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이 8년 만에 또 파면됐다. 대통령 취임 선서 첫머리에 나오는 '헌법 준수' 의무를 배반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한 헌법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 결정이다. 이로써 12.3 비상계엄, 친위 쿠데타가 123일 만에 법적으로 진압됐다.
파면 선행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해 얻은 '강골 검사' 이미지로 대통령직에 오른 윤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범죄,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로 쫓겨나는 불명예를 피하지 못했다.
헌재는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지적했다.
검사스러운 '격노' 대통령의 몰락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10일 출범으로부터 1061일 만에 문을 닫았다. 임기를 3년도 채우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파국은 출범부터 조짐을 보였다. 대선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는 협치의 정언명령이었으나, 윤 전 대통령은 첫걸음부터 반대편으로 내딛었다. 2022년 5월 10일 취임사에 그는 '통합'이란 단어를 한마디도 넣지 않았다.
범죄자 척결이 사명인 검사적 가치관을 고스란히 국정에 이식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제1야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수차례 걷어찼다. 윤 전 대통령 주변에선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무슨 대화를 하냐"는 말까지 나왔다.
피아 대결뿐인 윤석열 정치에 갈라치기는 일상이 됐다. 윤 전 대통령에게 야당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과 동의어였다. 그가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하겠다"며 12.3 계엄을 선포했던 바탕이다.
정치적·감정적 자제력이 빈약한 '격노 대통령'은 집권여당과도 불화했다. 권력을 쥔 그는 대선 승리를 이끈 당 대표부터 축출했다. 메신저로 당시 이준석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로 지칭한 '체리 따봉' 사건은 윤 전 대통령의 강퍅한 품성까지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의힘 당 대표는 '이준석 → 김기현 → 한동훈'으로 그때그때 명분없이 갈렸다. 3년에 못 미친 기간 동안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 권한대행까지 포함하면 11명이 들고났다. 정치 기반이 빈약한 윤 전 대통령이 사활을 걸었던 '친윤 체제' 구축은 극우화 후과를 당과 보수 진영에 남기고 모두 실패했다.
야당과의 타협도, 당 화합도 염두에 두지 않은 분열의 정치는 총선 참패로 귀결됐다. '식물 대통령' 처지에 내몰린 후에도 윤 전 대통령은 타협책을 일절 꺼내지 않았다. 대신 '충암파' 측근들과 계엄을 획책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총선 전부터 비상조치를 모의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윤석열)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했다.
오판, 음모론, 망상이 결합한 12.3 비상계엄
갈라치기를 기본값으로 장착한 윤석열 정치는 국정 실패 사례를 수차례 낳았다.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집착한 의료개혁 실패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의료 기득권만 재확인한 선무당식 개혁의 뒷감당은 환자들과 국민들이 떠안게 됐다.
국가 시스템 부재 속에 158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에도 정부 책임은 실종됐다. 심지어 윤 전 대통령이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가 나왔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해 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보낸 그의 의식체계에서 가능한 의심이다.
황당한 오판으로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근소한 격차"라며 막판까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2030 세계박람회 유치전은 '29대 119' 참패로 끝났다. 이미 유치한 국제행사인 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조차 준비 미흡으로 파행해 국제적 망신 사례로 남았다. 직접 마이크를 잡고 승부수처럼 띄운 '대왕고래' 프로젝트 역시 대통령과 정부 신뢰도에 흠집을 냈다.
민망한 상황 판단력을 여러차례 드러낸 그는 다행히 비상계엄도 치밀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반대 세력을 척결해 불리한 상황을 일거에 뒤집어보려던 몽상으로 물러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호수 위 달그림자'를 쫓는 모양새다. 그는 극우적 망상과 음모론 선동을 남은 구명줄로 여기는 모습이다.
윤석열-김건희 공동정부의 몰락
이 모든 실패의 시발점으로, 윤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꼽힌다. 김 씨가 대선 때 약속했던 '조용한 내조'는 빈말이었다. 윤 전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활동 반경을 넓힌 김 씨는 임기 내내 공적 통제 범위를 벗어난 다양한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윤 전 대통령의 변호에 따르면, 그는 '박절하지 못한 성품' 때문에 명품백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폭로한 게 '공작'이라며 윤 전 대통령은 되레 역정을 냈다.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이란 말이 공공연했다. 친한동훈계 인사가 김 씨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일이 '윤-한 갈등'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총선 패배를 분석한 국민의힘 총선 백서에도 "김건희 여사"가 20번 명시됐다.
정치 브로커 사건인 '명태균 게이트'는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이라는 세간의 규정을 실감케 하고 있다. 명 씨가 김건희 씨와 나눈 메신저 대화는 물론, 김 씨의 육성이 담긴 파일까지 속속 공개됐다. 김 씨가 여당 공천에 깊숙하게 관여해 영향력을 발휘한 정황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윤 전 대통령이 12.3 계엄을 선포한 진짜 이유가 명태균 파문으로 자신과 배우자가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헌정질서 전복을 기도한 권력자의 직을 박탈하는 탄핵이 완성돼 윤석열-김건희 공동 정권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12.3 사태의 본질인 내란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간 윤 전 대통령은 향후 형사재판 과정에서 재구속과 단죄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성역 같던 김건희 씨 역시 수사와 처벌을 막아줄 방패가 사라졌다.
윤 전 대통령을 파면 결정한 헌재는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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