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치료받지 못한 여자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나는봄 폐쇄 저지 공대위 연속기고③] 위기 십대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일, 지금 여기에서 멈추어선 안 됩니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에서 촉탁 산부인과 진료를 해온 의사로서, 지금의 서울시 결정을 결코 묵과할 수 없기에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이곳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 의학적 관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전 근무지에서 청소년 환자의 심각한 감염 질환을 발견하고 치료를 권유했지만, 결국 연락이 끊기고 아이는 사라졌습니다. 그 경험은 제가 의료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나는봄에서 마주한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절박했습니다. 질병의 문제는 단지 신체적 증상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열이 반복되거나 생리 이상이 장기간 방치된 경우, 성 감염 질환이 진행돼 생식 기능에 위협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정신적 위기와 복합적으로 얽힌 건강 문제는 오진과 방치를 거듭하며 악화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 '상태'보다도, 이 아이들이 병원 문턱을 넘기까지 겪는 과정이었습니다. 보호자에게 알리는 것이 두려워 치료를 포기하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픈 줄 알면서도 참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들에게 '나는봄'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서울시는 '나는봄' 운영 종료를 결정했습니다. 서울시는 언론을 통해 이 같은 결정이 "폐지가 아니라 기능을 확장해 더 나은 기관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설명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보건의료 정책에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기관'을 없애면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무책임한 이야기입니다. 서울시의 설명 속에는 '지금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들'에 대한 고려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당장 오늘 아프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원 예약은 밀려있고, 주거는 불안정하며, 자신의 몸 상태가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루하루가 위기입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연속성 없는 행정으로 그들의 오늘을 지워버렸습니다.

서울시는 "더 나은 기능을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나는봄'의 문을 닫지만, 인간이 생명체로서 지속하며 살아간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건강은 하루아침에 멈추지 않습니다. 질병은 행정의 절차와 무관하게 이어지고, 고통은 연기되지 않습니다. 정책이 끊긴 자리에는 분명히 공백이 남습니다. 그 공백의 위험은 오롯이 거리 위의 청소년들에게 전가될 것입니다.

청소년의 건강은 단순한 복지 항목이 아닙니다. 이는 사회가 구성원에게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권리이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입니다. 지금 이 결정이 낳는 공백을 서울시는 감당할 수 있습니까? 치료받지 못한 청소년의 신체적 악화, 적절한 상담이 중단된 정신적 고립, 길거리로 내몰리는 위기의 순간들. 이 모든 것을 시민이 아닌 행정이 책임져야 합니다.

저는 의료인으로서 서울시의 이번 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공공의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이 결정을 재고하고, '나는봄'이 쌓아온 수년간의 경험과 전문성은 단절돼선 안 됩니다. 서울시는 보여주기식 '확장'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계획 아래 진정한 공공의료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말이 아닌 현실로, 겉모양이 아닌 내용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 치료받지 못한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영희 산부인과 전문의(전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촉탁의사)ⓒ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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