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제인권기구에 '헌법재판소 때리기' 서한 보냈다

인권위원 검토 '패싱'…기자들엔 "사실대로 보도하라" 훈계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국제인권기구에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 듯한 내용도 문제이지만, 사전에 인권위원들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데다 서한에 첨부된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안' 결정문에 반대 의견이 빠져 있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레시안>이 4일 확인한 인권위의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간리) 답변서를 보면, 최근 안 위원장은 각 나라 인권기구들의 등급을 결정하는 간리 승인 소위원회에 '정부 옹호에 나선 인권위' 등의 지적에 대한 서한을 보냈다. 국내 204개 인권단체가 '인권위가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등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에 위협을 겪고 있다'며 간리에 특별심사를 요청해 간리가 안 위원장에게 인권위 입장을 물었고, 안 위원장이 이에 대한 답변서 격의 서한을 보낸 것이다.

안 위원장은 인권위가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면서도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법재판소를 믿지 못한다는 점 △헌법재판소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지 않는다는 점 △일부 헌법재판관의 소속단체와 과거 행적에 문제가 있다는 점 등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내용을 서한에 담았다.

또 윤 대통령과 비상계엄 동조세력의 방어권 보장을 촉구하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 표명' 결정문을 서한에 첨부하는 과정에서 다수의견만 담고 이를 비판하는 소수의견은 배제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제2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수의견 작성에 참여한 인권위원들은 이같은 서한 내용과 전달 과정에 거세게 항의했다. 원민경 비상임위원은 이날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인권위원들은 안창호 위원장이 간리에 보낸 서한 내용을 본 바가 없다"며 "윤석열 방어권 보장 결정에 반대 의견을 가진 인권위원들이 숙고해 정리한 내용을 위원장 단독 결정으로 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규선 상임위원도 "간리는 윤 대통령 방어권 안건 의결과 관련해 다수의견만 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며 "어떻게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다수의견만을 보낼 수 있느냐. 이게 공정한 방식인가"라고 질타했다.

안 위원장은 "간리가 요구한 일시가 촉박해 모든 내용을 번역하는 게 불가능했다"면서도 "간리는 국내 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에 기초해 질의를 보냈고, 반대 의견은 시민단체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아 서한에 적시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 위원장은 또 언론을 향해선 "언론의 사명은 정론직필이다. 국민들이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사실대로 보도해달라"며 일부 언론들이 현 사태를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전원위가 종료된 뒤 안 위원장은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는 서한 내용이 대통령 주장과 동일하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과가 빨간데 대통령이 빨갛다고 해서 우리는 파랗다고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측 주장에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권위는 이날 논의 안건이었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독립보고서는 안 위원장 서한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느라 의결하지 못했다. 인권위원들은 해당 안건에 대한 반대의견 등을 정리해 오는 7일 논의 후 의결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안 위원장을 두고 시민단체들은 "(인권위가) 내란에 동조하는 기관임을 국제사회에 자백했다"고 규탄했다. 36개 시민단체가 모인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특정한 성향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것은, 적법판 절차를 거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헌법기관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부정이자 모욕"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헌법재판관들을 처단하라는 메시지를 내는 등 헌법재판소를 향한 공격을 언급하며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가 헌법재판소를 이렇게 근거 없이 비판하는 자체가 내란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 위원장에게 "인권위에 대한 특별심사를 받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서 이런 부끄러운 답변서까지 보낼 것이라면 위원장직을 사퇴하면 된다. 못하겠다면 우리가 당신이 사퇴하도록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