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는 지난해부터 청소년과 이주민/난민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임신중지를 해야 하는 청소년이나 이주민, 난민이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 사업은 단순히 필요한 비용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내담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지원방향을 찾아 의료기관을 연계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내담자의 상황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청소년이라면 나이, 임신테스트, 병원 방문 여부 등은 기본이고 임신을 하게 된 상대방과의 관계나 현재 상황, 원가족과의 관계, 경제적 상황,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인이나 안전한 공간이 있는지, 거주 지역은 어디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약으로 할 것인지 수술로 할 것인지, 교통비나 일시 거주를 위한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 가까운 지역에서 연계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어디인지 등을 판단하고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지원 과정에서 원가족이나 상대방 등에 의한 폭력이나 강압의 우려가 있는 상황, 거주지가 불안정한 상황, 경제적 어려움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거나, 프라이버시에 관한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면 다른 단체나 기관과 적극적으로 연계지원을 하게 된다.
청소년의 상황과 삶의 조건을 이해하며 협력할 수 있는 기관이 극히 부족한 현실에서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은 셰어의 역량과 자원만으로는 할 수 없는 연계지원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기관 중 하나다.

십대 여성의 건강과 삶을 단절로 내모는 서울시의 일방적 운영 종료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 5월, 위탁기관과의 협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이 센터의 운영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서울특별시 위기십대여성지원조례'에 근거해 12년 동안 운영되어 온 센터가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문을 닫게 됐다. 나는봄은 십대 여성들에게 여성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치과 무료 진료와 심리 지원을 해왔고 성건강 교육과 물품 지원, 식사 제공 등을 하며 청소년의 안전과 자립을 지원해온 공간이다. 이 공간의 운영이 중단된다면 그간 나는봄을 이용하며 관계를 맺어 온 십대여성들 또한 소중한 공간과 관계, 건강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이는 청소년의 건강할 권리, 안전할 권리, 자립할 권리를 위해 제정된 조례의 취지와도 배치되는 일이다. 서울시는 이제 와서 2026년에 신규 센터를 설치하겠다고 해명했지만, 서울시가 이 기관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을 생각했다면 위탁기관의 전환이나 기능 확대 등을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운영 종료 없이 원활하게 사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서울시의 무책임한 결정으로 나는봄에서 지원을 받고 관계를 이어온 청소년들의 건강과 삶은 또다시 단절로 내몰리게 되었다.
지원은 중단 없는 과정과 관계 속에서 계속돼야 한다.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나는봄 폐쇄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는 나는봄을 이용해온 한 청소년이 함께 참석했다. 2022년부터 나는봄에서 정신과 지원과 심리 지원, 여성의학과 진료 지원을 받았다는 이 청소년은 기초수급자인 친구도 나는봄을 통해 방한 물품과 치과 진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며 서울시의 일방적인 운영중단 통보를 힘주어 비판했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짚은 것처럼,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내담자의 다양한 삶의 맥락과 만난다. 지원을 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처한 삶의 여건을 함께 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나는봄은 지난 12년 동안 그 과정을 구축하며 많은 십대 여성들이 안심하고 찾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봄의 운영이 중단되고 공백기를 지나 다시 새로운 센터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 시간 동안 쌓여온 신뢰의 관계와 안전망, 서로의 노하우는 다시 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시는 센터의 운영 중단을 행정적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센터 운영을 시작하게 된 지원조례의 의미부터 다시 새겨야 한다. 나는봄의 운영은 청소년의 권리 보장을 위해 서울시가 중단 없이 이어가야 할 중대한 공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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