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박탈감' 느낀 남자들, '고어자본주의' '등에 업고 극우화"

[좌담회 上] 이한·안희제 "남성 극우화는 좌절감과 분노, 증오심과 영웅 심리가 응축된 결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이유로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들에 대한 선고가 오는 14일부터 줄줄이 이뤄진다. 다수 피고인은 여전히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범행을 정당화하고 있다. 공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은 증인들에게 "중국 사람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많은 언론이 법원 테러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이들의 절반 이상이 2030 청년,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남성이란 점을 두고 "청년 남성들이 극우화됐다"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등 음모론을 퍼뜨리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대표적인 남성 중심(남초)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라는 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에게 옥중 서신을 보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청년들을 수차례 언급한 점도 '청년 남성 극우화'의 논거가 됐다. 언론의 분석처럼 청년 남성들이 정말 전보다 극우화된 걸까.

학교와 군대 등에서 성교육을 진행해온 이한 남성과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며 <증명과 변명 - 죽음을 계획한 어느 청년 남성이 남기는 질문들> 등을 집필한 안희제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극우 남성의 수가 늘어났다기보다 그들의 행동이 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했으며, 언론이 그들의 목소리를 증폭하면서 세를 불리게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결과 극우 청년 남성들의 난동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극우 남성들이 전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 작가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주목경제, 폭력이 돈이 되는 '고어자본주의''에 주목한다. 음모론을 퍼뜨리고 폭력을 선동함으로써 물적·명예적 이익을 얻는 사회구조가 그들의 행동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과 극단 폭력은 탄핵정국에서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N번방·페미니즘 사상검증 등 여성과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축적된 결과라고도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더 이상 전통적인 가부장 권력을 얻지 못해 박탈감에 빠져 있는 남성들이 분노를 사회구조가 아닌 약자들에게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부지법 폭동 이후 극우 남성 유튜버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이화여자대학교, 전남대학교 등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부린 난동,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의 모임 '자유대학'이 중국인 및 조선족이 모인 거리를 찾아가 피운 소란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들은 극우화된 청년 남성들을 단순히 병적 존재로 치부해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안 작가는 "주목경제, 박탈감, 폭력의 방향성 등 여러 요소가 젠더에 모여 폭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며 "젠더 문제에 대응할 때 결구 마주하게 되는 건 구석구석 샅샅이 바꿔내야 할 이 사회 전체"라고 했다. 이 강사는 "대화를 통해 그들을 물밑에서 끄집어내야 혐오로 주목과 돈이 가는 경로가 사그러들고, 결국 남자들의 혐오 폭력도 멈출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지난달 21일과 지난 12일에 걸쳐 진행한 두 사람의 좌담 첫 편이다. 첫 편은 탄핵정국에서 주목받은 극우 남성들의 폭력성을, 두 번째 편은 탄핵 반대 집회에서 확인한 공동체 사회의 붕괴를 주목한다.

▲4월 2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이한 강사와 안희제 작가가 청년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폭력이 돈이 되는 '고어자본주의''가 극우 남성들의 폭력 부추겼다"

프레시안 : 4개월 동안 이어진 탄핵집회가 '응원봉'으로 대표되는 평화·평등 문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탄핵에 반대하는 극우세력들은 사법기관과 소수자들을 상대로 한 폭력적 행보를 보였다. 극우세력의 폭력성, 그 중에서도 남성들이 폭력선동의 중심이 된 이유를 묻고 싶다. 먼저, 이번 탄핵정국에서 극우세력의 난동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무엇이었나?

