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전기를 먹고 자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먹기 때문에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구글에서 일반 검색을 할 때 건당 평균 전기소비량은 0.3Wh(와트시)지만 오픈AI의 챗GPT로 검색하면 약 10배인 2.9Wh가 사용된다. 구글 검색엔진에 AI 기능이 통합되면 25배인 7.5Wh까지 전기소비량이 증가할 수 있다. AI가 데이터를 대량으로 학습하고 추론하려면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기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만큼 전기를 폭식하는 AI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AI 시스템은 주로 데이터센터 내에 설치돼 운영되기 때문에 AI 확대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컴퓨터, 네트워크 회선, 데이터 저장장치 등 모든 장비를 한 건물에 모아두고 연중 24시간 전력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AI 관련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6배나 많은 전기를 소비한다. AI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데이터센터를 증설해야 하는데,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일반 서버에 사용되는 CPU(중앙 처리 장치)보다 발열과 전력 소모가 많다. 일반 데이터센터가 '하마'라면 AI 데이터센터는 '공룡'인 셈이다. 과거 데이터센터가 서버 수천 대를 돌리는 수준이었다면,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서버 수만 대를 운영하며 전기를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숫자는 2026년까지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기술 발전 가속화와 데이터센터, 가상화폐로 인한 전 세계 전기소비량도 2022년 460TWh(테라와트시)에서 2026년에는 최대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독일(490TWh)과 한국(568TWh)을 넘어 일본(940TWh)의 연간 전기소비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또한 2026년 전 세계 전체 전력소비 증가분(3449TWh) 중 AI용 전력소비 증가분이 15.4%(530TWh)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AI가 전 세계 전기를 빠르게 먹어 치울 것이란 의미다.
글로벌 빅테크, AI 전력 폭식에 멀어지는 탄소중립
AI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확대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저비용 고효율'을 내세운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충격 속에서도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AI 인프라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아마존과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등 주요 4대 빅테크 기업의 올해 투자 규모는 최대 3200억 달러(약 466조 원)에 달하며 지출 대부분은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 구축 등 인프라 투자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구글은 미국 네바다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69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패널과 380㎿ 배터리를 결합한 발전소를 가동했고, 자사의 데이터센터가 위치한 대만에 1GW(기가와트) 규모의 신규 태양광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구글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에 데이터센터를 구동하고 있다. 아마존의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터센터도 총 450㎿의 태양광과 225㎿를 배터리를 결합한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 MS는 미국 최대 원자력 운영업체와 원자력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아마존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위해 에너지기업에 투자했다.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전기사용량 급증으로 글로벌 빅데크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탄소중립 달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글과 MS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구글의 2023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보다 13.5% 증가했고, 2020년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66.3%에 달했다. 주로 AI 모델을 개발하고 훈련하는 데이터센터 전기소비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구글 내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다. MS의 2023년 온실가스 배출량도 2020년 대비 29.1% 증가했고, 메타 역시 온실가스 배출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AI가 재생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도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입장이었다. "AI의 친환경 혜택이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결점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빌 게이츠 MS 창업자의 해명이 무색한 상황이다. AI로 인한 전력 소비가 워낙 빠르게 늘어나다 보니 이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030년까지 빅테크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미국 전체 배출량의 40%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립 규제하기 시작한 국가들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양의 전력 소비로 전력 수급에 영향을 끼치고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많은 물을 사용한다. 이처럼 데이터센터는 지역에 환경적 부담을 주는 반면 고용 유발 등 지역 경제 기여도는 크지 않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가 밀집된 지역과 주요 국가들이 데이터센터 건립을 규제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허가를 제한하기 시작했고 기업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약 8000곳 중 3분의 1인 5400여 개가 설립돼 있는데, 빠른 시간 내에 전력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데이터센터 성지'로 불리던 아일랜드는 2028년까지 더블린 지역의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불허하기로 했다. 현재 아일랜드에 위치한 데이터센터는 82개로 국가 전체 전력소비량의 4분의 1가량이나 소비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을 무제한 늘릴 수 없고, 데이터센터 건립은 약속한 기후한계 안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아일랜드 정부 입장이다.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이 운영하는 70여 개의 데이터센터가 위치한 싱가포르도 데이터센터 총량을 규제하고 환경 기준을 마련했다. 지난해 5월 발표한 '그린 데이터센터 로드맵'에 따라 향후 싱가포르에는 데이터센터가 300㎿까지만 추가 건설이 가능하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200㎿가 더 허용된다. 기존 데이터센터에도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도록 지도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총량을 규제하고 개별 기업 투자계획을 엄격히 심사하는 등 데이터센터 설립에 제동을 걸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만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이다.
데이터센터 규모·입지·효율성·재생E 등 종합대책 필요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인천 서구에 첫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고 2027년까지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에 약 8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에 발표했다. AWS 데이터센터는 연면적 4만4천812제곱미터(㎡) 규모로 축구장 면적(약 7000㎡)의 6배에 해당하며, 지상 7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다. 높이는 72m이며 1000㎿ 규모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인천 지역에는 AWS 데이터센터 외에도 부평구 청천동에 국내 최대 규모인 120㎿급 상업용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계획이다. 인천에는 이미 데이터센터 8개소가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데이터센터가 한 지역에 집중되면 전력 과부하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에 전체 데이터센터 개소의 60%,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70%가 집중돼 있다. 2029년까지 설립을 신청한 수도권 지역 신규 데이터센터 601곳을 고려하면 이 비율은 80%대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이 중 상당수(67%)가 부동산 개발을 선점하기 위해 우선 전력 용량을 신청한 것으로 조사돼 실제 수요는 이보다 적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후 AI 데이터센터의 설치가 전력 생산과 전력망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데이터센터의 지역 분산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정부는 계통포화지역 데이터센터 입지 제한 강화, 지역분산 유도 방안과 인프라 보완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계획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만, 당장 마땅한 자구책이 없는 지자체들은 세수 확보와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위해 넓은 땅을 내주고 전기를 공급해 주면서도 별반 지역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는 산업이라는 게 드러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작 질문해야 할 것은 AI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가이다. 그래야만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어디에 건설할지, 데이터센터가 요청하는 전기를 무엇으로 어떻게 공급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AI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전력 인프라를 악화시킬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데이터센터의 적정 규모와 입지 계획, 에너지 효율성 향상과 재생에너지 의무화 등 종합적인 정책과 규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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