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쏘아올린 이른바 '관세전쟁'으로 한국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산업 종사자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하며 여기엔 노동조합이 반드시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난 15일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정책제언 포럼'에서 "이젠 진정으로 '탈미국'을 이야기해야 할 때로, 미국 없는 세계 경제를 구상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수출 주도 성장에 매몰돼 내수 기반의 취약성을 키워온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산업 정책의 지도 원리에 국익뿐 아니라 사회공공성을 포함하는 진보적인 산업정책을 주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회에선 자동차, 철강 등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큰 제조업 현장에 이미 위기가 도래해 긴급대응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지배적으로 나왔다.
김상민 전국금속노동조합 정책실장은 "한국은 GDP 대비 수출 비중이 2024년 기준 36.6%이고, 대미수출 비중은 2020년 14.4%에서 2024년 18.6%로 증가한 상황"이라며 "특히 자동차 및 부품은 대미 수출 비중이 매우 크고 반도체·바이오도 넓게 보면 대미수출의 18%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또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간부품 수요 독점이 강하게 형성돼있다"며 "현대차가 어려워지면, 현대차에만 중간재를 납품하는 수많은 부품사가 함께 위험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한국 국책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제시한 대응안은 한심한 수준"이라고 나 교수는 비판했다.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와 그 종사자들까지 광범위한 타격을 입을 위기임에도, '상호관세율이 높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해 관세율이 낮은 나라로 생산기지를 재배치하라'거나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무역 특혜를 제공하는 멕시코, 캐나다 등으로 진출하라'는 수준의 방안만 내놓았다는 지적이다.
나 교수는 "그런데 당장 타격받는 현대차에 대책을 물어도 없는 상황"이라며 "현대차가 미국에 공장을 증설하면서 1차 벤더(협력업체) 부품업체들 일부도 함께 가는데 이는 1차 벤더의 일부에 불과하고, 현대차의 공급망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고 말했다. "예로, 국내 2차 벤더에서 미국 1차 벤더로 부품을 보낼 땐 관세가 붙을 텐데 이걸 누가 부담할지도 정리가 안 된 상태"라며 "이대로면 부담이 하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업체들이 전부 미국으로 옮기면, 한국 제조업 현장이 없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산업 구조조정 불가피 "정부·노동 적극 개입 필수"
나 교수는 산업정책과 관련해 "제조업 역량을 보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제조업 역량은 곧 일자리 문제이자 한국이 보유한 숙련 및 기술 경쟁력의 문제기도 하다"며 한국보다 먼저 진행된 미·일 협상의 시사점을 강조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미국에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협상 범위부터 쟁점을 삼고 있다. 나 교수는 "이 협상 결과가 한국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이에 일본과 공동대응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나 교수는 주변국과의 공동전술 구축을 제시하며 "유럽, 중국, 일본, BRICs 국가들, 그밖에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면서 미국 정책 변화를 끌어낼 수 있으면 바람직하다"며 "미국의 일방 요구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사우스로 수출·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국제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진보정치의 비전과 구체적 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예견되는 일차적인 수요 변동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불황카르텔'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제시하며, "수출 길이 막혀 내수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벌어질 수 있기에, 사전에 정부가 개입해 생산량 감축 규모를 사업자 간 협약으로 도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단기 처방에 그칠 수 있기에 "다시 정부가 적극 개입해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질서 정연한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며 "최선의 형태는 합병일 수 있고, 이게 어렵다면 선별된 사업자가 남는 사업자들로부터 보상을 받고 퇴출당하는 방법, 나아가 생산설비 폐기 협정을 조직해 사업자들이 합의된 비율로 생산 능력을 함께 줄이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나 교수는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일자리 파괴를 최소화하고 국가 보조로 소득을 보전하며, 해고노동자를 대상으로는 직업 재훈련과 재배치 등의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 불완전해 필요한 게 산업정책... '비시장기관' 참여 필수"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케인즈주의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스티글리츠(J.Stiglitz) 등의 이론을 인용해 "산업정책은 시장친화적이어야 한다는 견해는 편견"이라며 "시장 자체가 불완전하기에 (산업정책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산업정책은 시장에 맡길 게 아니라 제도가 역할을 해야 한다"며 "공공기관부터 전문가 협회, 노동조합, 지역조직 등 비시장기관이 전체 사회경제적 조직 구성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함으로써 시장의 자기파괴위험을 제어한다"고 설명했다.
또 "설비·자본의 투자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기술, 경험의 축적을 존중하면서 노동 기반 산업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현재의 노동배제 산업정책은 극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박 연구위원은 산업 전환의 시기와 맞물려 "이윤의 사유화 및 기업화가 아닌 이윤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선 친환경 산업전환 투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산업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탈탄소화 전략은 과거처럼 특정 재벌에 특혜를 주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며 "공적 펀드(탈탄소화 기술 개발 및 관련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공적 자금 조성)로 이윤을 사회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 산업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정책실장도 "중첩된 급박한 위기는 목전이고 산업정책은 노동자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노동의 실질적 참여는 매우 제약됐다"며 "거버넌스 강화로 현 위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정책실장은 독일, 덴마크, 프랑스 등의 해외 사례를 들어 "산업정책이나 노동시장정책을 수립·집행할 때 유관 산별노조의 중층적이고 대등한 참여를 보장한다"며 "제조업 관련 산업·노동시장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유관 산별노조 참여가 보장되도록 각종 법률과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비제도적 산업·업종별 노정 및 노사정 협의구조 마련 및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도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