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와 노회찬재단은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햇수로 3년 째 이어져 온 이 강좌에서는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이주민 등 존재하지만 목소리를 갖기 어렵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강연자로 나서 청년들에게 자신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프레시안> 지면으로 중계합니다.
첫번째 주인공은 일본 기업 덴소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와이퍼의 해고노동자인 최윤미 재단법인 뚜벅이 상임이사입니다. 그는 덴소의 한국와이퍼 청산 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209명의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어떻게 싸웠는지와 원하청 체계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겪은 어려움, 한국의 외국투자기업 관련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 등을 전했습니다. 싸우는 과정에서 연대의 힘을 경험한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제조업 산업단지인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서 18년 간 근속한 현장 노동자였습니다. 한국와이퍼라는 회사의 공장에서 일했고요. 이름에서도 아시겠지만 자동차에 달린 와이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아실지도 모르지만, 회사 이름 앞에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대부분 외국투자자본의 자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기하죠? 한국와이퍼도 일본기업 덴소가 100% 출자한 회사로, 덴소코리아의 하청회사였어요. 덴소는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고요. 자동차 부품 회사 중 세계 2위인 큰 회사입니다.
저는 2023년 8월, 209명의 노동조합 조합원과 함께 해고됐습니다. 해고 이유는 폐업이었는데요. 제가 한국와이퍼 대량해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해요. 고용안정협약서를 손에 쥐고도 억울하게 쫓겨난 209명의 이야기이다. '회사가 어려우면 폐업할 수도 있고 폐업하면 당연히 해고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뭐가 그렇게 억울할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왜 그것이 억울한 일인지,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웠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외투기업 본사와 한국 자회사 간 구조적 '이윤 이전'
한국와이퍼는 2022년 7월 주주총회에서 폐업을 결정했어요. 언론에도 보도된 '극비 문건'을 보면, 폐업 계획은 최소 2020년 2월부터 세워져 있었어요. 처음에 말한 고용안정협약서를 작성한 때가 2021년 10월이었어요. 그로부터 9개월만에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에 놓인 거죠.
사실 노동자들이 위기감을 느낀 건 폐업이 결정되기 훨씬 전부터였어요. 와이퍼는 블레이드(자동차 유리창을 닦는 고무 재질 부품)와 암(블레이드를 지지하는 와이퍼 부품)으로 구성되는데요. 한국 자회사인 한국와이퍼는 암을, 일본 본사인 덴코는 브레이드를 생산했어요. 돈이 되는 건 소모품인 블레이드거든요. 게다가 한국와이퍼에서 암 한 개 만드는데 120원이 들었다고 하면, 덴소에다 100원을 받고 납품했다고 보면 돼요. 당연히 한국와이퍼의 재무구조가 안 좋아졌겠죠. 덴소는 돈이 안 되는 암은 자회사를 통해 원가 이하로 공급받고, 돈이 되는 블레이드만 생산하니 경쟁업체보다 훨씬 더 이윤을 많이 누리게 될 거고요.
외투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굉장히 노력하잖아요. 그 이유는 고용을 늘리고,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많이 표현하는데요. 사실 한국와이퍼에서 덴소로 이윤 이전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에요. 저는 국부 유출이라고도 봐요. 덴소가 한국에서 받은 세제 등 혜택이 220억 원 정도 될 거에요. 그런 혜택을 받고도 덴소는 10년 간 기술사용료, 이자비용 등으로 한국와이퍼를 포함한 한국 계열사에서 4400억 원을 또 가져갔어요. 외투자본 유치가 정말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어요. 2010년부터 한국와이퍼 재무구조를 분석했더니, 매출이 계속 오르는 데도 설비투자는 줄이고 있더라고요. 이런 일을 보면서도 '회사가 먹튀를 하겠구나' 생각했어요.

노조를 만들고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하기까지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18년 노조를 만들었어요. 저희의 첫 번째 요구는 고용 보장이었어요. 흔히 노조 하면 '임금 인상'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노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고용이에요. 안정적인 생활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닐 직장이 있어야 하니까요.
무작정 종신고용해달라고 한 건 아니었어요. 내 고용이 유지되려면 회사가 존립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고용 보장과 함께 2018년 중단한 신차 수주를 재개하라고 요구했어요.
