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절제술이 알려주는 의학의 반여성적 폭력

[프레시안 books] <세번째 전장, 자궁절제술>

중세시대부터 수많은 여성을 마녀로 몰아 화형대에서 불태운 것은 여성의 지식과 전문성을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여성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기나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국가와 교회는 과학, 의학, 법률과 같은 전문지식을 남성중심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종교권력이 과학권력으로 옷을 갈아입을 즈음, 마녀재판으로 여성을 단속하던 가부장제는 이제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여성 산파들을 불태워 죽이고 의학을 독점한 남성들은 음란충동, 자위, 자살시도, 피해망상, 히스테리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정상적인 난소를 제거하거나 자궁을 절제했다. '정숙하지 못한' 여성들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형벌적으로 난소 또는 자궁을 절제하는 행위는 여성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으로 작용했고, 동시에 통제의 기능을 수행했다.

저자는 오늘날의 과잉된 자궁절제술이 과거의 마녀사냥 및 형벌적 난소‧자궁절제술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본다. 권력을 독점한 남성이 여성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폭력을 종용하며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궁절제술의 남용은 통계로 증명되는데, 이 수술의 빈도는 국가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국가 내에서도 소득, 학력, 직업,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편차는 자궁절제술이 객관적이며 의료적인 판단에 따라 시행되기보다 주관적으로 권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가장 넓은 계층과 교육수준이 가장 낮은 계층에서 수술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점에서 저자는 자궁절제술이 순수한 의료적 필요보다 의사의 사적 이익, 즉 경제적 이윤을 위해 권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09년 기준,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자궁절제술 시행률 1위를 기록했다. 현재는 관련 순위 통계가 제공되지 않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자궁절제수술 환자가 51.8만 명으로 2009년(10.4만 명) 대비 5배 증가했다. 복지 및 소득 증진으로 인한 전체적인 수술률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높은 수치다.

저자는 통계를 근거로 자궁절제술의 남용을 증명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증언을 이어가며 의학계와 연결된 공론의 장을 열고, 부작용과 대체치료 등의 정보를 수술 전에 환자가 공유받을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는데,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의 현 상황에서도 충분히 적용해 볼 만하다.

한국에서 자궁을 가진 몸으로 산다는 것

2016년의 어느 날, 나는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 및 검진 대상자이니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읽으며 '복지가 좋아졌네.'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불쾌감과 부정적인 감정이 앞섰는데, 국가가 나이에 따라 자궁을 관리하는 행위가 마치 나를 '출산 도구'로 정체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으로 불리는 백신의 정확한 명칭은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예방백신'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등의 국가에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접종 대상에 포함되며, 의무 접종이 이루어진다.

같은 해 정부가 제작했던 '출산지도 사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특정 성별이 가진 장기를 표적화하여 나이와 지역에 따라 추적하는 방식은 국가가 여성을 어떻게 분류하고 관리하려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들은 내가 가진 다른 정체성들을 자궁이 모두 집어삼키고, 그저 인구 재생산 도구로 취급하는 것 같아 자궁과 여성성마저 미워하게 만들었다. 사회적으로 자궁이 가지는 상징성이 내 존재를 쥐고 흔드는 것이 괴로워서, 당시에는 그 장기가 나에게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경험은 책에서 소개되는 부당하게 자궁을 잃은 여성들의 경험과 포개어지며 '여성성'에 대한 물음에 불을 지폈다. 깨부수고 집어 던져버리고 싶다가도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것, 나를 옭아매는 감옥 같으면서도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는 '여성성'을 우리는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

여성성은 '잃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책에서 소개되는 자궁절제술 당사자의 경험담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점은 수술의 부작용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사회적 선입견과 주변의 시선이 그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이었다. '여성이 자궁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듯한' 사회적 시선은 부당하게 자궁을 잃은 많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성성이 하나의 장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듯, 자궁의 부재가 여성성의 부재를 상징할 수는 없다. 대지가 농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듯, 여성도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재생하고, 관계를 생산한다. 누군가는 빈 땅에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땅 위에서 춤을 추고, 어떤 이는 빈 땅에 누워 쉬기도 한다. 그 모든 일들은 누가 뭐래도 대지 위에서 일어나며 분명히 어떠한 종류의 '생산'을 하고 있다. 생산하지 않는 빈 땅도 마땅히 존재의 의미가 있듯, 다양한 여성이 가진 모든 현현이 곧 여성성일 것이다.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넘어서기 위한 연대의 돌림노래를 부르자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여성, 비시민, 비인간 존재들을 연료처럼 태워가며 자신의 권력을 살찌워 왔다. 후기에서 저자가 제안하듯, 이러한 권력과 폭력을 부수기 위해 우리는 사회가 애써 침묵시키는 존재들을 끈질기게 조명하고, 관계 맺고, 돌림노래를 부르듯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가진 것 없는 이들, 속하지 않은/못한 이들, 국가의 경계에 선 이들, 밀려나고 빼앗기는 모든 이들과 손잡고 연대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이 땅에 만연한 폭력과 혐오도 마침내 녹아내릴 것이다.

▲<세번째 전장, 자궁절제술>. ⓒ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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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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