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임기 첫날에 마지막 날을 떠올리는 이유

[초록發光] 기후위기와 노동, 민주주의를 잇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하여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첫날이다. 그러나 나는 벌써 마지막 날을 떠올린다. 이재명 정부의 임기는 2030년 6월까지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 40% 감축)의 시한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정부의 임기 전체가 곧 기후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이며,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이끌어야 할 시간이다. 우리 사회가 화석연료 의존적 구조에서 인간 중심의 지속가능한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정치적 시간표이기도 하다. 임기 마지막 날, 우리는 다음 세대와 우리 자신에게 어떤 결산서를 내밀 수 있을까?

기후위기와 노동위기, 함께 풀어야 할 과제

기후위기와 함께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장 중대한 과제는 노동의 위기다. 이 둘은 결코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지난 4월 선종한 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은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연대, 공동선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노동은 공동체의 삶에 통합되는 방식이며, 인간다운 삶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동은 인간이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매개라는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위기와 노동문제를 함께 사유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순히 에너지원의 전환이나 기술 혁신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하는 방식, 삶의 방식, 산업의 구조, 지역의 생태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전환이며, 그 중심에 노동이 있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미래를 말하고자 한다면, 녹색 산업정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노동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건물 리모델링, 에너지 효율 산업 등에서 창출되는 일자리가 비정규직·저임금 일자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안정성과 노동권이 보장된 일자리여야 한다. 기존 산업에서 이탈하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분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고용승계 등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노동자는 단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노사정 협의 구조 안에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을 전담할 논의기구를 강화하고, 산업별·지역별 전환계획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대응은 삶의 질 문제이기도 하다. 야외노동자가 폭염과 한파에 그대로 노출되는 현실은, 우리가 노동을 얼마나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다뤄왔는지를 보여준다. 건설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택배노동자의 쉴 권리,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지원 확대는 모두 기후정의의 문제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문제다.

노동존중 사회는 단지 노동자의 처우 개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정의로운 전환은 바로 그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선거, 체제, 그리고 우리의 노동과 삶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체제를 형성한다. 그 체제는 또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의 기회가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권리다. 그리고 그 설계는 ‘기후’와 ‘노동’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다시 짜여야 한다. 이 두 문제는 환경과 경제라는 별도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공동체를 꾸리고, 어떤 세대를 남길 것인지에 대한 민주적 선택의 문제다.

기후위기를 관리하는 언어는 점점 정교해지고, 산업 전략은 미래를 말한다. 하지만 가장 낮은 곳의 노동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 우리는 전환을 말하면서도, 그 전환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조건을 묻지 않는다. 이 괴리는 단지 행정의 미비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결핍이며, 사회계약의 부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처참하다. 투표일 하루 전날인 6월 2일, 고 김용균 씨가 일하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낸 성명서는 이렇게 말한다. "김용균이 죽었던 일터, 김용균의 어머니, 김용균 동료들이 김용균이 안치되었던 태안 화력발전소 앞 장례식장에 똑같이 모여 있다. 바뀐 것은 영정사진뿐이다." 같은 장소, 같은 구조, 같은 죽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의 희생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감각이다. 숫자와 그래프 너머, 사람들의 삶을 읽는 감각, 누가 어떤 자리에서 이 위기를 감당하고 있는가를 끝까지 따라가는 윤리적 상상력 - 그것이 민주주의다. 기후위기 대응도, 노동존중 사회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감당하며, 누구의 삶이 존중되는가. 바로 그 질문 앞에 정치가 다시 서야 한다.

"노동존중 없는 기후위기 대응은 허상"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 1%가량의 득표율을 기록한 권영국 후보의 말과 실천에 주목한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이 단순한 산업정책 또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약자 보호와 직결되는 기후정의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의 노사공동결정권, 탈탄소 사회로의 민주적 이행은 단순한 소수정당의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시대 진보정치가 던진 질문이며, 다음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될 시대의 과제다. 나치에 저항하며 인간의 존엄을 작품으로 남긴 케테 콜비츠는 말했다. "씨앗은 짓밟혀도 으스러지지 않는다." 진보의 언어는 지금 당장 실현되지 않아도 다음 시대의 토양을 바꾼다. 이재명 정부는 그 씨앗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을 주고 길을 내주어야 한다.

기후위기와 노동문제를 함께 엮어 정의롭게 풀어내는 정부야말로 진짜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다. 노동 없는 탄소중립은 공허하고, 정의 없는 전환은 또 다른 불평등일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세계 환경의 날인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새 정부의 환경정책 이행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새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과 생태 위기 해결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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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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