2021년 10월이 돼서야 고용안정협약서를 만들었어요. '한국와이퍼가 덴소에서 새로운 수주 물량을 확보한다', '한국와이퍼에서 덴소로 물량을 빼가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이 담겼어요. '대체 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외투자본이 흔히 청산 전에 본사에 미리 대체 생산 시스템을 마련해놓거든요. 이 협약서에 덴소코리아는 물론 일본 본사인 덴소도 서명했어요. 그때 임금 인상은 거의 안 했어요.
협약서를 작성하고도 정말 불안했어요. 한국은 회사가 노사가 작성한 협약서를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는 나라거든요. 너무 불안해서 이런 조항까지 요구했어요.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조합원 1인당 1억 원을 지급한다.' 1억 원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약속을 지키라는 거였죠. 회사는 1억 원 배상 조항에도 사인했어요.
그제야 안심했죠. 굉장히 뿌듯했어요. '회사를 살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와이퍼 사장도 못 받아낸 본사 물량 공급 약속을 노조가 투쟁해서 받아냈고, 공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고 생각했어요.
회사의 청산 발표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
그랬는데 9개월 만에 회사가 청산을 발표했어요. '고용안정협약서가 완전히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굉장히 참담했어요. '한국사회에서 외투자본은 이렇게 기만적이고 비도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협약서에 조합원 1인당 1억 원씩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했잖아요. 회사는 그 위로금을 차등 지급하겠다고 했어요. 1억 원을 평균으로 잡고 나이가 많으면 그보다 많게, 나이가 적으면 그보다 적게 지급하겠다고 한 거죠. 그랬더니 1억 원보다 많은 돈을 받게 생긴 조합원들이 노조를 탈퇴하기 시작했어요. 회사는 위로금을 받으려면 '고용안정협약서에 담긴 내용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고 적힌 문서에 서명해야 한다고도 했어요. '노조에서 탈퇴하라'는 이야기도 했죠. 다행히 조합원 탈퇴가 많지는 않았어요. 240명 정도의 조합원 중에 209명이 끝까지 투쟁했어요.
그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 문제는 원하청 체계에서 노동3권을 무력화하기가 굉장히 쉽다는 거였어요. 노동3권의 핵심은 파업권이고, 파업은 노동자가 일을 안 해서 회사에 타격을 주는 거잖아요. 갑을관계인 회사와 노동자의 관계를 대등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권리를 헌법을 통해 보장해 준 거죠.
파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조법에는 파업 시 대체인력을 투입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있어요. 원청사는 이 조항을 아주 쉽게 무력화할 수 있어요. 자회사에서 만들던 물품을 다른 자회사나 본사에서 생산해 버리는 거죠. 한국와이퍼에서 만들던 물건을 덴소코리아가 만들거나 덴소가 만들면, 노조법 위반이 아니게 돼요.
이건 노조법 2조 개정과도 관련돼 있어요. 원청사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보게 되면, 대체생산도 대체인력 투입과 똑같이 취급되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하청사의 파업권에는 아무런 힘이 없는 거에요.
실제 저희가 한국와이퍼가 생산하던 물건을 덴소가 대체생산할 수 없게 해달라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는데요. '한국와이퍼와 덴소는 다른 법인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어요.
그럼 실제로 한국와이퍼와 덴소가 별도로 경영되는 사업체일까요? 아니에요. 고용안정협약서는 물론이고 이전에 한국와이퍼 노사가 작성했던 단체협약의 문구 하나하나까지 덴소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담긴 문서가 남아있어요. 덴소가 한국와이퍼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죠.

법원이 해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지만
고용안정협약서에 있는 문구 중에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조항이 있어요. 불안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협약서를 만들 때 저희도 준비를 정말 많이 했고, 굉장히 공을 들였어요. 그래서 '법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만들겠다'는 고민에서 '덴소가 한국와이퍼를 청산할 때 반드시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고, 노사 합의도 이끌어 냈어요.
