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폭동을 기록하다 재판에 넘겨진 정윤석 감독이 검찰에 공소 취소를 요구했다. 시민 1만2000명과 영화인 2781명 또한 정 감독에 대한 기소가 부당하다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정 감독 측은 16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김우현)가 진행한 공판에서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 당시 현장을 기록한 행위와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동은 목적과 방식이 명확히 다르다며 검찰에 공소 취소를 요구했다.
정 감독 변호를 맡은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혜석)는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정 감독이 3시경 법원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5시 이후 후문에 진입해 공소사실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감독은 (폭도들과 달리)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였다고 볼 수 없으며, 촬영을 목적으로 (법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주거침입의 고의가 없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무엇보다 예술인의 직업 수행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정당한 행위로서 (정 감독을) 처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소 취소의 필요성과 관련해 전 사회적인 요청이 있다"며 시민과 단체, 영화인들이 제출한 탄원서 1만4000여 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1만4000여 장의 탄원서 가운데 1만2000장은 일반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시민들은 탄원서를 통해 "(정 감독은) 예술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법원이 폭도들에 의해 유린되는 현장을 세상에 알리고,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 취재에 나선 것"이라며 "재판부가 주의 깊고, 정확한 눈으로 범죄자와 목격자를 분별하여 판단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김성수, 변영주, 장항준 감독 등 영화인 2781명,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영화단체 51곳도 탄원서 연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정윤석 감독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현장에서 기록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지와 예술가로서의 책무감에 근거하여 카메라를 들고 법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익적인 취재 목적을 무시하고, 촬영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 감독을 서부지법 폭동의 가담자로 몰아 기소했다"며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남기기 위한 예술가의 행위가 범죄로 취급되지 않도록, 정윤석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같은 요구에도 검찰은 정 감독 측의 공소 취소 요구를 즉각 거부했다. 검찰은 공소 취소를 검토할 계획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피고인 측) 변호인 주장은 독자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공소 취소 계획은 없다"고 했다.

정 감독은 지난 1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에 침입한 극우세력이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리던 장면을 기록하다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그는 폭동과 관련해 기소된 63명의 피고인 중 유일하게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공판기일도 다른 피고인들과 분리해 진행하고 있다.
정 감독 측은 나아가 공판기일만 분리할 게 아니라 사건 자체를 따로 분리해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재판부에 강하게 요청했다. 정 감독은 현재 극우 유튜버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서부지법 선동꾼', '애국청년들의 정보를 넘긴 자' 등 허위 사실에 근거한 공격을 받고 있다. 추후 다른 피고인들이 소송 기록과 판결문에 나온 정 감독 및 변호인들의 정보를 악용한 공격을 이어갈 수 있으니, 변론 분리를 통해 2차 피해 우려를 막자는 취지다.
정 감독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이태원 참사 등을 기록해왔다. 들꽃영화상,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차례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에는 서부지법 폭동 사건뿐 아니라 국회와 탄핵집회, 인권위 등을 촬영하며 탄핵정국을 기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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