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1명, 권영국에 투표한 20대 남성들, 왜?

[인터뷰] 20대 남성들 "나를 대변하는 후보는 이준석 아닌 권영국…정치가 혐오 방치·선동해"

0.98%. 21대 대선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받은 득표율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4%)는 물론 20대 대선 심상정 정의당 후보(2.37%) 득표율에도 한참 못 미쳤다. 다른 후보들이 거리를 두거나 외면하기 바빴던 노동과 인권을 핵심 의제로 삼았던 그는 날선 비판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당선되지 못할 게 자명했던 권 후보에게 가장 많이 '소신투표'한 세대는 다름 아닌 20대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1.6%, 20대 여성 5.9%가 권 후보에게 표를 던져 그의 평균 득표율을 끌어올렸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비동의강간죄 도입과 낙태죄 대체입법 등을 공약한 권 후보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한다고 판단해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그렇다면 1.6%, 100명 중 1명꼴의 20대 남성들은 왜 권 후보를 지지했을까. 투표장에서 권 후보에 표를 던진 8인의 20대 남성은 9일 <프레시안>에 "권영국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내가 처한 현실을 해결해줄 정책을 제시한 후보였다"며 "모두가 혐오를 말하는 세상 속에서 평등을 말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가 24일 춘천 시내에서 거리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도, 성소수자도 "나를 위한 정책 제시하는 후보는 권영국뿐"

학원에서 근무하던 A(25) 씨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계약한 탓에 어떤 대응도 못한 채 해고당했다. 그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나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신념을 가졌다. 이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지난 대선 투표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중도보수를 자처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유일한 진보정당이 됐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로 콜센터에서 근무한 B(26) 씨에게도 모든 노동자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겠다는 권 후보가 자신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후보였다. B 씨는 "임금을 다 받지 못한 채 해고됐는데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권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내가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정책이 생기겠다고 생각해 지지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이 겪은 고용 불안정성은 20대 청년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문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20대 임금근로자(338만9000명) 중 비정규직(146만1000명)은 43.1%를 차지했다.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38.2%)을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후 같은 달 기준 역대 최고 비중이다.

창작업계 종사를 희망하는 대학 졸업생 C(22) 씨에게도 권 후보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오직 그만 대선 후보 중 창작자 동의 없는 AI 학습 금지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C 씨는 "공들여 제작한 창작물을 무단으로 활용하는 AI로 인해 창작도 소비도 마음 놓고 못하는 상황"이라며 "AI 규제를 공약하며 창작자 편을 들어준 권 후보에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을 공약한 권 후보가 성소수자에게도 유일한 선택지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 대선 투표장에 나서봤다는 대학생 D(18) 씨는 "성소수자임을 편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게 차별의 핵심"이라며 "주위의 험담은 견딘다고 하더라도 취업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또 결혼이라는 연인의 이정표가 막혀 있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권 후보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20대 남성들이 자신을 대변할 후보를 찾아 권 후보를 지지한 것만은 아니다. 대학원생 E(28) 씨는 "학창시절 여성 친구가 성폭력 피해를 겪어 사회적 차별을 일찍 접했다. 또한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라 인권 의제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생 F(26) 씨 마찬가지다.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이라서 차별받는 상황이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 등 약자와 소수자들을 자주 접했다"며 "(이 과정에서) 약자들을 공격해 효능감을 채우는 주류 정서와 멀어지다 보니 권 후보로 시선이 돌아가게 됐다"고 했다.

민주당에 대한 반감으로 권 후보를 택한 청년도 있다. 진보당 당원 G(20) 씨는 "김재연 진보당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하는 과정이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했고, 노동의제에 있어서 이재명 후보보다 권 후보가 더 선명하다고 판단했다"며 후보 단일화에도 권 후보를 지지한 이유를 설명했다.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가 26일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갈무리

"혐오·폭력 만연한 20대 남성, 정치가 방치·선동했다"

권 후보에 투표한 20대 남성들은 또래 남성들 사이에 혐오와 폭력 문화가 만연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A 씨는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혐오로 가득 차 있으며, 학창시절을 떠올려봐도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고인 비하, 여성혐오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고 했다. D 씨는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욕설이 많이 나왔고 사실은 나도 과거 페미니스트에 반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인터넷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학습했던 것 같다"고 했다.

교원 H(27) 씨는 혐오폭력으로 인해 물리적인 위협까지 겪었다. 그는 "내 집주소와 생활반경을 알고 있는 또래 남성들의 혐오발언에 맞섰다가 오프라인까지 분쟁이 번진 적도 있었다"며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부모님 출신지가 전라도냐'는 욕설을 들었으며 친척들은 사이버레커에 의해 신상털이를 당한 적도 있다. 또래 남성들의 혐오폭력이 정말 심각한 상태"고 했다.

이들은 청년 남성들이 혐오에 물드는 이유로 '억울함'을 지목했다. F 씨는 "우리 또래는 부모님 세대처럼 경제발전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얻은 것도 아니고, 생활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국가는 경제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전망까지 나온다"며 "억울함을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모르는 와중에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여성이 문제', '장애인이 문제'라고 하면서 (남성들의 약자) 혐오를 선동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군대가 청년 남성들의 억울함을 증폭하는 주요 요소로 꼽힌다. E 씨는 "채 상병 사건도 그렇고 군 내부에서 폭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장애가 있는 남성도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통해 국가폭력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며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제도 아래 외로움과 분노가 쌓이고, 시야가 좁아진 채 서로 피해자라며 싸우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정부와 거대 양당이 이를 너무 오래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 또한 20대 남성들의 혐오문화에 기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A 씨는 "보수라는 이름하에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혐오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있다"며 "언론이 이를 비판해야 하는데 도리어 대립 구도를 훨씬 더 강화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커졌다"고 꼬집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 지부장을 만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제공

"혐오 속 평등 외친 권영국, 0.98%는 실패 아닌 성공…민주당은 의미 되짚어야"

권 후보에 투표한 남성들은 이처럼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얻어낸 득표율 0.98%을 결코 실패로 보지 않는다. A 씨는 "당명도 바뀌고 권영국이라는 사람에 대한 인지 자체가 없었던, 0부터 시작한 선거"라며 "모두가 혐오를 말하는 세상 속에서 평등을 말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소수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후보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F 씨도 "원외 정당이 미디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후보로 이 정도 득표와 화제성, 후원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며 "이전에는 정의당이 정치적 면모를 강화하면서 현장에서 멀어졌단 비판이 나왔었는데, '유세 일정이 아닌 투쟁 일정'이라고 불린 이번 대선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잘 대변한다면 차후 지선이나 총선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시에 청년 남성들은 집권에 성공한 이재명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이 권 후보 지지층의 목소리를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E 씨는 "당장은 내란 사태가 끝났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다"며 "민주당은 권영국과 진보정당에 가야 할 표가 내란청산을 위해 자신들에게 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F 씨도 "사회 어떤 구성원에게도 혐오와 차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의미의 법률인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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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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