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종결하기로 했다. 피해자에게도 피의자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 결정을 통지하고 수사 내용과 결과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수사기록을 토대로 피해 사실을 인정해 달라는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한 셈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장 전 의원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예정"이라며 "수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규정에 따라 고소인에게 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와 여성단체 등에서 요구해 온 수사 결과 발표 및 진실규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의견이 다를 때 그것을 맞춰가는 작업이 수사"라며 "수사 진행이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 전 의원이)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의자 사망으로 수사 진행이 안 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한다'는 내용을 고소인 측에 통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전 의원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부산디지털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 11월18일 부하 비서 A 씨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은 피의자의 사망으로 사건의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며 지금까지의 수사기록을 토대로 성폭력 혐의를 인정해 달라고 경찰에 촉구해왔다.
A 씨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의 대독을 통해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온전히 가해자의 손에 의해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담할 뿐"이라며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된다면 어느 가해자가 처벌을 달게 받겠으며 어떤 피해자가 용기 내서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뤄진 수사를 바탕으로 성폭력 혐의에 대한 결과가 발표돼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죄를 감당하지 않고 가해자가 사망해 죄가 사라지는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은) 수사로 확인된 사실을 발표해 (가해자를) 사회적인 엄벌에 처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가해자의 사망은 형식적인 사건 종결 사유일 뿐이며, 범죄 혐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며 "수사기관은 확보된 진술과 자료를 바탕으로 혐의의 존재 여부를 독립적으로 판단해 피해 사실이 인정된다는 점을 수사보고서 및 종결문서에 명확히 기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도 "성폭력을 가능하게 했고, 오랫동안 고소를 망설이게 했으며, 피해자가 용기를 내 고소한 뒤에도 의심과 비난을 받게 했고, 가해자가 사망한 뒤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해자의 위력에 대한 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 전 의원은 지난 2020년 7월20일 MBN 시사프로그램 <판도라>에 출연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진상규명 요청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나 경찰이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피해자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는 "(피해자 측이)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은 별개라는 이야기를 했다"며 "민주당은 결자해지해야 하고 경찰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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