이 조항의 효력을 법원이 인정해 줬어요. '청산에 대해 노조와 합의하기로 해놓고,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체를 청산하고 해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불법'이라면서 해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판결을 냈어요. 굉장히 이례적인 판결이었어요. '회사에 경영의 자유가 있더라도 노동자와 합의한 내용은 지켜야 된다'는 판결이 나온 거죠.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어요. 결국 청산 권한은 회사에 있거든요. 회사는 사유재산이니까요. 법원 판결도 '청산할 때까지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청산하고 나면 해고의 정당성도 다툴 여지가 없는 거죠.
그 뒤로도 회사의 청산과 해고를 막아 보려 온갖 투쟁을 다 했습니다. 2022년 12월부터 8개월 동안 청산을 막기 위해 조합원들이 공장을 지켰고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 덴소코리아 사장을 불러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냐'고 따지는 일도 있었어요.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도 이끌어 냈고요. 저는 국회 앞에서 44일 간 단식농성을 했어요. 조합원들이 일본 덴소 본사 앞에 찾아가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한일정상회담 하루 전에 이뤄진 공권력 투입
2023년 3월 15일에는 공장을 지키던 조합원을 해산하기 위해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는 일도 있었어요. 저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생각해요. 다음날인 16일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거든요. 강제징용 피해배상금 제3자 변제안에 합의하면서 한국 정부가 일본에 모든 것을 주고 왔던 바로 그 회담이에요.
저희가 비조합원들과도 친했거든요. 비조합원들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경찰이 먼저 '공권력을 투입할 건데 날짜를 두 개 줄 테니 선택하라'고 제안을 했다고 해요.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하기 전에 선물로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너희 기업이 골머리를 앓던 문제 해결했다. 노동자들 다 끌어냈다.'
당시에 한국와이퍼가 국정감사 현안 사업장이었고, 법원의 해고금지 가처분 인용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가 강제로 조합원을 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청산 절차를 밟으려면 일단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끌어내야 했어요. 안 그러면 공장을 팔 수도, 기계를 뺄 수도, 만들어 놓은 제품을 가져갈 수도 없으니까요. 조합원들이 공장을 지키고 있으니 회사는 환장할 노릇이었겠죠.
그날 법원 판결에 따라 정당하게 현장 안에 있던 조합원들을 경찰이 끌어냈어요. '회사의 청산 업무를 방해했다'면서요. 노사 간 분쟁에 공권력이 개입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209명의 조합원을 때려잡겠다고 경찰 700명이 동원됐어요. 안산 지역 경찰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정부가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특이한 점이 또 있었어요. 경찰이 진압을 시작할 때 방패로 밀고 조합원들의 정강이를 계속 차면서 들어왔어요. 폭력 사태를 유발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미리 진압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폭력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어요. 결국 여성 조합원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고, 이후 국정감사에서 더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일본 자본을 위해 한국의 시민을 해산하겠다고 공권력을 투입하던 대통령이 국회에도 군을 투입하고 있구나.'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있지만 외투자본 규제법은 없다
이제 외투자본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외투자본은 법인세를 감면받고요. 지방세도 감면받아요. 대부분 임대료도 안 내요. 10년 무상 임대, 20년 무상 임대 이런 식의 혜택을 받죠. 덴소코리아도 마산의 한 공단 전체를 다 차지하고 있어요. 다른 외투자본도 대다수가 그래요.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에서 기타 현금 지원까지 받아요.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는데 악행은 다 저질러요. 한 제약회사의 한국 자회사는 노조 위원장을 해고하고, 부당해고 소송을 거니 대형로펌을 써서 방어했어요. 그래놓고 유죄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자회사 사장이 본국으로 돌아갔어요. 처벌할 수가 없죠. 제가 국회 앞에서 단식하고 있을 때 고용노동부 직원이 딱 한 번 왔을 때도 그런 말을 했어요. '외투자본은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주류회사의 한국 자회사는 2020년에 321억 원의 순이익을 냈는데요. 그걸 외국에 있는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나눠주고, 회사 수익을 76만 원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더니 수익이 안 난다고 직원을 구조조정했어요.
한국GM의 모회사인 쉐보레는 어떤 식으로 경영하냐면, 전 세계에 있는 공장을 경쟁시켜요. 가장 낮은 원가로 차량을 생산하는 공장에 물량을 배정하고, 원가가 높은 공장은 구조조정하는 거죠. 실제 한국GM 군산공장이 폐쇄되기도 했고요. 그러면 노동자들은 피 터지죠.
