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광장은 승리했다. 시민들은 엄동설한 속에 촛불을 밝혔고, 비선실세에 휘둘리던 무능하고 타락한 정권을 몰아냈다. 그야말로 '촛불혁명'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권은 촛불의 열망을 제대로 실현해 내지 못했다. 노동자와 소수자·약자들의 삶은 그대로였다. 시민들은 학습했다. 정권 교체만으로 나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8년 만에 다시 기회가 왔다. 또 한 번의 조기 대선을 앞두고 시민들은 새 정부가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시민들은 겨우내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과 더불어 사회 대개혁 구호들을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윤석열 퇴진 집회를 주도했던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지난 2월 10일부터 3월 6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이 바라는 사회대개혁 과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차별금지와 인권보장' 31%, '민주주의와 정치개혁' 23%, '돌봄과 사회안전망' 8%, '노동권과 일자리' 7%, '평화와 통일' 7%, '기후위기 대응' 7%, '경제와 민생 안정' 6%, '교육' 5%, '생명존중’ 4%' 순으로 나타났다.
<프레시안>은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위 순서에 따라 분야별 개혁 과제들을 짚어본다. 새 정부가 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마지막편에서는 기후 과제를 살펴본다.
① 기후 망친 부유층… "오염자가 책임져" 말하는 후보는?
기후재앙을 막는 마지노선이라 불렸던 1.5도(℃)는 깨졌다. 1.5도는 국제사회가 2015년 파리협약으로 산업화(1850~1900년)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이 선은 넘지 말자'고 약속한 기준이다. 과학계는 1.5도를 넘으면 빙하가 급속히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변화한 기후를 되돌릴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세계기상기구는 지난 3월,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올랐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들은 기후 재난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마련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지난 3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발표한 10대 개혁 과제 중 기후정의·재생에너지 관련 내용을 기준으로 주요 후보 4명의 공약을 비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기후 공약이 없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비교 대상이 될 굵직한 공약은 없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산업 중심의 기후 적응',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공공성 중심의 기후 정의'로 요약할 수 있었다.

지난 7일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에 '1990~2020년 지구 온난화의 65%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0% 계층에 책임이 있다'는 논문(☞바로가기)이 발표됐다. 이 중에서도 상위 1%는 20%의 책임을, 전 세계 8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상위 0.1% 계층은 8%의 책임이 있다고 분석됐다. 상위 10%는 연 소득 4만 2980유로(6700여만 원), 상위 1%는 14만7200유로(2억 3000여만 원), 상위 0.1%는 53만 7770유로(8억 3800여만 원) 이상을 버는 계층이다.
연구진은 "모두가 연 소득 하위 50% 수준으로 탄소를 배출했다면, 1990년 이후의 지구 온난화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 세계 인구가 상위 10%, 1%, 그리고 0.1%처럼 배출했다면, 지구 기온 상승은 각각 2.9도, 6.7도, 생물이 생존할 수 없는 수준인 12.2도에 달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를 일으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진단하고, 책임을 오염자에게 정확히 묻자는 관점이다. 부유층과 부유국에 전적인 책임이 있지만, 피해는 저소득층과 빈곤국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남반구 국가들은 부유국과 다국적 화석연료 회사들의 탄소 배출량에 세율을 매겨 '기후손해배상세'를 걷은 뒤 UN 기후지원 자금에 적립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기후정의세'(2013), '탄소세'(2021, 2024) 등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왔다. 탄소를 과다 배출하는 화석연료 기업에 세금을 매겨, 탄소 배출량도 줄이고 기후 불평등 대응 재원을 마련하자는 안이다.
기후정의를 전제한 후보는 네 후보 가운데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밖에 없다. 권 후보는 "상속세 및 소득세, 법인세 등 최고세율 인상으로 기후정의세를 도입하고 국책은행 녹색공공투자은행을 설립해 재원을 조달하자"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배출량거래제 보완에 그쳤다. 기업마다 탄소 배출량의 한 해 상한을 두고, '폰 데이터사용량 거래'처럼 기업끼리 배출량을 거래할 수 있도록 정한 제도다. 이 후보는 21대 대선에선 탄소세를 공약했으나 이번 대선에선 제외했다. 증세 공약을 배제하며 탄소세까지 제외한 '우클릭' 결과로 보인다.

