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가 아닌 '둘 다인가, 아닌가'의 문제

[초록發光] '일자리냐 환경이냐' 딜레마

반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장면이 하나 있다. 지난 2024년 9월7일, 서울 강남 일대에서 진행된 기후정의행진에서 단상에 오른 한 건설노동자가 발언하던 그때다. 그는 기후재난에 따라 온열질환 사고로 현장에서 쓰러지는 건설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매년 증가하는 강수량과 폭우로 일하지 못해 가족생계에 위협은 늘어나고 있으며, 때론 우중타설에 내몰려 부실시공을 우려하면서도 해고위협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하였다. 그는 또한 말했다.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개발행위에 내몰린 것도, 또한 이러한 건설행위가 없으면 실업과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 또한 건설노동자들이다. 신도시, 신공항, 발전소 등 개발행위를 내심 바래야 하는 것이 건설노동자들이기에 이 자리에 서는 게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건설과 환경, 어쩌면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일지 모르겠다. 건설노동자가 어떻게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건설현장에서 경험하는 전환의 딜레마

이 발언에서 확인되는 것은 기후재난으로 건설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상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즉 '적응'의 문제만이 아니라 건설공사를 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다.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그 대응에 따른 건설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마구잡이식 신도시 건설이나 신공항, 발전소 건립은 분명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개발행위를 내심 바라고 있다는 발언이 그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건설과 환경이 어쩌면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일지 모르겠다"는 대목은 우리가 어떤 집과 건물을, 어떤 구조 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요구한다.

이런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지만 건설산업연맹은 기후위기가 일터에 미치는 쌍방향의 관계를 인식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선 연맹은 기후위기(기후재난)이 건설노동자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악천후 수당(유급휴가) 법제화, 건설현장 옥외노동자 열사병 방지를 위한 폭염대책 법제화, 지방자치단체 발주 공사의 혹서기 작업중단 보장, 실효성 있는 건강권 확보를 위한 폭염에 따른 휴게시간 보장, 휴게시설 확충, 생수와 제빙기에 대한 접근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맹은 또한 기후위기 완화 방안도 요구하였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자는 내용이다. 연맹이 2022년 제20대 대선 즈음하여 제시한 기후위기 관련 제도개선 요구에는 친환경 자재 및 설비시공 법제화, 원전설비 비중 축소와 친환경 발전설비 확충, 친환경 소재 건축 입·낙찰 가점 부여 등이 포함되었다. 이와 함께 연맹은 노후주택 그린리모델링 사업·로제에너지 빌딩인증·저에너지 시공 확대, 건설폐기물 최소화, 지역 생활SOC 관련한 종합적인 탄소감축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 대응의 제약 요인

이처럼 노조의 대응은 '기후위기→건설노동자(적응)' 측면과 '건설현장 →기후위기(완화)' 두 측면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주된 활동은 전자에 집중되어 있다. 후자는 현재 요구안으로 마련되었을 뿐 노조 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더 적극적인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무엇일까?

첫째, 건설산업 그 자체의 특성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건설업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하에서 운영되고 있다. 건설공사는 발주자로부터 공사계약을 따낸 원도급자가 종합건설업체나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또 재하도급을 주는 구조로 이뤄진다(그림 참조). 이런 구조에서는 노조가 친환경 자재 사용을 촉구하더라도 발주자가 원도급자(종합건설업체)에게 도급을 할 당시 친환경자재와 관련한 내용과 비용 문제에 대한 사항을 포함하지 않는 한 다단계 구조의 하위단계인 전문건설업체와 노조 사이의 단체교섭에서 이 사항을 논의하는 것은 사실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건설공사 하도급 구조. ⓒ건설산업연구원

둘째, 하도급 구조와 맞물련 분절적인 단체교섭 구조의 특성이다. 건설산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단체교섭 구조를 공사현장 단위로 제한시킨다. 교섭의 상대방이 하도급 구조 하위에 있는 전문건설업체라는 점에서 건설현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조의 요구안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셋째, 노조 관할 범위의 특성이다. 건물부문의 총생애주기 단계별 탄소배출 요인을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건물 운영/유지보수'로 68.7%를 차지한다. 다음이 '시멘트와 철강재 등 자재생산 과정'으로 28.3%이고, 건설노동자들이 실제 건물을 짓는 과정, 즉 '시공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전체의 1.97%다. 건설노조에는 '시공과정'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가입해 있다. 이는 건설부문의 탈탄소화가 건설노조만이 아니라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철강과 시멘트와 같은 후방사업의 노조, 발주처인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노조,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업체의 노조 등이 함께 연대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넷째, 건설경기와 정세의 특성이다. 장기화하고 있는 건설경기 침체는 건설노동자들의 일할 기회를 줄이고 생계 어려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뿌리뽑겠다"며 건설노조를 상대로 특별단속을 시행하여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집행은 그동안 노조가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재래형 산업재해 예방 활동과 조합원 및 신규 건설현장 진입자를 위한 기능향상 훈련마저도 약화시키고 있다. 건설노조 강원지역 간부인 고 양회동씨는 정부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며 2023년 노동절에 분신하여 결국 사망하였다. 건설산업연맹의 한 간부는 "우리 앞에는 '죽음'이 먼저다. (기후위기 대응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말하였다.

적응, 완화, 그리고 구조개혁

노동진영의 기후위기 대응을 논할 때 주로 제기되는 것이 일자리와 환경(생태) 간의 딜레마다. 기후정의행진 발언에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를 "무엇 하나를 먼저 풀어야 할 문제"라고 따로 떼어서 본다면 그것 자체로 해법을 찾기 어렵다. 건설노조가 처한 구조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이와 연관된 분절적인 단체교섭 구조, 노동진영의 전후방이 연계된 통합된 대응의 취약함이 모두 얽혀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전략과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전략이 건설산업 내 고질적인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는 방안과 결합될 때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자리와 환경이 둘 중 하나를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적응, 완화, 그리고 구조개혁 역시 "셋 다인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건설노동자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히 약속할 수 있다. 용산참사와 같은 부정한 개발이익 앞에 서 있는 나쁜 굴착기가 되지는 않겠다. 건설 과정에 폐기물 무단투기와 같은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바라만 보지는 않겠다." 노조의 적응과 완화, 구조개혁을 위한 노력이 이러한 실천들을 통해 조금씩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서울 시내 한 건설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건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