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배터리 화재 위험' 상식인데… 아리셀만 "모른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년] ④ 공판 中 핵심 쟁점 '배터리 화재 예측 가능성' 두고 아리셀 "예측 못 해" 주장

오는 24일이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다. 이를 앞두고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투쟁의 현재와 재판 진행 과정, 재발방지책을 담은 7편의 연재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추모하고 사회적 의미를 남길 수 있는 1주기를 만들고,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이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기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무려 23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이례적인 참사. 그런데 아리셀 참사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그 ‘이례성’이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면 무슨 말일까.

피고인 측은 ‘예측 불가능성’을 핵심 방어 논리로 내세운다. 변호인들은 “완성품인 전지가 아무 이상 없이 평온하게 보관 중인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생한 화재”라며, 화재의 구체적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들이 화재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예견할 수 없는, 너무나 이례적인, 다시 말해 천재지변과 같은 사고였기 때문에 참사를 방지할 의무도 없다는 주장이다.

리튬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은 상식

비행기를 타기 전 짐을 꾸릴 때 리튬배터리를 캐리어에 넣지 않는다. 화재가 발생하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내에 들고 타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튬배터리의 발열 화재는 흔한 일이다. 간단한 통계만 보아도 확인된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리튬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가 612건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312건(51%)은 배터리가 과충전 상태일 때 발생했다. 이어 비충전일 때 60건(9.8%), 보관 중 49건(8%), 수리 중 45건(7.4%), 사용 중 44건(7.2%), 충격 후 17건(2.8%)의 순이었다.

아무 충격이 없더라도, 평온히 보관하는 중에도, 비충전 상태에서도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리튬배터리다. 심지어 이들 배터리는 2차 전지다. 아리셀에서 생산했던 1차 전지는 한번 쓰고 버리는 제품으로써 재충전이 불가하기 때문에 제조 시 완충, 즉 100% 충전을 해야 한다. 당연히 에너지 밀도가 높고 그만큼 보관 과정에서 화재 위험성이 커진다. 그뿐만 아니다. 1차 전지는 음극재로 리튬 메탈을 사용하여 용량은 크지만 그만큼 약간의 단락(쇼트)으로도 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반면 2차 전지에서 음극재로 사용되는 흑연은 비록 용량이 줄어들지만 상대적으로 구조가 안정적인 물질이다. 2차 전지는 분리막 기술도 1차 전지 대비 고도화되어 있어 비교적 안정적이라 평가된다. 그런데도 종종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리튬배터리다.

사정이 이러한데 1차 전지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피고인들이 “보관 중인 배터리에서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몰상식한 일이다.

▲2024년 6월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리와 상식의 간극을 넓히려는 형식논리

피고인 측은 “리튬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라 위험물질로 지정되어 있지만, 리튬배터리는 위험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화재폭발 위험이 지적되어 철저히 격리 보관하는 등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되었던 전지는 “폐전지”라며, “완성품은 폐전지와 달라 화재 발생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리셀 공장에서 2024년 5월부터 발생한 “미세발열” 현상은 이번 폭발로 이어진 “열폭주”와 다른 현상이며, 아리셀 공장에서 2021년 11월 전지 단락으로 발생한 폭발과 12월 전지 운반 중 낙하로 인한 폭발은 “작업자 과실로 인한 영역이고 이번 화재는 제조물 자체 화재로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지엽적인 사실관계의 틈을 무리하게 확대하여 법적 책임을 축소하려는 형식논리다. 리튬이 위험물질인 이상 리튬을 이용하는 배터리 생산에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함이 당연한 일이다. 폐전지의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면 생산 과정에 있는 전지의 위험성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미세발열과 열폭주를 나누는 것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아리셀 회사 내에서 발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6개월 가량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묵살하였음이 드러난 진실이다. 당장 아리셀 공장에서 2021년 11월 12일부터 2022년 3월 29일 사이에만 폭발과 화재가 세 차례 발생했는데도 더 큰 폭발과 화재를 우려하지 않았다면 지독한 안전 불감증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결정적으로 참사 불과 이틀 전인 2024년 6월 22일, 2동 1층 드라이룸에서는 전해액 주입을 마친 전지가 이례적으로 뜨거워진 뒤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보더라도 위와 같은 형식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상식적인 위험과 충분했던 대책

보관 중인 전지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예견할 수 없었다는 피고인 측 주장과 달리, 우리네 상식에 부합하듯 아리셀 참사 이전에도 보관 중인 리튬 1차 전지의 폭발 사례는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전지의 폭발이 대형 화재 사고로 번지지 않기 위한 대책들 역시 충분히 구체적으로 현존하고 있었다.

아리셀이 전지를 납품한 군의 경우, “국군 리튬배터리 폭발·화재 사고 및 대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31건의 리튬배터리 폭발사고가 보고되었고 이 중 3건이 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납품한 전지가 파열한 사고였다. 이에 국방부는 2020년경 리튬 1차 전지 보관 창고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항온항습기를 설치하고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유사 화재가 발생한 비츠로셀도 보관 중인 전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공장 6개 동 중 4개 동이 소실된 뒤, 전지 보관 구역을 공정별로 격리하고 격벽마다 소화시설을 설치했다. 보관 창고 등 사무동을 뺀 모든 건물을 두께 30cm의 철근 콘크리트 격벽 구조로 구축했으며 열화상카메라 등 발열·화재 감지장치를 설치했다.

아리셀의 주요 납품 대상인 군이 인지했던 위험과 마련했던 대책이 있었고, 아리셀과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던 경쟁 회사에서의 화재 사고와 예방 대책이 뻔히 존재했다. 그러나 아리셀은 이 모든 위험과 대책을 남의 일인 것처럼 무시했다.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화재가 발생한 직후라도 노동자들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훈련되어 있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생존 노동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적 없다”, “월수금 아침조회에서 10분 정도 업무 관련 주의사항을 들은 것이 전부”라고 증언했다. 심지어 한 파견근로자는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교육 명부에 서명만 한 일이 있음을 진술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은 “화재가 발생하고 40초 내 암전될 정도로 급격히 확산”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소방훈련이나 안전교육도 실효성이 없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쯤이면 도를 넘는 책임 회피이자 궤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들은 리튬 1차 전지의 상식적인 위험성을 인지하고 현존하는 대책을 도입해야 했다. 이를 외면한 채, 나아가 화재 발생 시 대피를 위한 최소한의 교육마저 방기한 점에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어야

법리는 법의 원리 또는 법의 이치를 뜻한다. 법리 구성에 있어 기본은 ‘경험칙과 논리법칙’이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말하는 상식은 일반적 견문뿐만 아니라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를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경험칙과 논리법칙이란 대부분 상식의 범주에 속한다. 때문에 법리와 상식의 간극을 벌리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무리하고 무용하다. 또한 법리와 상식의 간극이 커질수록 사법에 대한 신뢰회복이 멀어진다는 점에서 이 같은 시도는 해악적이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어야 한다. 길게 이어지는 공판기일에서의 공방에도 그 끝은 상식에 맞는 판결일 것이라 기대하는 이유다.

▲ 27일 서울역에서 열린 아리셀 참사 시민추모제. ⓒ프레시안(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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