안희제 :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서부지법 폭동일 수밖에 없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 사회 최소한의 합의가 붕괴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법체계를 테러한다는 건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체제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동시에 폭력성 자체보다 폭력이 나오게 된 논리가 너무 두려웠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을 보면, 같은 한국말인데도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부정선거 주장부터 시작해서 헌법재판소와 사법부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는데 별다른 논리가 없고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은 모두 가짜뉴스라고 한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며 과연 저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한 : 서부지법 폭동은 너무 끔찍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이라거나 전에 보지 못한 장면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극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양상이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인 같은 특정 집단을 혐오한다든가, 음모론을 펼친다든가, '스탑 더 스틸' 표어를 사용한다든가 말이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태였고, 학자들도 거대해진 혐오가 정치와 결탁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럼에도 혐오세력과 정치권의 결탁을 누구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동안 쌓여온 증오선동이 극적으로 집약돼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참담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서부지법 폭동 당시 체포된 가담자 절반이 20·30대 청년, 그 중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이를 두고 많은 언론이 "청년 남성들이 극우화됐다"고 분석했다. 정말 우리나라 청년 남성들이 극우화되고 있다고 보나?

이한 : 연구자나 통계학자가 아니다 보니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성교육을 하러 다니며 최근 5년 사이의 양상을 살펴봤을 때 극우화된 남자들이 더 많아졌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 10명 중 7~8명은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2~3명에 해당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진 건 사실인 것 같다. 온라인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언론 등에서 이들을 주목하는 정도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극우 남성의 수가 커졌다는 분석이 그들의 목소리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목소리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더 재밌어" 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희제 : 이 활동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휘트니 필립스의 책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 정보에 속았는가>를 언급하고 싶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과정에서 극우 인셀(인터넷을 중심으로 여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국적인 세력화가 가능했는지 짚는 이야기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인터넷 세계에서 아주 작은 집단에 불과했던 인셀들의 목소리가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미국 남성 전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증폭됐다.

미국의 사례를 우리가 반복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도 극우 남성들이 과대대표되고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만 보고 끝없이 보도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모든 남자들이 서부지법으로 간 것도 아니고, 체포된 인원의 절대적인 수도 많지 않다. 대다수 남자들은 서부지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남성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서부지법까지 가게 됐는지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인과관계를 모두 삭제한 채 숫자만 가지고 근거 없는 분석을 내놓는 언론들은 반성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극우 남성들의 절대적 수가 늘어난 게 아니라면, 그들이 이처럼 적극적이고 폭력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 경로를 자세히 묻고 싶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유가 궁금하다. 극우 남성 유튜버들은 인권위, 이화여대, 전남대, 주한중국대사관 등을 침범하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안희제 : 폭력이 돈이 되는 '고어자본주의''가 주목경제의 수익모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신남성연대, 캡틴아메리카 등 일부 남성들의 이상행동은 왜 하필 약자를 증오하는 방식으로 발현됐으며, 그들의 폭력성은 왜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까지 증폭됐을까? 폭력이 콘텐츠이자 돈이 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하는 주목경제에서 여성, 중국인, 성소수자 등 평소 혐오의 대상이 돼 온 약자들을 증오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탄핵정국이 열리기 전부터 이런 비즈니스 모델에 진입하기 쉬웠다. 여성학자인 손희정 선생은 전부터 N번방, 사이버렉카 등 여성과 약자들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산업화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미 증오로 돈을 버는 길이 만들어져 있으니 남성들이 그 경로를 따라갔고, 그 결과 탄핵정국에서 극단적인 폭력성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들이 어떤 감정을 기반으로 폭력성을 표출하는지 주목하고 싶다. 감정사회학자 김승식 씨는 혐오를 '나만 추락하지 않겠다는 감정'으로 정의한다. 또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은 범행 전 일기장에 '죽고 싶다'는 내용을 가장 많이 적었다고 한다. 극우 남성들의 행동은 이와 연결된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다고 느낀 남자들이 자신이 없어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을 증오한 결과 극단적인 폭력성을 드러냈다.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그들의 극단적 감정 표출을 막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한 : 페미니즘 관점으로 보면, 극우 남성들이 폭력성을 띤 이유에 박탈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중국인을 겨냥하는 이유는 '중국이 공산당이어서'가 아니다. 그러면 북한을 공격하고 그들을 빨갱이라고 욕하는 게 더 쉬웠을 거다. 중국을 겨냥하는 진짜 이유는 경제적 부상 때문이다. 열등하고 미개한 국가라고 생각해 온 중국이 빠르게 앞서가자 열등감을 느껴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이 여성들을 공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안정적 일자리, 트로피처럼 얻는 배우자, 이상적인 가족 등 이상화된 가부장 권력을 욕망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갖기 어렵자 '여성들이 우리 권력을 빼앗는다'며 혐오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가 26일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갈무리

