별'을 언급하자,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 기조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지켜보자'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던 여성계 인사들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각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을 외면한 윤석열 정부 시절 여가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여가부 장관 후보자 입에서 '여성·성평등' 대신 '역차별' 나왔다
강 후보자가 첫 출근길에서 취재진에게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전날 발생한 부산 화재 사건이었다. "가족 곁에 국가라는 돌봄시스템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까움이 알람소리처럼 계속해서 제 마음을 깨운다"며 돌봄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짚었다. 여성가족부 관할 업무 가운데 '가족' 정책에 해당하는 언급이었다.
곧이어 나온 발언이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들로 인해서 차별 또는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입체적으로 경도되지 않은 시선으로 살피겠다"는 것이었다. 여성가족부의 존립 근거인 '여성' 정책, 구조적 성차별 해결을 위한 방안에 관해 언급할 자리에 차별과 역차별이라는 용어를 나란히 거론했다.
이어지는 발언에서도 여성과 남성, 성차별이나 성평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 후보자는 "우리 사회 편견과 갈등이 대한민국의 성장 추동력을 발목잡지 않도록 조정하고 때로는 결단하겠다"고 했다. 편견과 갈등을 조장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것은 물론, 갈등 개입의 기준이 국가 성장에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화제의 중심인 여가부 개편 방향성에 대해서도 강 후보자는 말을 아꼈다. 성평등가족부로의 확대 개편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의 방향과 함께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얘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성평등 분야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런 우려가 없도록 잘 하겠다"고만 답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역차별'론 복사+붙여넣기 한 여가부 장관 후보자
물음표만 남긴 첫 소감에서 가장 눈에 띈 의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구조적 성차별 해결을 위한 여성정책으로 남성들이 불이익을 얻는다는 이른바 '역차별'론이었다. 여성대학으로 인해 입시에서 차별을 받는다거나 여성할당제로 취업에 불이익을 겪는다는 주장, 국가가 청년 남성만 징병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같은 기간 사회에 머물러 있는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역차별론이다. 인터넷 남성중심(남초) 커뮤니티에서 주로 다뤄진 이 역차별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세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근거로도 쓰였다.
윤석열 정부의 조기 퇴진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역차별' 언급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역차별을 가장 먼저 거론한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여성정책이 부족하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자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부분적인 역차별이 있는지도 잘 살펴 대처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역차별'과 관련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특정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남성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영역이 있다"며 "성평등을 추구하는 거지 여성만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정책을 하는 건 또 아니다. (그래서) 성평등가족부라는 명칭이 적정하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선 후에도 이 대통령의 '남성 챙기기'는 계속됐다. 지난달 10일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남성들이 불만을 가진 이슈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느냐"는 취지의 질의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여성가족부가 아닌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해서 폭넓게 그런 것들을 좀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후 현재까지 이 대통령의 입에서 여성정책과 관련한 언급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역차별'을 강조하는 까닭은 여성정책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청년 남성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윤석열 정부 때와 마찬가지다. 제21대 대선 방송3사 공동출구조사에서 이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20대 남성은 24%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적은 비율로 나타났다. 반면 20대 남성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는 소수자 정책을 문제 삼아온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37.2%)였다.
청년 남성들의 낮은 지지는 대선 기간 내내 이 대통령이 여성에 대한 언급을 꺼리거나 여성정책 공약에 소극적으로 행동한 이유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언론 인터뷰 등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여성만 챙기고 남성은 소외시킨다"는 20대 남성들의 불만이 대선 전후로 자주 언급됐다. 정책연구자 A 씨도 <프레시안>에 "(강 후보자가 역차별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해당 단어에 민감한 누군가(남성)를 겨냥한 정무적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성계 "'역차별' 논리는 여성 차별과 혐오 정당화하는 프레임…윤석열 언어와 다를 바 없어"
"'나중에', 그야말로 '나중에'네요. 진짜 심한데 (…) 차별을 이야기하는데 역차별을 같이 말한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밖에 느껴지지 않아요."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 정책 발표를 기다리며 숨죽이던 여성계는 여가부 장관의 '역차별'론에 결국 한숨을 쏟아냈다. 성평등 문화 조성에 남성들의 참여가 중요하고 여성가족부가 남성과 여성 간 성인식 격차 해소를 주도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이 여성정책을 가로막는 주요 논거로 쓰이는 '역차별' 의제로 발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여성계 중론이다.
