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에 이 영화를 권한다…'신성한 나무의 씨앗'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조희대와 '악의 평범성'

무화과는 꽃이 안쪽에 숨어피는 협죽화과(Ficus)식물로 종교적으로, '숨겨진 진실'을 상징한다.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The Seed of the Sacred Fig)은 무화과의 상징을 통하여 이란 사회 내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결합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거주하는 이만은 혁명 수비대 법원의 수사판사로 승진하며, 그의 가족들은 풍요로운 미래를 앞두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라는 22세의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 체포된 후에 의문사한다. 이란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지고 이만의 딸이 가담한 시위가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나자, 가족의 삶은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가족이 맞이한 첫 번째 위기는 이만이 법원으로부터 할당받은 권총을 집에서 분실한 것이다. 이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 지난 20년 동안 쌓아 올린 그의 경력이 무너질 수 있기에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사면초가에 빠진 그는 직장동료의 힘을 빌려서 가족을 심문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아내와 딸들의 마음에 상처만 남겼을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위 가담한 대학생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만의 신변이 SNS에 공개되면서, 결국 그는 가족을 이끌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조부모의 집으로 몸을 숨긴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밖에도 가장인 이만의 가족에 대한 지옥 같은 심문과 감금이 시작된다. 그는 큰딸 레즈반이 총을 훔쳐간 범인이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가장 신뢰하는 아내 나즈메가 자신이 훔쳤다고 자백을 하고, 레즈반은 오히려 직접 목격한 경찰공권력의 폭력을 토로하자, 사라 역시 언니를 거드는 태도를 취한다. 이만은 총을 훔친 범인이 아내인 것과 딸들이 국가, 종교, 그리고 가장인 자기 뜻에 반대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가족의 진정한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묘사된 이만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헌신적인 가장이다. 아내의 세속적인 욕망도 탓하지 않고, 딸들과는 항상 대화하는 자상한 아빠였다. 그러했던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반정부시위 참여 학생들에 대한 재판을 맡으면서이다. 처음에는 이만 자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아내에게 괴로움을 털어놓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포기하게 되면 더 이상 승진할 수가 없을뿐더러, 경력에도 치명상을 입는 것을 안다. 가족들은 더 크고 좋은 환경으로 이사할 꿈에 부풀어 있다. 결국 이만이 선택한 논리는 '검사가 학생들을 유죄로 기소했고, 나는 그것을 따를 뿐이다'이다. 최소한 먼저 판단한 것은 아니므로 자신은 죄가 없다는 궤변이다. 이만은 이렇게 스스로 정리한 후에는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더 이상 망설임이 없어진다.

이만의 변화를 보며 필자는 두 인물이 떠올랐는데,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과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독일계 미국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관찰한 후 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은 그가 악마가 아니라 오히려 친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아이히만은 실제로 상관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는 이 개념을 통하여 모든 이가 악의 가능성을 지니고있는 만큼, 이를 경계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영화 속의 이만의 모습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서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러면 한국의 조희대 대법원장은 어떠했는가? 그는 사건접수 불과 9일 만에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변경시켜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통상적으로 수개월이 걸리는 숙려 기간을 단시일에 해치우는 이례적인 절차는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것으로, 1997년 9월 박정희 독재정권하에 야당 당수인 김영삼 총재에게 내린 직무정지가처분 인용에 버금되는 충격적인 사태이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과 함께한 10여명의 대법관들은 시종일관 정당한 법집행 임을 아직도 주장하며 대법관 증원 요구에 '공론화 필요'를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그들이 법관으로서 영화의 주인공 이만처럼 짧은 기간이라도 고민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만이 초심과 다르게 변절한 것은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조희대 대법원장와 10명의 대법관들은 무엇 때문에 이러한 예외적인 조치를 감행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 역시 영화 안에 있다.

이만의 아내 나즈메는 적당히 세속적이고 양심적인 보통의 중상류층 주부이다. 그녀는 남편 이만의 지위를 주위에 자랑하길 좋아하고, 남편에게 더 큰 집과 좋은 가전제품을 사달라고 수시로 조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부상당한 레즈반의 친구를 치료하면서 변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결국 자신과 딸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남편에게서 위험함을 감지하고는, 격렬히 저항하여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이끈다. 나즈메가 감지한 것은 남편의 내부에서 성장되어온 종교적 근본주의와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이다. 우리는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성 가족 일원들에 의하여 여성들이 살해당했다는 해외뉴스를 종종 접한다. 가족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합법적인 살인이다. 게다가 이반의 직업은 죄의 유뮤를 결정하는 법관(수사판사)이다. 나즈메가 깨달은 이만의 위험성은 여기에 기인한다. 즉 그는 자신만이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가족을 포함한 다른 이들과의 상의와 협의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윤석열은 역시 같은 대학동문 조희대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들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이 나자, 대통령 선거 이전에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대한민국 1등만이 갈 수 있는 초일류대학의 법대를 졸업한 슈퍼엘리트들로서 집안의 자랑이요, 가족들한테는 존경받는 남편과 아버지였을 것이다. 쌓아 올린 업적과 지위를 고려할 때, 그들의 판단은 대학입시 시험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자부할 것이다. 당연한 보상으로 행정부와 사법부의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다.

그런 그들에게 감히 다양한 출신의 듣보잡 국회의원들이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보다 못해 '계엄'이라는 주어진 권한으로 정리하려고 했더니, 시민들이 달려와선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엄동설한에 날마다 야광봉을 밝히고 깃발을 흔들어 대며,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고함쳐 댄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이들에게 떠밀려서, 감히 파면을 선고하고는 이제는 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경우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무죄를 정하고, 옳고 그름과 정의를 판단하는 것은 국회의원과 시민의 몫이 아니라,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자신들 즉 초일류 엘리트들의 몫이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만이 탈주한 가족들을 추적해서 미로 같은 통로로 이루어진 옛 유적지를 찾아 헤맨다. 천신만고 끝에 사라와 마주치는 순간 그녀가 총을 빼어 든다. 사실 총을 훔친 것은 놀랍게도 막내 딸 사라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를 쏘지 못하는 사라.., 다가오는 이만, 그때 잘못 방아쇠를 당긴 총성! 딛고 있던 오래된 지반을 붕괴시켜 그는 순식간에 지하로 꺼지고야 만다. 안타깝게 상황을 지켜보던 나즈메와 레즈반는 사라에게 달려가고, 함께 이만이 추락한 쪽을 내려다 보면, 무덤처럼 쌓인 흙더미 위로 손 하나만 솟아있다. 마치 묘비처럼 미동도 없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무덤 주인의 이유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반지는 이만의 세계에선 타인을 심판하는 높은 신분을 암시하는 데, 결국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죽음을 초래한 이유가 된 것이다. 아직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악행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 땅의 나치전범 아이히만과 재판관 이만에게 이 영화의 관람을 권하는 바이다.

덧) 1.필자의 의도는 영화 속 주인공인 나즈메와 그녀의 딸(레즈반, 사라)가 이란 사회 내부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투쟁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나라 전체를 신정일치의 독재국가로 묘사한 것은 다(우리나라도 가지고 있는 개혁과제이다).

2.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습에 의해서 벌어진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은 즉시 멈추어야하고, 특별히 더 이상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참석, 입술을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