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의 금융문해력 수준은 OECD 평균 이하, 특히 청년층과 고령층의 이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격차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잘못된 금융 판단, 사기 피해, 빚의 악순환 등 삶의 불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도 이 위기의식은 대도시를 벗어난 지역사회에서는 더욱 흐릿하다.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디지털 격차가 크며, 맞춤형 금융교육의 기회조차 부족한 지방은 사실상 ‘금융 소외 지역’으로 방치되어 있다.
지방의 금융이해력 격차는 곧 지역 격차의 뿌리
지방 청년이 서울로 떠나는 이유는 단지 일자리 때문만이 아니다. 재정관리, 자산운용, 창업 준비, 생애설계 등 삶을 주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지역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령층 역시 복잡해진 금융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킬 방어 수단 없이 각종 사기와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금융문해력’의 격차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이해력의 불균형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경제 전체의 활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창업 실패율이 높고, 가계부채가 늘고, 자산 불균형이 심화되는 지방의 구조적 문제는 결국 금융 리터러시 부재와 직결된다. 그렇기에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작점은, 바로 금융교육이어야 한다.
지자체, 금융교육의 실질적 플랫폼이 되어야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주민에게 가장 가까운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지역민의 생애주기별 금융교육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주체다. 단발성 캠페인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드는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지역 기반의 상시 금융교육센터를 운영해 연령대별 교육을 정례화해야 한다. 단순한 특강 중심에서 벗어나, 사례 중심, 체험 중심의 실천형 교육을 운영하고, 지역 특성과 산업구조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농어촌 주민에게는 보이스피싱과 신용관리, 소상공인에게는 세무와 자금조달 교육 등이 시급하다.
둘째, 지자체는 공공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적 플랫폼을 통해 교육을 운영해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 금융사 등에 의존한 교육은 홍보 중심으로 흐르기 쉽고, 지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독립된 지역 금융전문가, 시민단체, 퇴직금융인 등과 협업하여 지역 맞춤형 콘텐츠를 설계하고, 객관적 진단과 평가를 병행해야 한다.
셋째, 금융교육과 연계된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청년 대상 금융교육을 마친 참여자에게 창업지원금 신청 자격을 부여하거나, 고령자 대상 사기예방 교육과 지역 금융복지상담을 연결하는 식의 정책 통합이 필요하다.
지역 대학, 금융교육의 핵심 지식 인프라로 서야
지역 대학은 지역 사회를 위한 지식 창출과 인재 양성의 거점이다. 지금까지 대학이 지역과 유리된 지식섬(Island)으로 존재해왔다면, 앞으로는 ‘지역 금융이해력 강화의 허브’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세 가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첫째, 금융교육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는 물론이고 사회복지학과, 법학과와 연계하여 ‘지역 금융 리터러시 전문가’ 양성 과정을 개설하고, 이를 통해 지자체와 협력해 교육을 공급하는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대학의 연구 기능을 지역 특화 금융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소상공인의 금융애로 분석, 청년층의 대출행태 조사, 고령층 금융피해 유형 등 구체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지역형 정책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지자체와 공동정책을 도출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셋째, 지역 대학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청년 금융 멘토단을 운영할 수 있다. 또래 교육자(peer educator)를 활용해 고등학생 또는 청소년 대상 금융교육을 진행하거나, 디지털 활용 능력이 낮은 고령층에게 금융앱 사용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세대 간 금융지식의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다.
금융교육은 지역 균형발전의 지렛대
결국 금융이해력은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가장 실용적이고 시급한 역량이다. 지방의 금융 리터러시 격차를 방치한 채 국가의 포용적 성장은 불가능하다. 수도권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맞춤형 교육이 이뤄질 때, 우리는 비로소 ‘금융 포용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대학이 주도하는 금융교육 혁신은 단지 한 사람의 경제지식 향상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곧 지역 공동체의 회복, 경제적 주권의 분권화, 그리고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된다.
이제, 금융교육은 ‘지역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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