여성인권활동가 B 씨는 <프레시안>에 "구조적 성차별에 반대되는 역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 후보자의 발언을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역차별의 대표 사례로 언급되는 징병제 등의 사안은 사회문제로 풀어가야 할 일"이라며 "물론 남성과 함께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건 여성가족부가 중요하게 고민할 일이지만, 차별과 역차별을 등치시킨다는 건 구조적 차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C 씨도 "역차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논리"라며 "차별을 없애겠다고 말하면서도 역차별을 같은 선상에 둔다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강 후보자의 발언은)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의 태도와 차이를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가부 폐지' 임무를 짊어졌던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역차별'론을 수차례 언급하며 여가부가 남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성계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와 대척점에 선 이재명 정부가 '역차별'론만큼은 궤를 같이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여성정치 전문가 D 씨는 "남성 역차별은 틀린 말이다. 이런 프레임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는 프레임이기에 매우 우려스럽다"며 "성별에 따라 다른 가치관과 경험을 고려한 정책을 만들면 자연스레 남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건데, 역차별을 강조한다면 여성가족부를 없애려던 윤석열의 언어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성평등 청사진 안 보이는 여성가족부…"핵심 업무가 여성 아닌 가족인가" 의문까지
여가부 확대 개편을 공언한 이재명 정부를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앞세웠던 윤석열 정부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두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26일 국정기획위원회 사회1분과는 간담회를 열고 성평등 과제 해결을 위한 여성단체 의견을 청취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여성단체가 제안한 여성가족부 확대 개편안을 정리해 국정위에 전달했다. 정부와 여당이 대선 이후에도 여가부 개편에 대한 외부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견 청취 이후 실질적인 정책과 방향성 제시는 없다는 점, 여가부 장관 후보자마저 여성정책 전문가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미뤄볼 때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 기조의 향방을 알기 어렵다는 점은 여성계가 입을 모아 지적하는 사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출신인 강 후보자는 아동·장애·돌봄 등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대선 당시 선거 캠프에서도 여성정책 관련 역할은 뚜렷하게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여가부의 핵심 업무를 '가족'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추론까지 나온다. 여성학자인 E 씨는 "(강 후보자는) 성평등 정책이나 업무 등을 계속해오던 인물이 아니어서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가 가족 분야를 확대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여성학자 F 씨도 "(정부가) 뭘 하자는 건지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고 소통창구도 활발하지 않아 비판도 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여성가족부의 '가족'에 걸맞은 사람을 물색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했다.
국정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여성정책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주요 요소다. 과거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정책 수립을 총괄했던 G 교수는 "새 정부가 여성단체를 만나고 성평등 정책 제안도 전달됐다지만,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전부터 여성가족부 강화를 주도하거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 들어가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성평등가족부로의 확대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데, 누가 어떻게 이 논의를 하고 있는지 밝혀지지 않아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여성학자 H 씨 또한 "장관직은 정책 방향성을 밀고 나갈 때 정무적 감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책 전문가여야 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강 후보자가 어떤 방향성을 중요시할지 메시지를 내놓지 않아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정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주요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플레이어(전문가)들을 배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석열 폭거에 무너진 여성가족부, 성평등 정책 주도하는 부처로 거듭나길"
실망과 우려 속에서도 많은 여성계 인사들은 "그래도 정부가 구체적인 성평등 정책을 발표할 때까지는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의 폭거에 가장 먼저 맞선 여성들의 염원이 무엇인지, 새 정부가 기억하고 언젠가는 정책으로 답하리라는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E 씨는 "굉장히 어렵게 교체한 정권에서 여성가족부를 확대하고서도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거리로 뛰쳐나왔던 여성들이 얻는 게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아직은 강 후보자가 잘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여성계가 강 후보자가 이끌 여성가족부에 기대하는 역할은 단순히 윤석열 정부에서 무너진 여성가족부를 복원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선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추진하기 위한 국정과제들을 강 후보자와 여성가족부가 앞장서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특히 청년 여성들이 가장 신경 쓰는 젠더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며 "행정부를 수반하고 입법부에서도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정책들을 잘 해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다음은 지난 4월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국성폭력상담소 등 18개 여성단체가 대선 기간 발표한 25개 젠더정책 핵심과제다. 추운 겨울 응원봉을 들고 광장을 지켜낸 여성들의 염원이 마침내 실현될지, '역차별'을 우려해 또다시 나중으로 밀려날지는 오롯이 새 정부의 손에 달렸다.
1.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성평등 추진체계 회복과 강화: '여성가족부' 강화,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등
2.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3. 새 정부 동수내각 등 모든 의사결정 구조에 성별 균형 원칙 적용
4. 돌봄의 국가책임 헌법 명시 및 '돌봄기본법' 제정
5. 성평등 공시제 법제화
6.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
7. 페미니즘 사상검증 근절
8. 공공 돌봄기관 확충 등 돌봄 공공성 강화
9.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10.한부모가족지원법 전면 개정, 한부모가족 지원체계 일원화
11. 장애여성지원법 제정
12. 여성농민의 법적지위 보장
13. 이주여성 체류권 보장
14. 모두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마련
15.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강간죄 구성요건 변경 형법 개정
16.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실질적 처벌과 피해자 권리보장 위한 가정폭력처벌법 전면 개정
17. 여성혐오범죄 근절과 피해자 권리보장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
18. 성매매여성 비범죄화 및 성매매 수요 차단 위한 성매매처벌법 전면 개정
19. 디지털성폭력을 규율하는 조항 구성요건 개정
20. 선출직 공무원 성폭력범죄 사건처리절차 등 제도화
21. 성평등 문화 및 교육 확대
22. 젠더 관점 미디어 정책기반 마련 및 미디어 다양성 확보
23. 여성·평화·외교·안보정책 수립과정에서의 여남 동수 참여 제도화
24. 미군 '위안부' 문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자지원체계 확대
25. 피해자 명예훼손 처벌 강화를 위한 위안부피해자법 개정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