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며 자신이 앞서 내놓은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을 사실상 철회했다. 우 의장은 지난 6일 "여야 지도부와 개헌 논의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며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권력구조 개편은 이번 기회에 꼭 하자"고 했었다.
우 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힌 입장에서 "국회의장의 제안에 선행됐던 국회 원내 각 정당 지도부와의 공감대에 변수가 발생했다"며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제(諸)정당의 합의로 대선 이후 본격 논의를 이어가자"고 했다.
우 의장은 '변수 발생'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위헌·불법 비상계엄 단죄에 당력을 모아온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이 '당장은 개헌 논의보다 정국 수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며 "현재로서는 제기된 우려를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다. 향후 다시 한 번 각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후퇴를 공식화했다.
우 의장은 이와 관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안정적 개헌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전날 발생한 사정과 함께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개헌이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이라면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우 의장은 자신의 지난 6일 제안의 배경에 대해 "대선 전이 대통령 임기를 정하는 4년 중임제를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판단했다"며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이미 각 정당 간 상당한 수준으로 의견 수렴이 이뤄진 상태이고, 사회 각계 의견과 국민 여론도 흐름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4년 중임제 개헌은 국민의 의사를 받들고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책임정치가 구현돼야 한다는 의장의 소신과도 일치한다"며 사실상 4년 중임제 개헌이 자신이 언급했던 "권력구조 개편"의 내용이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일이 확정됐다. 조기 대선은 헌정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헌법 절차"라며 "12.3 비상계엄이 파괴한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 합의의 내용, 개헌의 골자를 각 정당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제시해주기를 기대하고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열리고, 개헌추진 동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치토론 문화에 대해 한 말씀 드린다"며 "어떤 이유로 의장의 개헌 제안이 '내각제 개헌'으로 규정됐는지 알 수 없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 "합리적이고 진지한 토론을 위축시키고 봉쇄하는 선동"이라고 자신을 향해 쏟아진 비난에 에둘러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경청하고 존중하고 조율하고 조정하려는 노력 없이는 정치가 회복될 수 없다. 자유롭되 성실한 의견 제안, 진지한 반론과 토론 참여, 성찰과 숙의가 우리 정치와 국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앞서 우 의장이 지난 6일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을 공식 발표한 이후, 민주당 친명계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우 의장을 비난해온 사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친명계에서는 "지금의 개헌 논쟁은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려 한 세력이 숨어들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하는 것"(추미애 의원)이라는 등 우 의장 제안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반응에서부터 "개헌? 개나 줘라. 제발 그 입을 닥쳐라"(양문석), "의장 놀이"(정청래)라는 극언까지 나오기도 했다. 개헌 논의가 이재명 대표의 대선가도에 지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우 의장이 '여야 지도부와 공감대가 있었다'고 언급한 것은 <프레시안> 취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우 의장은 이 대표 본인과 최근 2차례 만나 '권력구조 개편안을 포함한 개헌안을 대선 전 확정짓고 투표에 부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이 대표는 또 정대철 헌정회장 등 정치 원로 인사들과도 개헌 관련 논의를 이어왔고, 역시 방향성을 어느 정도 공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우 의장과 2번 만나 개헌 관련 논의를 했다"며 "'합의'까지는 아니지만 (우 의장이 개헌 제안을) '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 대표는 지난 6일 우 의장 회견 시점까지 이같은 내용을 최고위 구성원들과 공유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대표는 우 의장, 정 헌정회장 등과 개헌 관련 논의를 하며 '계엄 요건 강화, 4년 중임제, 국회 추천 책임총리제' 등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뤘으나 이 내용이 민주당 지도부나 친명 그룹에 공유되지는 않았고, 이들은 이같은 사정을 모른 채 이 대표와 민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제적 의견 표명을 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친명계의 주장이 정작 수장인 이 대표의 의중과 배치되는 상황이 빚어진 셈이다.
이같은 '소통 오류'가 집약된 장면은 지난 7일 아침 진행된 민주당 사전최고위 회의였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최고위원들에게 우 의장과 주고받은 사전 논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대통령도 중간평가가 필요하니 4년 중임제로 개헌 방향을 잡는 것이 옳다'는 취지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고위원들은 이 자리에서 '내란 종식'이라는 민주당의 대선 대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취지로 강한 우려를 표명했고, 결국 이 대표는 이들의 의견을 수용해 약 1시간 후 열린 공개최고위에서 "지금은 내란종식이 먼저"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관련 기사 : 이재명 "개헌보다 내란종식이 먼저…'5.18', '계엄요건 강화'는 곧바로 가능")
결국 우 의장 입장에서 보면, 이 대표와 미리 상의하고 꺼낸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이 이 대표 측 인사들에 의해 공격받으면서 정치적 내상을 입고 사흘만에 제안을 거둬들이게 된 셈이다. 우 의장의 이날 입장문 행간에서 개헌 논의가 지연된 데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억울함이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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