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이승만 묘소 찾은 이재명 후보님, 해고노동자에게는 언제 오십니까?

[고공농성 100일 기념 릴레이 기고 기획 ④] 대선후보들이 세종호텔에 방문할 이유

연일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이 보도된다. 통합행보라며 재벌과 만나고 박정희·이승만의 묘소를 참배하는 건 명백한 우경화다.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5월 23일은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의 고공농성 100일이 된다. 선거유세가 한창일 시기 한국에서 가장 절박하고 가혹한 투쟁을 하는 노동자가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있다. 100일 동안 '소년공' 출신 이재명 후보는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를 만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

고공농성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선택하는 가장 가혹한 농성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내려오지 않는다는 각오로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은 폭과 높이가 1미터(m)가 되지 않은 철제 구조물 위를 올랐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이 고공농성자들을 만나야 하는 이유에 비단 고진수의 절박함만 있지 않다. 고공농성에 올라서까지 공론화해야 했던 사회문제들,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호텔 노동자 4만1603명이 비정규직 되라는 말인가

세종호텔 정리해고 이후 세종호텔은 급속도로 외주화됐다. 해고자들이 일하던 '베르디'가 외주화됐고, 2층에는 미용 목적의 피부과가 입점했다. 3층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250여명이던 정규직은 21명으로 줄었고, 빈자리는 비정규직이 채우고 있다.

외주화는 비단 세종호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 시기 호텔들이 오랫동안 일하던 정규직들을 한순간에 해고했다. 엔데믹으로 호텔업이 활성화되자 빈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호텔은 객실 판매, 식음료, 조리사업 등 다양한 서비스가 집약되어 있어서 고용 창출 효과가 뛰어난 업종이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1성~5성급 호텔의 종사자만 4만1603명에 이른다. 이 일자리가 세종호텔처럼 비정규직화된다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호텔업은 시설관리 업종 외에도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서비스 업종이 주를 이루며 고용 전망도 좋다. 그래서 호텔경영, 주방조리, 관광업 관련 전공이 대학에 확대되고 있다. 세종대학교에도 호텔경영학과가 있다. 그런데 호텔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의 열악한 형태가 된다면 호텔업에 종사할 청년들도 모두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호텔업은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강원, 제주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수천 명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업종이다. 지역의 일자리도 질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4년째 세종호텔에 연대해오며 '어차피 못 이긴다. 차라리 빨리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해고된 당사자들은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그런데 길게는 30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던 세종호텔의 해고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면 비정규직 말고는 자리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일터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 고공농성에 올라 장기간 투쟁을 이어오던 동력이기도 하다.

▲세종호텔 해고자 고진수. ⓒ이온화

윤석열 정권이 망친 경제 살리려면

민주당은 거리 곳곳에 "윤석열 정권이 망친 경제 민주당이 살리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개첩했다. 계엄령의 영향으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며 환율방어에 세수가 어마무시하게 투입됐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금융위기 이후 최고라고 한다. 민주당의 현수막은 계엄령이 만든 이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런 측면에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윤석열 정권이 망친 경제'를 살리는 것에도,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노동운동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흉년이 들면 공황이 왔다. 먹을 것이 없으니 삶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없으면 공황이 온다. 재고를 대량으로 생산해뒀는데 팔리지 않으니 공황이 오는 원리이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노동자이고, 노동을 하면서 먹고산다. 4만명이 넘는 호텔 노동자 전부가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 된다면 과연 '윤석열 정부가 망친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세종호텔 정리해고의 이면에 노조 파괴가 있다. 그리고 노조 파괴의 이면에는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민주노조가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에 반대하자 마음껏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없었던 세종호텔은 15년간 노조를 탄압했다. 호텔에 노동조합이 있어야 비정규직화를 막을 수 있고,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복직한다면 비정규직을 양산해온 호텔업계에도 경종을 울리게 만들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일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앞에서 방탄유리가 설치된 유세차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장이 자본을 향한 적은 없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 토끼도 못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의 결정적인 범실로 스코어를 벌렸으면서 원래 쫓던 토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광장이 자본을 향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10만여명의 광장세력은 고진수 지부장에게로 향했다. 세종호텔의 고공농성은 고진수 지부장 한 명의 이례적인 행보가 아니다. 호텔 노동자들의 문제, 노조 탄압의 문제가 쌓이다 못해 분출한 것이다. 광장시민들이 세종호텔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다. 광장에 나온 이들도 자신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고, 노동자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을 대변할 대선후보라면 고공농성장에 방문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지금 당장 고진수 지부장을 만날 날짜를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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