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표적 된 보좌관 경질한 트럼프…'시진핑보다 직함 많다'는 루비오 조롱도

해임 배경 '매파 보수 왈츠, 고립주의자들과 갈등' 분석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민간 메신저에 실수로 기자를 초대해 민감한 군사 정보를 유출한 고위 안보 관료 중 하나인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 월츠는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됐지만,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메신저 유출 사건을 포함해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 정책 관련 총알받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축출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공석이 된 안보보좌관직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당분간 겸임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의 본인 계정을 통해 "마이크 왈츠를 차기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할 것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왈츠 보좌관이 "새 역할"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석이 된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를 임시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겸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왈츠는 지난 3월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군사 작전을 민간 메신저앱인 '시그널'에서 논의한 데다 실수로 기자까지 초대해 구체적 작전 정보까지 누출한 어처구니없는 안보 사고를 일으킨 미 고위 안보 관료들 중 한 명이다. 미 매체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은 자신이 왈츠의 보좌관에 의해 이 메신저에 초대됐고 해당 대화방에 추가됐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보좌관들에 따르면 왈츠가 지난달 유출 당시 즉시 경질되지 않은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책임자를 해임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던 언론에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왈츠 경질과 루비오 겸임은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태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일 언론 브리핑에서 취재진으로부터 해당 내용 및 루비오 겸임 기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를 당신으로부터 지금 막 접한 것은 분명하다"며 "현대 기술과 소셜미디어의 기적"이라고 얼버무렸다. <뉴욕타임스>는 이 결정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백악관 고위 보좌진들조차 이 소식을 1일 오전에 알게 됐다고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신문은 해당 논의를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 루비오 장관이 요청이 있다면 6달 가량 겸임을 맡을 의향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루비오 장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등 대화방에 참여한 관련 고위 관료들 중 왈츠만 해임된 배경으로 그의 매파 보수주의적 성향과 미국의 해외 개입을 배척하는 JD 밴스 부통령을 포함한 트럼프 정부 내 다른 세력과의 갈등이 꼽히기도 했다. 왈츠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의제에 충실하지 않은 정부 인사들을 공격 중인 극우 활동가들의 표적이 됐다.

<AP>는 미 민주주의수호재단 분석가인 마크 몽고메리가 "왈츠는 그의 외교 정책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을 대통령의 좀 더 기회주의적 체계에 맞추려 노력한 것 같지만 대통령은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철저한" 인준 청문회 예고…사실상 축출?

왈츠를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하는 유엔 대사에 지명한 것이 사실상의 축출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 상황에서 청문회가 열린다면 민간 메신저를 통한 군사 정보 유출이 거론될 수밖에 없어 인준까지 험난한 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왈츠가 청문회를 통해 러시아 편향을 비판 받는 우크라이나 휴전 중재, 관세를 통한 동맹 신뢰 상실 등 트럼프 정부의 지난 3달간 외교 정책에 대한 화살받이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영국 BBC 방송은 복수의 미 당국자들을 인용, 트럼프 행정부가 왈츠에 대한 상원 인준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통해 왈츠를 직접 해임하지 않고도 그를 정부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철저한" 청문회를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기밀 또는 민감한 정보 처리, 시그널(민간 메신저) 사용, 전체 시그널 사건의 전개 방식에 대한 분명한 의문"이 있을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많은 움직임이 우리나라를 덜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왈츠)가 우리 안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또한 질문 대상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쿤스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왈츠가 여전히 시그널 메신저를 이용해 밴스 부통령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 포착된 보도 사진을 인용하며 "철저한 인준 청문회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왈츠의 인준 청문회가 민주당에 트럼프 정부의 대량 해고, 백악관 내부의 전반적 상황, 관세 정책 등에 대해 질책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고 짚었다.

민주당은 왈츠 해임을 환영하지만 헤그세스 장관 또한 해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미 덕워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유출) 대화방에 참여한 모든 멍청이들 중 헤그세스가 가장 큰 보안 위험이다. 그는 우리 군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 정보를 유출했다"며 "이들 모두가 해임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헤그세스는 대화방 유출 사건에서 무기, 목표물, 시간을 포함한 미군의 예멘 공격 구체적 정보를 직접 발설한 당사자다. 이에 더해 지난달 말엔 배우자와 형제 등이 포함된 또 다른 시그널 대화방에도 예멘 공격 정보를 공유한 정황이 보도됐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방부 감찰관의 헤그세스에 대한 기존 유출 사건 조사가 배우자가 포함된 또 다른 대화방 유출 조사로 확대됐다고 의회 보좌관 등을 인용해 보도했다.

우크라·가자전 등 외교 과제 산적 상황서 루비오 '1인4역'

루비오 겸임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국무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게 된 것은 1973~1975년 헨리 키신저 이후 처음이다. <뉴욕타임스>는 "국가안보보좌관은 국가 안보 기구 내부의 상반된 주장을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국무부, 국방부, 정보기관 사이 이견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키신저 (겸임) 실험은 대부분의 역사가들에게 성공으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미국엔 가자지구 및 우크라이나 휴전 중재, 이란과의 핵 협상, 관세 전쟁 등 외교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루비오가 두 직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 중 하나다.

루비오는 트럼프 정부가 난도질한 미 대외 원조 기구 국제개발처(USAID) 처장 대행,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임시 청장 또한 맡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개의 행정부 직함을 떠안은 루비오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보다도 직함이 많다고 비꼬기도 했다.

다만 루비오는 왈츠와 비슷한 매파 보수주의자로 평가돼 미 외교 정책이 당장 급변하진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나온다고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전했다. 매체는 보수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한 외교정책 전문가가 "루비오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시 임명된 것은 위안이 된다"면서 "우린 어떤 터무니없는 제안이 대통령 집무실로 가는 길에 왈츠의 책상에 올랐다가 왈츠 덕에 조용히 차단됐는지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왈츠를 정식으로 누구로 대체하느냐가 백악관의 외교 정책 미래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라며 "고립주의자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얻고 있는 시기에, 동맹을 지원하고 적과 맞서는 미국의 리더십을 믿는 이들은 왈츠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임은 '역시 윗코프'?

외신들은 소식통 등을 인용해 차기 국가안보보좌관 유력 후보 중 하나로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특사를 공통되게 꼽았다. 윗코프는 중동 특사로 임명돼 가자지구 휴전 협상에 관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등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에도 적극 관여 중이고 이란과의 핵 협상에도 참여해 주요 협상에 전방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AP>는 사안에 정통한 미 당국자가 윗코프는 국가안보보좌관직에 관심이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 요청이 있을 경우 임시로 맡을 순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 당국자가 윗코프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특사에 머무는 것을 선호할 것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25일 마이크 왈츠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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