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유령이 출몰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모든 음모론이 다 가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아스팔트 위에서 'stop the steal' 손팻말을 들고 외치는 태극기 부대, 극우 유튜버와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말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눈여겨볼 가치가 전혀 없는 완벽한 가짜다. 트럼프 공장에서 만든 미국산 'stop the steal' 수입 구호를 외치는 한국산 부정선거 음모론자는 "우리 표를 훔치지 말라"고 외치지만 실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훔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스톱 더 스틸'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특정 정당(국민의힘) 소속 일부 정치인과 특정 정치세력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이기거나 특정 정당이 승리한 선거를 두고서는 부정의 ㅂ자도 꺼내지 않는다. 부정선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지거나 지지한 정당이 패배한 선거 결과에 대해서만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귀담아들어도 비합리적, 비논리적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또 있다. 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들은 민주당이 종북‧좌파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툭하면 종북‧좌파를 입에 달고 산다. 종북과 좌파에 대한 중도층의 거부감을 부추기기 위함이다. 독일 히틀러 나치 시대의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스가 즐겨 사용한 선전‧선동술 가운데 핵심인 거짓이라도 계속 읊어대면 대중의 뇌리에 매우 나쁜 인상, 즉 비호감 또는 혐오감이 각인된다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렇게 되면 유권자는 표로 지지하지 않게 된다.
온전한 정신 상태이거나 상식을 지난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부정선거 음모론도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검찰이나 경찰, 감사원, 국정원 등 정부 어느 기관도 어느 정당도, 어느 언론사도 최근 20년 동안 대통령 선거나 지방자치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과 관련해 사전투표를 포함해 광범위한 부정선거, 심지어는 특정 선거구에서조차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의 증거를 밝혀내지 못했다. 관련 기관들이 무능하거나 부정선거가 너무나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공화국에서 치른 모든 대선‧총선‧지선, 부정선거 없었다
국민의힘(미래통합당) 민경욱 전 의원이나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도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곧바로 선거무효 소송을 했다. 이들은 소송 대리 변호인단을 꾸려 자신들에게 유리한 말을 해주는 증인까지 내세워 부정선거임을 입증하려 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21대와 22대 선거 때 다른 선거구에서 낙선한 후보자들도 같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부정선거 고발 소송에서 백전백패한 선거 후보자들과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선거관리위원회와 대법원, 민주당을 싸잡아 종북 좌파 카르텔로 몰아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비상계엄을 계기로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윤석열이 발표하자 더욱 기세를 올렸다. 심지어는 한국 비상계엄 및 탄핵 국면에서 '부정선거' 주장을 확산해 온 단체가 최근 미국에서 열린 대규모 친트럼프 성향의 보수·우파 행사에 참석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까지 벌였다. 극단적 친미 사대주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제6공화국 체제가 시작된 뒤 격렬한 부정선거 주장은 대통령 선거보다는 주로 국회의원 선거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한 것은 16‧18대 노무현‧박근혜 당선 때였다. 18대 대선 때 문재인을 지지했던 김어준 등 민주당 계열 일부 시민단체‧언론이 한때 통계치를 근거로 부정선거 의혹을 문제 삼았으나 최근처럼 격렬하거나 집요하지는 않았다. 당시 그런 주장은 물론 타당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총선의 경우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등이 과반의석을 확보한 2008년 18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 등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자신들이 이긴 선거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103석에 그치고 민주당이 180석으로 여당이 압승한 2020년 21대 총선부터 국민의힘 쪽 일부 인사들이 부정선거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가짜인 이유-이긴 선거는 공정선거, 진 선거는 부정선거
하지만 당선된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부정선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이어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개헌저지선을 겨우 확보할 정도로 참패하자 전광훈 등 강성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외쳤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와 개표 전산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에 군불을 슬슬 때는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이에 앞서 치른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간발의 차로 민주당 이재명을 눌렀을 때와 연이어 치른 제8회 지방선거에서 크게 승리했을 때는 부정선거의 '부'자도 꺼내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긴 선거는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렀고 참패한 선거는 부정선거라는 가짜음모론에 빠진 것이다. 2020년 이후 중앙‧지역선관위를 대상으로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181건의 압수수색이 이루어졌으며 이 가운데 165건(91%)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루어졌다. 하지만 검찰공화국이라고 일컫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검찰 기소는 단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지난 1월 15일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직후 공개한 손 편지에서 "부정선거의 증거가 너무나 많다.",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다."라고 주장해 지지자들이 이를 계기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날 것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윤석열은 그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으며 1월 21일 헌법재판소에 직접 출석한 윤석열은 마침내 "부정선거 음모론을 내놓는 건 아니"라며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너무나 많다던 부정선거 증거는 하나도 없고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증거만 차고 넘쳤다. 이러니 윤석열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한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부정선거 주장이 망상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사람이나 의혹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과 가짜뉴스 양산의 진원지이자 확산 허브 구실을 하는 극우 유튜브만 보지 말고 단 한 번만이라도 문화방송, 한국방송의 <피디수첩>, <추적60분>이 다룬 부정선거 관련 심층 프로그램을 눈여겨보면 진실과 사실을 알 수 있다. 극우 유튜브에 오염돼 앞을 보지 못하는 눈을 떠 계몽이 아니라 개명(開明)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러 한두 시간만 시간을 내어 선관위의 관련 설명과 해명을 보고 듣더라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전한길, 공부하지 않는 부정선거 음모론 문외한 강사
전국적 부정선거는 과거 이승만‧박정희‧노태우 정권에서 보듯이 정권을 쥔 쪽 또는 독재정권이 저지른다. 이는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다. 중국 공산당이 한국에 와서 부정선거를 저지른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저질 음모론에 불과하다. 극우 유튜브만 몇 편 보고 자신이 부정선거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이 "실제로 제가 조사해 보니까 너무나 많은 (부정선거)의혹과 의심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소리다. 수개표를 하는 우리나라에서 수개표를 하자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가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부정선거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수괴, 중요임무 종사자인 윤석열, 전광훈, 전한길, 민경욱, 황교안을 비롯해 사전투표가 불법의 온상인 것처럼 말하며 국민 참정권 기회를 보장하는 사전투표제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 아무것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부정선거 아웃, 중국 공산당 아웃" "스톱 더 스틸"을 외치는 사람은 죄다 반애국 세력이자,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집단이다. 또한 이들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지 때문에, 묻지 마 확증 편향에 젖어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사람에겐 관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잠시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기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만약에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대선‧총선‧지선 모두에서 연달아 극우‧보수우파 세력이 승리한다면 부정선거 음모론은 수그러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따라서 지금은 부정선거를 포함해 다양한 음모론과 관련한 원인과 실태, 해악과 근절 대책 등에 대해 더욱 폭넓고 깊게 파헤치고 지혜를 모으는 열정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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