"극우화 이면에는 남성 사회에 자리잡은 불안과 도피, 무책임함이 있다"

프레시안 : 남성들의 감정에 주목한 김에 하나 더 묻고 싶다. 서부지법, 인권위, 대학가 등에서 혐오 폭력을 벌인 극우 유튜버들은 자신들의 공격성과 함께 큰 키, 근육질 몸매 등 강한 육체를 과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도 남성성을 향한 선망 또는 남성들이 공유하는 감정과 연결돼 있나.

이한 : 그렇다. 현장에서 성교육을 하며 느끼는 건, 폭력적인 행동을 계속하는 남자들은 남성 위계에서 위태로운 자리에 있는 이들이란 점이다. 흔히 말하는 '알파메일'들은 이미 많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려 한다. 반면 위태로운 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위계질서를 비판하기 어렵기 때문에 강한 육체로 남성성을 과시하고, 여성과 약자들을 짓밟는 방식으로 자신이 가부장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려 한다.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하려면 남성연대의 위계질서, 남성연대를 지탱하는 문화를 반드시 짚어야 한다.

안희제 : 사실 소위 '깽판'을 치는 남자들의 모습은 남중, 남고를 다닌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다. 남자들은 공부 잘하는 애, 운동 잘하는 애, 키 엄청 큰 애, 잘생긴 애 등 또래 집단에서 각자 특정 역할을 맡는다. 이 역할들에 들어갈 수 없는 남자애들이 맡는 역할이 광대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부 남성성을 강조하면서 게이, 여성, 장애인 등 약자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방식으로 또래 집단에서 인정을 얻는다.

광대 역할의 남성들은 호모포빅한 행동이 결국 자신을 비하하는 꼴이고, 자신이 성공적인 가부장이 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계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성성을 우상화하고 재생산한다. 신남성연대 등 극우 남성 유튜버들이 정확히 이런 광대 역할극을 하고 있다. 이대 난입, 동덕여대 조롱, 트랙터 진입 저지 등 극우 남성들이 난동을 부린 장면들은 주목경제를 기반으로 앞서 말한 광대 남성들의 좌절감과 분노, 증오심과 영웅 심리가 모두 응축된 결과다.

프레시안 : 극우 남성들의 등장이 약자를 공격하는 남성문화가 이어져온 결과라면, 그들의 난동은 지난 몇 년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벌어진 남성들의 페미니스트 마녀사냥과도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할까.

안희제 : 그 둘은 완전히 연결된 문제다. 마녀사냥에 참여한 남자들은 온갖 음모론과 괴롭힘으로 여성들을 공격하고 노동자의 경우 일자리까지 잃게 만들었다. 페미니즘에 우호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업은 불매하고, 특정 정부기관은 폐쇄를 논의하게 만들어 돈줄과 예산을 건드렸다.

마녀사냥의 동기가 단순 재미였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거다. 남자들은 마녀사냥으로 효능감을 느낀다. 경제적 이익 문제도 얽혀 있다. 이들은 제로섬 게임을 하듯 여성들을 실직시키고 여성들을 위한 예산을 깎아내면 남성들의 자원이 늘어난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전체 상수가 줄어드는데도 말이다.