쌍용자동차는 2021년 인도 마힌드라에 매각되고, 202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기술이 다 유출됐어요. 외투자본이 기술만 빼가고 사업체를 되판 거죠. 그런데도 정부는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여해 외투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게 만들어 줬습니다.
요새 광화문 집회를 가보면 아실 텐데요. 40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며 고용승계를 요구 중인 노동자들이 일했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도 일본 외투자본인 닛토덴코의 자회사였어요.
우리 세금이 그렇게 쓰이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에요. 한국에 '외국인 투자 촉진법'은 있지만, 외투자본을 규제하는 법은 없어요.
그래서 외투자본 규제 법안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법안에는 이런 내용을 담고 싶어요. 노조와 고용에 대해 합의했으면, 그 합의는 지키게 해야 해요. 합의를 어기면 그동안 받은 혜택을 토해내게 해야 되고요. 외투자본이 고용을 확대하겠다며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니 고용 보장을 위한 제도는 만들어야죠. 부정행위에 따른 이익을 반환하게 하는 조항도 필요해요. 또 한국에 외국인투자위원회라고, 외투 관련 사업을 논의하는 위원회가 있는데요. 이 위원회에 적어도 두 명의 노동자는 들어가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게 해야 합니다.
외투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마지막 요구 '사회적 고용기금'
이제 외투자본에서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이후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내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한국와이퍼 청산 결정이 나고 2022년 12월부터 8개월 동안 조합원들이 빈 공장을 지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세 개 조를 짜서 3교대로 24시간 공장 바닥에 매트와 전기장판을 깔고 버텼어요. 쥐가 얼굴 위로 지나갈 때도 있었어요. 그때 조합원들 평균 나이대가 40~50대였어요. 되게 참담하죠.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하다 보면 '나 지금 뭐하고 있지? 빨리 직장 구해야 되는데'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극복하고 싸울 수 있었던 건 우리가 하는 싸움이 옳다고 이야기해주신 분들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공장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쇠사슬과 패널로 봉쇄된 문을 뚫고 들어간 첫날, 온갖 구호물품이 다 모였어요. 밤이면 연대하는 분들이 찾아와 주셨어요. 우리야 우리 문제니까 당연히 공장에서 자면서 견딘 거였는데, 그분들은 어떤 이유로 찾아와 함께 밤을 지샜던 걸까요?
점점 우리 싸움이 우리 것만이 아니고, 또 우리 것만으로 끝나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좋은 건 209명이 당당하게 고용승계돼 공장으로 돌아가 노조 활동을 하고, 지역사회에 봉사도 하면서 살아가는 건데 그게 안 되는 조건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 싸움을 마무리할까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덴소에 '우리 지역사회와 한국사회를 위해 사회적 고용기금을 내라'고 요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처음에는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얻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내 살 길 찾기도 힘든데, 무슨 사회적 고용기금이냐', '우리 애들 학원비도 못 내고 있는데 무슨 나라를 구하겠다고 그런 투쟁을 해야 되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어요.
하지만 매일 같이 우리를 찾아와 우리의 싸움이 옳다고 지지해 주고 함께 비를 맞는 분들이 있었기에 더 어렵고 더 힘든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고용 기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우리 싸움을 마무리하자고 마음을 모을 수 있었어요. 결국 덴소에서 24억 원 정도의 기금을 받아 노동공익재단 '뚜벅이'를 만들고 싸움을 마무리했어요.
'뚜벅이'는 우리보다 더 어렵고 더 낮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청소노동자 모임을 지원하기도 하고요. 반월공단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조합원들과 함께 공단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모색하고 실천하고 있어요.
<바르다가 사랑하는 얼굴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아시나요? 감독이자 주인공인 아녜스 바르다가 폐허가 된 공간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폐허가 된 건물에 붙여요. 그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와이퍼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일상을 살아내야 된다.
지금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은 지역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 받았던 것들을 돌려주면서 살자고 '뚜벅이에서 매달 모이고 고민하고 실천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외투자본의 문제를 알리기 위한 활동도 계속 할 거예요. 계속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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