② 온실가스 감축 목표, 권영국만 밝혔다
한국은 올해 UN에 2035년까지 감축할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UN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23년 6차 보고서를 내고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를 2035년까지 60%(2019년 대비)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소극적이었다. 정부는 2021년,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40%로 UN에 보고했는데, 이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최소 수준인 50%에 못 미쳐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50년 탄소 순배출 '0'을 달성하겠단 정부 계획에도 한참 부족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정부가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2018년 대비 35% 이상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그 비율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헌재는 2031~2049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세우지 않은 데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며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써 필요 최소한의 성격을 못 갖췄다"고 밝혔다.
2035년 감축 목표치를 밝힌 후보도 권영국 후보 단 한 명이다. 권 후보는 70%를 목표치로 제시했고 정부의 기존 계획인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2035년 이후 감축 로드맵을 수립하겠다"며 "헌재 결정을 감안해 책임있는 중간목표를 담은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밖에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기후 위기 대응 문제를 푸는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탄소중립 산업을 육성한다고 밝혔다.

③ 대규모 해고 위기, 노동자·주민 대변 진보정당만
화석연료 감축은 탄소중립의 핵심이다. 2023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 374억 톤 중 절반이 넘는 200억 톤을 36개 화석연료 기업이 배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중 41.4%가 석탄으로 인한 배출량이다. 한국도 전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중 76%(2022년 기준)가 에너지 소비 과정에서 발생한다.
정부는 지난 5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노후 화력발전소 40기(총 5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고 밝혔다. 당장 올해 말 태안화력 1기가 폐쇄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폐쇄 과정과 그 이후의 계획을 아직도 전달받지 못했다. 2026년엔 3기, 2027년엔 5기가 차례로 폐쇄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화력발전소 폐쇄로 2030년 약 1만 6000명(2019년 대비)의 인력이 감축된다고 추산했다. 산업부의 2021년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충남도는 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라 27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됐다. 화석연료 발전 중단 과정에 주민과 노동자의 동등한 참여가 필수적인 이유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공약한 후보도 권영국 후보에 그친다.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는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는 지난 22일 "주요 후보들의 탈석탄 정책은 안일하기만 하다"며 "이재명 후보는 2040년 탈석탄이라는 미진한 목표를 제시했고, 김문수 후보는 그러한 언급조차 없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권영국 후보만이 2035년 탈석탄을 공약했고 공공 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전환 역량을 강화한다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기후 변화에 따른 노동자의 타격과 관련해 권 후보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을 제정해 발전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하고, 내연기관 산업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며 "단체 교섭 범위 확대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공약했다. 이재명 후보는 "정의로운 전환 특구 지정 및 고용 전환과 신산업 역량 개발 지원"을 약속했다.

④ 김문수·이준석 '핵발전', 이재명 '민영화', 권영국 '공공화'
화석연료 감축과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확충해야 한다. 한국은 전체 발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10.5%(2023년)로 OECD 38개국 중 가장 낮다. 이마저 90%가량은 해외자본과 민간기업의 투자로 이뤄졌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단지는 92.8%가 국내 대기업과 해외 다국적 기업의 투자다.
김문수·이준석 후보는 핵발전 확대 공약만 있다. 이재명 후보의 주요 공약은 '에너지 고속도로' 건립과 '햇빛·바람 연금' 정책이다. 호남 해안 풍력단지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와 수도권을 잇는 전력망(에너지 고속도로)을 만들고,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해 주민에게 돌아가는 발전 이익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산업단지에 에너지 저장 장치(ESS)를 확충해 RE100(100% 재생에너지로 생산)을 실현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전력망을 확충한다고도 밝혔다.
이 후보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적 개입은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민영화된 구조를 상수로 둔다. 주민 참여형 에너지사업 경우, 표면적으로는 이익이 공유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론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에 상당한 자금이 들어가 전력 구매자(한국전력 등)가 이를 부담하고, 이는 시민들의 더 비싼 요금 납부로 이어진다는 위험도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도 지역 간 불평등과 주민 수용성 문제를 피하지 못한다. 밀양은 울산 신고리 핵발전소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올리는 데 필요한 송전탑을 세우려다 격렬한 주민 반발을 야기한 지역이다. 현재 에너지 고속도로가 관통할 정읍, 완주, 무주, 진안, 부안, 장수 등의 주민들도 지역마다 대책위원회를 꾸려 "송전선로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권 후보는 "기후·에너지·산업을 총괄하는 '기후경제부'를 신설하고, 국회 기후특위에 입법권과 예산심사권을 부여하며, 재생에너지 전문 국책 연구 기관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또 "발전공기업 5개사의 석탄발전소를 2035년까지 조기 폐쇄하고 공공 재생에너지로 신속히 전환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60%까지 달성하겠다"며 "해외 자본에 의한 해상풍력 추진을 규제해 국부 유출을 막고, 막대한 민영화 비용을 줄이겠다"고 제안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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