이한 : 그들이 하는 여성혐오가 실제로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혐오가 방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제든지 중국 등 다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남성들의 혐오감정의 물밑에는 불안과 도피가 있다. 학교에서 혐오를 일삼는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결국 "나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친구 없고 불안해요"라는 말을 하고 싶어한다. 무엇 때문에 힘들고 불안한지 물어봐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혐오하지 말라고 해봐야 와닿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그들을 물밑에서 끄집어내야 혐오로 주목과 돈이 가는 경로가 사그러들고, 결국 남자들의 혐오 폭력도 멈추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 및 신남성연대 구성원들이 페미니스트 단체 '팀 해일'의 집회 장소 인근에서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세계일보 유튜브 갈무리

프레시안 : 왜 유독 남성들의 불안이 서로 돌보는 방향이 아니라 약자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나?

이한 :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고충에 대해 말하는 일들이 적어왔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반응해야 하는지 본 경험도 적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이 서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표출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나도 참고 있는데 왜 쟤는 안 참지?', '너만 힘들어? 왜 엄살이야'라며 반발한다. 고충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니 자살률은 계속 심각한 상태다.

안희제 : 남성들은 각자 행동과 생각을 책임지는 방법을 모른다. 그 중심에 재미와 조롱을 우선시하는 문제가 있다. '재밌으면 됐지', '장난으로 하는 건데 왜 그래' 식의 재미 중심 상호작용이 반복되다 보니 상처를 살필 능력을 기를 기회, 문제 행동을 책임질 기회가 사라졌다.

서부지법 폭동으로 체포된 한 가담자는 국회의원에게 '내일 회사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문자를 보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폭력을 저지른 거다. 대놓고 폭력을 저지른 뒤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소수의 남성들보다 숨고 싶어 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남자들에게서 더 큰 진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한 : 남성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은 대표적 사례가 윤석열과 고(故) 장제원이다. 완전 뻔뻔하거나 완전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거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2일 서울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 버스킹거리에서 정치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 남성 이용하는 낡은 정치 끊어내고 서로 돌보는 문화 만들어야"

프레시안 : 윤 전 대통령 파면 후에도 '자유대학'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양꼬치 거리' 등에서 혐오 테러가 발생했다. 어떻게 해야 남성들의 극단 폭력이 줄어들까.

이한 : 대안은 결국 페미니즘이다. 지금까지는 페미니즘을 여성의 담론으로만 활용했다면, 이제는 남성의 삶을 돌아보는 담론으로도 활용해야 한다. 유해한 남성성, 유해한 남성연대의 존립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로의 회귀는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윤리적으로 용납되지도 않는다. 결국 살아남는 건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언어로 사용하는 단체, 서로를 돌보는 문화일 것이다.

안희제 : 남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명백하다. 우리들은 이준석이나 하태경이랑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여성들과 어울려 산다. 남성들의 삶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랍시고 등장했는데, 사실 그들은 우리들을 위해 해준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들에게 놀아나서는 안 되고 어긋난 애착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낡은 정치가 아니라 정말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사람들과 애착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남자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살아가면 좋겠다.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자들이 극우화되는 과정이 약화될지언정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극우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이란 더 나은 사랑을 만들어내고 애착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정당이든, 운동이든, 친구든 무엇이든 말이다. 이는 남성들만의 몫이 아니라 정치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정치는 남성들의 애착 관계 형성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프레시안 : 남성들의 극우화에 정치가 나서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대선 주자들과 새 정부에 바라는 역할도 있을까.

이한 : 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가해자들을 단순히 병적인 존재로 구분지을 게 아니라 폭력을 만들어내는 문화에 대해 같이 지적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거대 정당의 후보들에게서 성평등에 대한 인지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여성 지우기를 하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다.

안희제 : 젠더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단순히 성별을 이유로 발생하는 게 아니란 점도 고려하길 바란다. 주목경제, 박탈감, 폭력의 방향성 등 여러 요소가 젠더에 모여 폭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젠더 문제에 대응할 때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구석구석 샅샅이 바꿔내야 할 이 사회 전체일 것이다.(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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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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