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심판할 것" 이스라엘에 인내심 동난 유럽, 뒤늦은 압박 통할까

영, 이스라엘과 FTA 협상 중단 발표·EU도 무역 협정 재검토…이스라엘은 코웃음뿐

영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최근 공격 강화를 비판하며 이스라엘과의 무역 협정 중단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최대 교역 상대방인 유럽연합(EU)도 이스라엘과 맺은 무역 협정 재검토를 밝히며 유럽의 이스라엘에 대한 인내심이 동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소외시키는 듯한 모습을 내비침에 따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의 압박감이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AP> 통신 등에 따르면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2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의회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끔찍한" 작전 확대와 식량 반입 봉쇄가 "양국 관계의 근간이 되는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 정부와의 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가 그들(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이라며 "(가자지구) 구호를 막고, 전쟁을 확장하고, 친구와 파트너의 우려를 무시하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래미 장관은 "우린 이제 이 분쟁의 어두운 새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네타냐후 정부는 가자 주민들을 집에서 쫓아 가자지구의 남쪽 구석으로 몰고 필요한 구호의 극히 일부만 허용할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제 스모트리히(이스라엘 극우 재무장관)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청소'하고 '남은 것을 파괴'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제3국으로 이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이를 있는 그대로 불러야 한다. 이는 극단주의다. 위험하고 혐오스럽고 괴물 같다"고 이스라엘을 맹비난했다.

래미 장관은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뒤 영국은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을 지지했지만 현재 가자지구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완전히 불균형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스라엘 장관들이 뭐라고 주장하든 이는 인질을 안전히 집으로 데려오는 방법이 아니며 완전히 역효과"라고 지적했다.

또 이스라엘이 가지지구에 제한적으로 식량을 반입하겠다고 했지만 "어제 가자지구에 들어온 구호 트럭은 열 대 미만"이라며 "가증스럽다"고 비난했다. 래미 장관은 이스라엘이 이 같은 행태로 "전세계의 친구와 파트너들로부터 고립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래미 장관은 이날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스라엘 극단주의 정착민 일부에 금융 제한 및 여행 금지 등 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이 "이스라엘 정부의 노골적 지원"을 받으며 서안지구 전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영국 외무부는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하기도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이날 의회에서 무고한 어린이들을 포함해 가자지구의 고통 수준을 "참을 수 없다"며 이스라엘의 제한적 원조 허용 결정은 "완전히 부적절"하고 구호품이 "신속히" 가자지구로 반입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근 가자지구 작전 확대도 "끔찍하다"고 비난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스타머 총리와 래미 장관이 "진짜 화가 난 것 같았다"며 "가자지구 전쟁이 1년 반 이상 지속된 뒤 영국이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인내심을 잃은 듯 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보수당을 포함해 여당인 노동당 의원들까지 래미 장관 등의 이스라엘에 대한 언어적 비판 강도는 거셌지만 무역 협의 중단 등 대응 조치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통제 강화, 다음 달 유엔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이스라엘과의 무역 완전 금지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래미 장관은 이스라엘의 공세 지속 땐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해 이스라엘 외무부는 소셜미디어(SNS)에 게재된 성명을 통해 "영국 위임 통치는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된) 정확히 77년 전에 끝났다"며 코웃음을 쳤다. 이어 "외부 압력은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적에 맞서 존재와 안보를 지키는 길을 바꾸지 못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영국 위임통치 끝난지 오래" 코웃음 쳤지만…트럼프 '패싱' 더해지며 딜레마

유럽연합(EU)도 무역 협정을 재검토하겠다며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0일 가자지구 상황이 "재앙적"이라며 EU 장관들의 "압도적 다수"가 2000년 발효된 EU-이스라엘 연합 협정 재검토에 찬성해 "이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협정은 양 당사자의 관계가 "인권과 민주적 원칙 존중을 기반으로 하며 이를 국내 및 국제 정책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칼라스는 이스라엘이 허용한 구호품은 "바다에 물 한 방울" 수준이라며 "구호가 즉시, 방해 없이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자료에 따르면 EU는 이스라엘의 최대 무역 상대방으로 지난해 기준 이스라엘 수출의 28.8%가 EU로 향했고 이스라엘의 EU로부터의 수입 비중은 34.2%에 달했다. 반면 EU 쪽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31번째로 큰 무역 상대방으로 비중이 0.8%에 불과하다.

전날 영국·프랑스·캐나다 정상들도 공동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네타냐후 정부의 "극악무도한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이스라엘이 군사 공세를 멈추고 인도적 지원 반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구체적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20일 성명을 통해 EU를 향해 "전쟁 지속 책임은 하마스에 있다"며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건 하마스의 입지를 공고히 할 뿐"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EU가 하마스에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작전 확대를 발표한 다음날 가자지구 전쟁이 끝나길 바란다고 밝힌 것이 전쟁 지속 관련 네타냐후 총리의 딜레마를 키울 것으로 분석했다. 19일 취재진에 이스라엘의 작전 확대 관련 질문을 받은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분쟁이 종식되길 바란다고 분명히 했다"고 답한 바 있다.

신문은 조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휴전 압박을 받았지만 바이든 정부에 반대하는 의회 내 공화당의 지지를 업고 버틴 반면, 현재는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이 이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지지를 잃는다면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외교 정책의 초석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동 순방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했고 이스라엘이 여전히 위협으로 여기는 시리아 제재 해제를 선언했으며 미국인 인질 석방 협상 때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고 하마스와 직접 협의하는 등 이스라엘을 소외시키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스라엘 싱크탱크 유대인정책연구소의 야코프 카츠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가 이스라엘 없이 새 중동을 만들기 위한 시도 중이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과 유럽의 압력이 거세지며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 궤멸이라는 초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전쟁을 끝내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18일 가자지구에 "기본적인 양"의 식량 반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뒤 이스라엘 쪽은 20일까지 약 100대의 구호 트럭이 가자지구 남부와 이스라엘을 잇는 케렘 샬롬 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로 들어갔다고 밝혔지만, 유엔(UN)은 가자 주민들이 배급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스테판 뒤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20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쪽이 복잡한 절차를 부과해 구호품 배급 지점으로의 수송이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 당국이 케렘 샬롬 검문소의 팔레스타인 쪽에서 구호품을 하역하게 하고 가자지구에 있는 우리 팀의 접근이 확보되면 개별적으로 다시 싣도록 하고 있다"며 "오늘 우리 팀 중 하나가 케렘 샬롬에 접근하기 위해 이스라엘 허가를 받느라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구호품을 우리 창고로 가져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많은 구호품이 가자지구로 들어오고 있지만 우리 창고 및 배송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전쟁 전 가자지구에 반입되던 구호품 규모는 하루 트럭 500~600대 분량이다.

▲20일(현지시간)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이 영국 하원에서 의원들에게 가자지구 전쟁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래미 장관은 이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 확대와 식량 반입 봉쇄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스라엘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효진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